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품공급업체가 한의원에 전문의약품 공급해도 불기소처분 받는 현실
현행 약사법·의료법 모호한 규정 문제…"허점 투성이 법안 개정 시급"
의약품공급업체가 한의원에 '리도카인'(전문의약품)을 판매하고, 한의사가 이 약을 환자에게 사용한 후 환자가 사망한 사건을 두고 약사법 규정이 논란이 되고 있다.
의약품공급업체가 약을 처방할 수 없는 한의원(한의사)에 전문의약품을 공급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규정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2017년 3월 경기도 오산의 한의원에서 한의사가 리도카인을 사용해 환자가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대한의사협회가 한의원과 의약품공급업체를 의료법 및 약사법 위반으로 수원지검에 고발장을 접수하면서 도매업을 하는 의약품공급업체가 전문의약품을 사용할 수 없는 한의원에 약품을 공급하는 것이 옳은지가 핵심 쟁점이 됐다.
'리도카인'은 국소마취제이자 부정맥 치료제이다. 주사제는 국소마취 또는 부정맥 치료 목적으로 사용되고, 액제·분무제·크림·연고·거즈 등은 제형과 함량에 따라 국소 마취나 통증 완화 등의 목적으로 사용된다. 즉, 의사만 처방할 수 있는 전문의약품이다.
그러나 해당 의약품공급업체는 모든 의약품(한약 포함)을 거래할 수 있다고 해도, 한의사와 의사의 면허가 분명히 다르고 처방하는 약도 다르다는 것을 고려하면, 한의원에 전문의약품을 공급할 이유가 없다.
이런 이유로 의협은 한의원에서 한의사가 리도카인을 사용해 환자가 사망한 사건과 관련 한의사(무면허의료행위)와 의약품공급업체(약사법 위반)를 상대로 수원지검에 고발했으나, 수원지검(2017년 12월 28일)은 약식기소 및 불기소처분을 내렸다.
특히 수원지검은 의약품공급업체에 대해 약사법 위반에 대해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혐의가 없어 불기소처분을 내려 의료계의 공분을 사고 있다.
수원지검이 불기소처분을 내린 것은 약사법에 도매상의 의약품 판매 대상 모호하게 규정돼 있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다시 말해 의약품 도매상의 판매 대상이 명확하게 규정되거나, 정의되지 않은 이상 의약품 도매상이 전문의약품인 리도카인을 한의사에게 판매하면서 불법의 인식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해석한 것.
의협은 2018년 3월 의약품공급업체의 불기소처분에 대해 약사법 위반으로 서울고등검찰청에 항고했으나, 서울고검은 2018년 8월 23일 항고를 기각했다.
이와 관련 의협은 "수원지검 검사는 의협의 고발내용에 포함된 의약품 도매상의 의료법 위반이나 의료법 위반 방조 부분에 대한 수사 및 판단도 하지 않고, 수사미진 및 판단유탈의 잘못이 있음에도 이를 지적하는 항고를 기각한 서울고검의 결정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의사에게 리도카인을 납품하는 의약품공급업체를 처벌해야만 한의사의 무면허 의료행위를 근절할 수 있다"며 대검찰청에 재항고를 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의협은 서울고검의 항고 기각 결정을 검토한 결과 "의약품공급업체(도매상)가 한의사에게 전문의약품을 판매할 수 없다는 명시적인 규정이 없기 때문에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상 불기소 처분을 한 것이라 볼 수도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문의약품을 취급할 수 없는 한의사(한의사는 의료법 위반으로 기소됨)가 그 취급이 금지된 리도카인을 구매한 것이라면, 의약품 도매상은 한의사가 이후 해당 의약품을 사용하거나, 제3자에게 다시 판매하는 경우를 당연히 예상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또 "의약품 도매상은 자신이 한의사에게 리도카인을 공급한 수량·기간·사용량 등을 당연히 알 수 있고, 더군다나 도매상이 한의사에게 리도카인을 공급한 기간이 상당히 길고, 공급한 수량과 그 사용량도 상당하다는 것을 인지했다면 전문의약품을 사용할 수 없는 한의사의 불법 무면허 의료행위에 대해 충분 인식했을 것"으로 봤다.
무엇보다 "한의사가 의료법 위반 행위를 하는 사실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리도카인을 공급했다면 의료법 위반의 공범이나 방조범이 성립할 여지가 충분히 인정된다"며 "한의사에게 리도카인을 납품하는 업체를 처벌해야만 한의사의 무면허 의료행위를 근절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지수 의협 변호사는 "약사법에서 의사와 치과의사가 전문의약품을 처방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으나 한의사가 전문의약품을 처방했을 때 처벌 규정은 없다"며 입법 미비를 지적했다. 또 "의료법 위반 교사 내지 방조의 점은 검찰이 판단조차 하지 않아 판단유탈이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 변호사는 "약사법을 개정해 의약품공급업체가 전문의약품을 한의사에게 공급할 수 없도록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