"사회·전문가 단체 연대해 '정권 투쟁' 아닌 '정책 투쟁' 나설 것"
11일 부산 회원과의 대화...교수·전공의·봉직의 참여 투쟁력 관건
의료계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급진적' 보장성 강화 정책(문재인 케어)을 '점진적' 정책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2000년 의료계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한 의약분업 사태에서 확인했듯 여당·정부·청와대(당·정·청)와 의료계는 물론 국민 모두가 후유증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은 11일 부산시의사회관에서 열린 회원 의견 수렴을 위한 전국 순회 설명회에서 '급진적 보장성 강화 정책(문재인케어) 그리고 의료계의 나아갈 길' 주제강연을 통해 "2000년 선시행·후보완을 약속하며 의약분업을 강행한 정부는 엄청난 사회적 혼란과 후유증을 야기하고도 18년이 지나도록 정책평가 조차 하지 않은 채 의료계의 신뢰를 저버렸다"면서 "의료계와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한 급진적인 문재인케어 정책을 강행하면 의사는 환자를 치료하고 싶어도 치료하지 못하고, 환자는 치료받고 싶어도 치료 받지 못하는 후유증을 양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 회장은 "30조 6000억원의 재정을 투입해 비급여 항목을 없앰으로써 63%의 보장성을 70%로 올리겠다는 것이 문재인케어"라면서 "그 이면에는 비급여를 없애 국가가 모든 진료를 통제하고, 급여비 총액을 제한하려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지적했다.
"급여비 총액을 제한해 의사가 최선의 진료를 할 수 없도록 하는 나쁜 정책을 강행할 게 아니라 7조원만 투입하면 평균 24%의 본인부담률을 14%로 낮춰 보장성을 71%대까지 올릴 수 있다. 돈은 더 적게 들이면서 보장성을 높일 수 있는 다른 방법도 있다"고 설명한 최 회장은 "저출산 고령화로 건강보험 재정 확보가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 건보제도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기 보다는 비급여를 점진적 단계적으로 급여화 하면서 정부가 지급하지 않은 국고 지급과 건강증진기금을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 8월 14일 특별기자회견을 통해 당·정·청에 제안한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최 회장은 "문재인 케어보다 더 시급하고,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가 바로 의료왜곡의 근본 원인인 수가와 진료비의 정상화"라고 강조한 뒤 "3∼5년 동안 OECD 평균 수준으로 초저수가와 진료비 문제를 해소해 나갈 수 있도록 정부가 신뢰와 진정성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만 정부가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슬라이드 발표 자료를 생략한 채 간략히 문재인 케어에 대한 의협 집행부의 대응책을 설명한 최 회장은 강대식 의협 부회장(부산시의사회장)·정성균 의협 기획이사 겸 대변인·박진규 기획이사 겸 보험이사와 함께 회원과의 대화에 참여한 부산지역 회원들의 허심탄회한 질의와 비판에 귀를 기울였다.
한편, 질의 응답에 앞서 정성균 의협 기획이사 겸 대변인은 '제40대 의협 집행부 주요 회무 추진사항'에 대한 설명을 통해 "40대 집행부 출범과 함께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참여와 결집을 이끌어 내기 위해 26개 전문학회 임원진 간담회, 상급종합병원장 면담, 회원 민원 해결을 위한 현장 방문에 이어 16개 시도의사회 순회 회원과의 대화 등의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 기획이사 겸 대변인은 "의료현안 논의를 위한 의정대화와 의정협의체를 운영하면서 불합리한 의료제도를 개선하고, 의학적 전문성과 자율성을 보장할 수 있도록 심사기준과 의료규제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면서 "의사 폭행 사태 해결 방안을 위해 노력한 결과, 18개 의원 입법을 이끌어 냈다. 올바른 의료제도 만들기 위해 40대 집행부는 끊임 없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회원과의 대화에서 부산시의사 회원들은 9월 말까지 정책 변경 요구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경우 대응 계획과 회원 단합을 끌어올리기 위한 방안, 원격진료 대응책, 의한 일원화 문제 등 최근 현안을 집중적으로 질문했다.
■ 정부와 협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회원의 낮은 참여와 단합을 끌어 올릴 방안은?
