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기록 누설 위반죄' 반드시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서울고등법원, 1심 뒤집고 의사면허정지처분 취소 판결
환자 기록을 타인에 열람하도록 한 의료인이라도 피해자의 고소 없이는 행정처분을 내릴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등법원은 6월 29일 보건복지부가 진료기록을 누설했다며 A의사에 내린 자격정지처분에 대해 타당하다고 판단한 1심을 뒤집고 해당 처분을 취소했다.
사건의 발단은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A의사는 2006년부터 강남에 성형외과를 운영해 왔다. 2014년 2월부터 2015년 3월 10일까지 병원 광고 효과 분석을 위해 B주식회사에 환자관리시스템에 대한 접속 권한을 부여했다.
시스템에는 환자 이름, 내원 경위, 수술 일자·부위 등의 정보가 저장돼 있다.
서울지방경찰청장은 2016년 6월 27일 보건복지부에 A의사에 대한 행정처분을 의뢰했다. 환자의 진료기록을 타인에 공개했다는 이유였다.
복지부는 2017년 A의사에 15일의 의사면허자격정지 처분을 내렸다. 구 의료법 제66조 제1항 제10호, 제21조 제1항을 근거로 했다.
구 의료법 제21조 제1항은 '의료인은 환자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환자에 관한 기록을 열람하게 하거나 그 사본을 내주는 등 내용을 확인할 수 있게 해서는 안 된다'고 돼 있다. 같은 법 제66조 제1항은 '보건복지부장관은 의료인이 이 법을 위반한 때에 해당하면(제10호) 1년의 범위에서 면허자격을 정지시킬 수 있다'고 규정한다.
A의사는 "시스템에 저장된 정보는 환자 이름, 내원 경위, 수술 일자·부위 등으로 비의료인이 작성한 기록에 불과하다"며 "이는 진료기록이 아니므로 복지부 처분은 부당하다"면서 의사면허 자격정지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A의사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복지부의 의사면허 자격정지 처분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구 의료법 제22조 제1항에서 규정하는 환자에 관한 기록이 반드시 진료기록에 한정되지는 않는다"며 "환자 이름, 내원 경위, 수술 일자·부위 등의 정보는 진료기록부에 기록해야 하는 환자의 건강과 관련된 내밀한 사항이다. 의료내용에 관한 정보이므로 구 의료법 제21조 제1항의 '환자에 관한 기록'에 해당한다"고 봤다.
"구 의료법 제21조 제1항은 환자에 관한 기록을 열람하게 하거나 그 사본을 내주는 것으로 행위 태양을 한정하고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A의사는 1심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이번엔 재판부가 A의사의 손을 들어줬다. 의사면허 자격정지 처분에 대한 취소판결을 내린 것
재판부는 A의사가 B회사에 열람하도록 한 정보가 '환자에 관한 기록'에 해당한다"고 본 1심의 판결은 그대로 유지했다.
재판부는 제21조 제1항 위반죄가 피해자 고소가 있어야 하는 친고죄인 점과 이에 대한 입법 취지를 먼저 설명했다.
"제21조 제1항 위반죄는 친고죄다. 반드시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실형, 집행유예, 선고유예나 벌금형이 선고될 수 있다"며 "친고죄로 규정한 입법 취지는 제21조 제1항 위반죄가 기소돼 사회에 알려지면 그 과정에서 오히려 피해자가 비밀로 유지하고자 하는 진료기록 등 은밀한 정보가 누설돼 수치심을 일으키거나 명예를 손상케 할 염려가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행정처분 역시 고소가 없음에도 그 제재를 강행하는 경우 오히려 피해자의 비밀이 더 널리 누설될 염려가 있다. 그와 같은 경우 행정처분도 하지 않기로 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이어 ▲제21조 제1항 위반에 대해 고소 유무와 관계없이 행정처분을 하려고 한다면 쉽게 개정할 수 있는 부분임에도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점 ▲이러한 규칙의 미비를 행정처분을 받는 자에 불이익으로 돌리는 것은 부당한 점을 들었다.
"복지부가 의료관계행정처분규칙이 제정된 후 현재까지 20여년 간 제21조 제1항 위반행위에 대해 고소가 없음에도 행정처분을 했다는 아무런 자료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 사건 A의사에 대해서만 처분을 하겠다는 것은 자기구속의 원칙에도 반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보건복지부가 굳이 원고에게 이 사건 처분을 함은 재량권의 일탈·남용으로서 위법하다"면서 "이와 결론이 다른 제1심판결은 부당하므로 원고의 항소를 받아들여 이를 취소하고 이 사건 처분을 취소한다"고 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