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낮은 자리에서 봉사와 의술을

가장 낮은 자리에서 봉사와 의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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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10.01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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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로 원장(방글라데시 꼬람똘라병원)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인 방글라데시에서 23년간 인술의 길을 걷고 있는 꼬람똘라병원 이석로 원장, 잠시 들른 한국에서 짬을 내 인터뷰에 응했다. 스스로를 낮추며, 결코 특별한 사람이 아닌 그저 방글라데시 사람들의 친구라고 말하는 그는 시대의 진정한 의사상을 돌아보게 한다.

ⓒ의협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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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로 원장은 방글라데시 꼬람똘라병원을 수도 다카 근교의 시골마을에 민간 자원으로 세워진 가난한 이들을 위한 병원이라 소개했다. 꼬람똘라병원은 1992년 경 콤스재단에서 세운 병원으로, 의사였던 이용웅 선생이 직접 발품을 팔아 부지를 다지고 인력을 모아 한국인이 세운 병원이다. 다른 병원에 비해 저렴한 치료비와 높은 수준의 의술, 친절함 덕분에 연간 7만 명이 넘는 가난한 사람들이 이 병원을 찾는다. 현지인 의사가 8명, 한국인 의사도 5명이나 되는 제법 규모 있는 병원으로 내외과·정형외과·이비인후과·재활의학과·가정의학과·안과까지 갖췄다. 거의 매일 두어 차례의 수술도 이뤄지며 300여 명의 외래환자들이 오간다. 

1994년 레지던트를 마친 후 의사로서 꼭 경험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에 3년을 목표하고 아내와 18개월 아들과 함께 건너갔던 곳이 방글라데시다. 순박하고 거리낌 없이 다가오는 그들에게 마음 한곳을 내주며 지낸 23년이란 시간 동안 기억에 남는 일도 많았다. 

"10년 전쯤인데요. 그때만 해도 구개구순열 환자들이 많았습니다. 저희가 수술을 해줬던 아이들 중에 만 두 살이 넘은 아이가 체중이 4㎏도 안되고 영양실조도 좀 있었어요. 저녁에 무사히 수술을 마쳤는데, 다음날 새벽 약간의 경기를 하더니 갑자기 심장과 호흡이 멈췄습니다. 다른 선천성 기형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만, 그와는 별개로 정말 큰일이구나, 이대로 병원 문을 닫게 되는 것인가 겁이 났죠." 

ⓒ의협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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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를 가지고 한 일이 최악을 결과를 낳은 것이다. 위로금을 주어 조용히 마무리하자는 일각의 의견도 있었지만, 이석로 원장은 어떤 큰 잘못을 돈으로 덮는 듯한 모양새가 내키지 않았다. 한참을 고민하다 보호자를 만나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기본적인 검사만 진행하고 수술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한 것이다.

"아이가 그리 된 것이 무엇보다 슬펐고, 그 다음엔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만약 우리 때문이라면 그 책임을 우리가 지겠다고 했습니다."

진심은 전해지게 마련이다. 보호자는 앞으로도 방글라데시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이 일을 지속해주기를 바란다는 말을 남기고 아이를 데려갔다. 그때 이석로 원장은, 병원은 결코 몇 사람의 희생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곳임을 절감했다.

방글라데시 사람들의 친구가 되다

이석로 원장은 방글라데시 사람들의 친구로서 의료 이외의 사역에도 힘써왔다. 워낙 가난한 동네다 보니 마을 사람들의 소득을 위해 고민했고, 자연스레 다양한 개발 사업으로 이어진 것이다. 집마다 묘목을 나눠주며 나무를 심게 했고, 인력거가 없어 비싼 돈을 주고 대여하는 이들을 위해 인력거를 만들어주고 조금씩 갚아나가면서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했다. 새끼 염소를 나눠주고 잘 키운 후에 그 염소의 새끼를 돌려받아 또 다른 가족에게 분양해주는 사업도 벌였다.

마을이나 학교 등 여러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우물을 파는 사업도 펼쳤으며 21개 마을의 산모들을 관리하며 안전한 분만을 도왔다. 공장 양호실을 운영하고 고아와 과부를 돕기 위한 단체도 설립했다. 젊은 청년들이 가난해 중도에 학업을 포기하는 사례가 많아, 교육의 기회를 넓히고자 장학사업을 벌여 150명이 넘는 청년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기도 했다.

그 청년들 중엔 병원에 돌아와 일하는 청년도 있고, 치과의사가 되어 전남대병원에서 수련중인 청년도 있다. 이석로 원장은 이 모든 사업의 가장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사람이라며 사람을 키우는 것이 앞으로의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 말했다. 