9월 30일까지 협상을 한시적으로 못박은 것은 이 문제를 질질 끌가다는 중요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전략적 판단에서다. 당정청이 확실히 입장을 정리해야 그에 맞춰 의료계의 입장을 정할 수 있다. 책임있는 회의가 열리지 않는다면 국민과 함께 하는 범국민적 연대기구를 구성하고, 보건의료제도의 근본적 개혁을 위한 범국민적 운동에 나설 것이다. 2000만 대국민 서명운동은 물론 총파업을 포함해 다양한 집단행동을 전개할 것이다. 하지만 개원의만의 파업으로는 소기의 성과를 얻을 수 없다. 교수·전공의·봉직의가 참여해야 한다. 중소병원과 봉직의의 참여는 물론 학회를 중심으로 의대 교수 회원의 동참을 이끌어 낼 것이다.
전국의사대표자대회에 앞서 전국 각 시도를 순회하면서 회원들과 대화를 통해 현장의 제안과 비판을 들을 것이다. 10월에는 전국 수련병원들을 방문할 계획이며, 전공의들의 조직화도 진행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집단행동의 역량을 높여나갈 것이다. 최소 50%에서 최대 80% 참여를 목표로 하고 있다.
■ 정권 투쟁에 관심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오해가 있다.
오랫동안 사회운동을 해서 정권 투쟁을 할 것으로 오해하는 회원이 있다. 정권 타도 투쟁이라든가 반정부 투쟁의 선을 넘어선 안된다.
의협 회장에 선출되면서 의협 대표자로서의 임무를 부여 받았다. 의협은 의학의 최고 전문가단체다. 정권 투쟁이 아닌 정책을 변경하는 투쟁을 해야 한다.
경제·교육·전문가단체 등에서 정책 변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들과의 정책 연대를 통해 국민의 힘을 바탕으로 정책 변경을 추진할 것이다.
■ 이번 정기국회에 원격진료를 담은 법률 개정안이 상정됐다. 문케어보다 더 중대한 사안이다. 반대 성명 한 장으로는 안된다.
선진국처럼 진료비가 정상화가 돼 있고, 국가 통제와 강제지정제에서 벗어나 있다면 원격진료에 대해 협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초저수가 상황에다 다른 나라보다 국토면적이 상대적으로 좁고, 의료접근성이 가장 좋다.
정부는 예외적으로 군부대·교도소·도서벽오지·원양어선 등에 제한적으로 허용한다지만 군부대의 경우 군의관이 있고, 헬기와 차량으로 가장 빨리 후송할 수 있다. 군부대에서, 교정시설에서 원격의료가 필요하다는 것은 맞지 않다. 도서벽지의 경우에도 공중보건의사가 있고, 병원선과 헬기를 이용하면 된다.
원격진료는 사실상 국민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원격진료를 도입하려는 의도도 순수하지 않다. 원격진료를 확산시키기 위해 작은 구명을 뚫으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불과 수년전 당론으로 반대했다가 찬성으로 바꿨다.반대 입장을 이미 전달했고, 원격진료 법안이 발의되면 집단적인 의사표현에 직면할 것이다.
■ 대국민 홍보와 설득이 부족하지 않은가? 문케어에 반대하는 의사만 나쁜 놈을 만들고 있다. 엄격한 의료광고심의위원회 심사 문제도 개선해 달라.
정책 연대를 할 것이다. 민생 정책에 대해 여러 사회단체와 전문가단체와 함께 정책연대를 하고, 범국민 활동을 해야 한다.
미국이나 영국 의사회도 사회적 연대를 했다. 꼭 필요하다고 본다. 오랫동안 거리와 광장에서 사회단체 활동을 한 경험이 있고, 누구보다 잘 할 수 있다.
국민과 함께하면 시간과 노력을 많이 아낄 수 있고, 여러 사회단체와 연대하면 더 많은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다. 범국민 정책연대를 추진하고 있다.
주무 이사에게 의료광고심의에 관한 말씀을 전하겠다.
■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문재인케어와 이를 막기 위한 파업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씀해 달라.
정부가 전향적 입장에서 비급여를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급여화 하고, 의료행위 항목을 100개 내외로 줄이는 제안을 받아들여 정책을 변경한다면 집단행동에 나설 필요가 없다.
의료계와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커뮤니티 케어, 통합 만성질환관리제, 원격진료 등을 추진하고 있다. 반면에 진료비 정상화 문제에 대해서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
지속가능한 시스템을 만들려면 특정집단을 일방적으로 희생하는 방법으로는 어렵다.
