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배상 청구소송 입증책임' 환자에 있어
[시작]
원칙적으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입증책임은 환자 쪽에 있다. 하지만, 의료전문가가 아닌 환자 쪽이 의사의 주의의무 위반, 그리고 그 주의의무 위반과 손해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를 밝혀내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환자 쪽의 입증책임을 '완화'시킨 것은 2000년 이래 우리 대법원의 일관된 입장이다.
그런데 자칫 의사의 과실과 인과관계에 대한 추정이 과하거나 결과적으로 의사에게 자신의 과실 없음까지 입증하도록 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사실]
임신 전부터 현성당뇨병으로 치료 받아 온 산모가 있다. 38주째 양막이 파열됐다. 태아가 후방후두위 상태였다. 질식분만을 시도했다. 견갑난산이 발생했다. 그래서 맥로버트 수기법을 시행해 체중 3.92kg의 아이를 출산했다. 출생 직후 울음이 없었고, 청색증 소견을 보였다. 대학병원으로 이송했지만 뇌병변 1급 장애 판정을 받았다.
원고들의 주장은 이러하다.
첫째, 병원 의료진이 수기회전이나 제왕절개수술을 실시해야 함에도 이를 시행하지 아니한 채 만연히 질식분만을 진행한 점.
둘째, 지체없이 기관 내 삽관 조치가 이뤄져야 함에도 17분이 경과한 이후에야 조치가 이뤄진 점.
셋째, 3.5∼4mm의 튜브를 삽입해야 함에도 직경 3mm의 튜브를 삽입한 점.
넷째, 앰부배깅 시 공기가 새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관찰됐음이 분명함에도 적절히 조치하지 않은 점. 다섯째, 의료진이 설명의무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쟁점]
크게 다섯 가지를 두고 법정 공방이 벌어졌다. 첫째, 후방후두위에 대한 조치를 소홀히 한 과실이 있었는지. 둘째, 분만 직후 기관 내 삽관을 지연한 과실이 있었는지. 셋째, 기관 내 삽관을 부적절하게 시행한 과실이 있었는지. 넷째, 기간 내 삽관 후 경과관찰 및 후속 조치를 소홀히 한 과실이 있었는지. 마지막으로 설명의무의 위반 여부가 재판의 쟁점으로 부상했다.
[1심] 수원지방법원은 병원 측 손을 들어줬다. 후방후두위라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제왕절개로 갈 이유는 없다는 이유에서다.
[2심] 서울고등법원은 1심을 뒤집고 병원의 과실을 인정했다. 출산 직후 처치 과실에 무게를 뒀다.
[대법원] 대법원은 2심 판결이 증명책임의 분배에 관한 법리, 그러니까 입증책임을 원고와 피고 사이에 어떻게 적절하게 나눌지에 대한 기존 대법원 판례의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며 원심(서울고등법원) 판결을 파기 환송했다(2017년 9월 21일 선고, 2015다20582).
[파기환송심] 사건은 다시 고등법원으로 되돌아왔다.
서울고등법원은 대법원 파기환송의 취지에 따라 최종적으로 원고 패소를 선고했다. 후방후두위에 대한 처치는 문제가 없었으며, 기관 내 삽관도 지연되지 않았고, 당시 진료방법 선택에 대한 의사의 판단은 적절했다고 봤다. 그리고 아기의 산소포화도가 낮게 나타난 것은 아기의 기질적 원인에 의해서라고 보았다. 설명의무 또한 제대로 이행했다고 판시했다.
출산은 2010년 6월이고, 파기환송심이 선고된 것은 8년이나 지난 2018년 6월이다. 병원이나 환자 쪽 모두 지난한 싸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