"처음엔 빈민가 거리 아이들이 학교도 가지 못하고 위험하게 방치되어 있는 모습을 보고 무엇인가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아이들을 모아 가르치기 시작했고, 그 아이들이 지금 60여 명 정도가 됩니다. 여기서 배운 학생들이 주위 학교로 진학해서, 좋은 성적을 받는 덕분에 갈수록 유명세를 타고 있습니다(웃음)."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그는 늘 가난하다. 하지만 희망을 찾아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마음만은 풍요롭다. 

인간을 이해하고 도울 수 있어 행복한 의사

ⓒ의협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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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떠나와 전혀 다른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것. 덥고 습하고 전기도 없고 시끄럽고 교통이 불편한 곳에서 사는 일은 좀체 익숙해지지 않는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환자들을 함부로 대하는 직원들이 있고, 작년 외국인 식당에서 발생한 자살 테러로 인해 20여 명 이상 희생되면서 테러에 대한 불안감도 생겨났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이석로 원장은 아내와 함께 방글라데시에 왔던 처음을 떠올린다. 왜 이 일을 하게 되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며 마음을 다잡는다. 

"사실 의사가 되겠단 생각은 없었거든요. 여러 공구들이 놓아져 있는 상가를 가면 한참 여기저기 살펴보곤 할 정도로 관심이 많아 아내가 지금이라도 공대에 가라며 핀잔을 주곤 합니다. 공대에 갔다면 기계만 보면서 사람을 이해하고자 하는 생각은 못했을 것 같습니다만(웃음)."

단순히 대학 입시 시험 점수가 높게 나오는 바람에 등 떠밀려 간 의대였지만 그렇게 운명처럼 의사가 됐기에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살고 있다. 

"공대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AI 시대가 도래 했고 시대가 변했습니다. 이제 스마트한 사람은 연구를 하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은 의사를 하면 좋겠어요. 지금이야 돈을 많이 벌면 좋은 직종이지만, 머지않은 미래엔 자기의 시간과 돈을 쓰면서 일하는 보람을 느끼는 저희와 같은 봉사단체 관련 직종이 유망할 겁니다(웃음). 다른 사람을 도우면 가난하고 불편할 수 있지만 인간으로서 성숙해지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깨닫는 좋은 선물을 받을 수 있거든요." 

허구한날 찡그리는 얼굴로 아파하는 사람들을 만나야만 하는 일이 쉽지만 않다. 또한 모든 아픈 사람들을 낫게 해주지 못해서 혹은 모든 사람들을 도와줄 수 없어서 초라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꼬람똘라병원에는 마을 개들이 먹을 것을 찾아 자주 옵니다. 새끼개가 오가다가 다치는 경우도 많아요. 그럴 때마다 어미개는 아파하는 새끼개의 상처를 자신의 혀로 핥아줍니다. 아마도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는 없어서겠죠.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어미개와 같이 별거 없어도 환자들의 하소연을 들어주며, 관심을 갖고 대하는 것만으로 환자들은 행복해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석로 원장은 의사가 남다르다면, 이렇게 무엇이든 도울 수 있는 마음 때문이라 믿는다.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고 회복하는 것을 도우며 인간을 이해하고 자신을 성찰하며 성숙해지는 것에서 의사로서 의미를 찾는다. 그래서 세상 모든 의사들이 환자의 질환에 집중하기보다는, 질환을 가진 환자에게 집중하길 바란다. 

이석로 원장은 우연찮게 방글라데시 땅을 밟아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보람을 찾고 더욱 용기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이라며 자신을 낮추고 다른 이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꼬람똘라병원은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전주예수병원·광주기독병원·여수 애향원·부산일신병원·대구동산병원·안동 성소병원·포항선린병원 등 병원을 설립한 콤스재단 회원병원들이 지금도 여전히 많은 도움을 주고 계시고요. 특히 전남대 정형외과 정성택 교수님과 전남대 치대 오희균 교수님, 매년 추석과 구정에 방문해 무료 수술을 해주고 계십니다. 참병원 김선태 원장님, 그리고 여러 친구들과 선후배, 지금껏 함께해주고 있는 아내까지 모든 분들이 즐겁게 도와주고 계십니다. 고맙습니다."

이석로 원장은 끝으로, 사람들이 주변을 둘러보고 사는 행복한 삶을 살기를 권했다. 
"여유가 있고 남아 있기에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부족한 중에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다 보면 그 부족한 것들이 채워지는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 같습니다.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하겠지만, 되돌아오는 것이 참으로 많습니다." 

거창하거나 특별한 일이 결코 아니고 하다 보면 모든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그는 오늘도 방글라데시 친구들과 마음을 나눈다. 그저 함께 손잡고 슬퍼해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될 것이라 믿으면서 말이다.

글=정지선 보령제약 사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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