초저수가 문제, 의료계의 근본적인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언젠가는 들고 일어나야 한다.
최대한 참여율을 끌어 올려야 하고, 자발적으로 희생을 감수하면서 동참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가 40대 집행부의 가장 큰 고민이다.
■ 39대 집행부 당시 의료일원화 문제로 불신임 임총까지 열렸다. 불필요한 잡음을 만들지 않기 위해 의사 사회의 통일된 의견을 도출해야 한다.
2017년 국회에서 한의사에게 현대 의료기기 허용 법안을 발의했고, 의료계가 반발하자 의한정협의체를 구성해 협의안을 갖고 오라고 했다.
의한정협의체에서 논의한 안에 대해 상임이사회·시도의사회장단회의·대의원회 운영위원회에 공개하고 의견을 수렴했다. 이 단계에서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논의한 안을 폐기하면 끝이다.
하지만 의견 수렴 과정을 밟는 과정에서 언론에 사실과 다른 내용이 공개됐다.
논의 과정을 거쳐 회원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고 하면 16개 시도의사회와 전국 223개 시군구의사회를 비롯해 대한의학회와 산하 학회에 내용을 보내 의견을 수렴하고, 대의원 총회를 열어 절차를 밟아야 한다.
상임이사회에서는 더 이상 합리적인 논의를 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해 수용 불가로 의견을 모았다. 의학의 원칙에 따라 만든 새로운 대안을 의한정협의체에 전하기로 했다.
의료계가 먼저 파기하지는 않을 것이고, 서두루지도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한의과대학을 전면 폐지하고, 의과만 해야 한다는 합의와 공감대가 의료계 내부에서부터 형성돼야 한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절차를 밟을 것이다.
안아키 사태를 봐서 알겠지만 안전성과 유효성을 과학적으로 검증받지 않은 한방의료행위를 엄격히 금지해야 한다. 기존 한의사는 의과 의료기기를 사용해선 안된다.
의사 사회에 무겁게 주어진 사회적 책무다.
■ 한방 대책은?
전 의료계에서 줄기차게 한방의 안전성과 효과성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해야 한다.
무면허 의료행위를 하고 있는 S한방병원의 한의사와 의사를 고발했다. 의료혁신투쟁위원회에서 한방 전문의약품 불법 사용 문제를 제기하고, 무면허 의료행위를 막기 위한 활동을 하면서 12번이나 소송을 당한 경험이 있다.
이제는 전체 의료계가 시군구의사회가 중심으로 이런 활동을 해야 한다. 한방의 불법행위에 대해 형사고발하고, 보건소와 의협 사이비의료신고센터에 신고하는 노력을 줄기차게 3∼4년 하다보면 장벽이 뚫릴 것이다.
■ 수가 정상화를 위한 재원 마련 대책과 가입자(국민) 설득 방안은?
(박진규 기획이사 겸 보험이사 답변) 영국은 12%의 보험료를 내지만 우리나라는 6%만 내고 있다. 그러면서 영아사망률은 낮고 의료 수준은 상위권이다. 문턱(의료접근성)도 낮다.
외과 수술 수가는 선진국의 1/10에 불과하다. 원가의 80∼85% 정도로 수가가 낮다. 이걸 올리려면 재원이 필요하다. 국가가 건강보험재정의 20%를 지원해야 하지만 지금까지 12∼13%만 지원했다. 밀려 있는 외상값을 받아내야 한다.
필수의료에도 비급여가 많다. 문케어는 수술실과 중환자실에 사용하는 비급여 재료비부터 급여화 하지 않고 2∼3인실 병실료부터 급여화 하겠다고 한다.
이날 회원과의 대화에는 정홍경(부산시의사회 명예회장)·소동진·박희두 의협 고문과 최원락 부산시의사회 대의원회 의장을 비롯해 15개 구군의사회장단과 집행부 임원을 비롯해 일선 회원들이 참석, 의료계가 직면하고 있는 현안을 의협 집행부가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에 대해 조언과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정홍경 부산시의사회 명예회장은 "출범한지 불과 5개월도 안된 의협 집행부가 회무를 잘 수행해 주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힘과 용기를 주는 박수를 보내 달라"면서 마지막 열차를 타기 위해 부산역으로 출발하는 최대집 회장과 임원들을 격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