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개인정보 보험사 축적·유출 우려...지급 거절, 삭감 사유 늘어날 것
이세라 의협 총무이사 "심평원 위탁도 문제...진료비 영수증으로 충분"
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를 모색하기에 앞서 국민의 개인정보 유출 문제를 어떻게 막을지, 실제 청구업무를 떠안아야 하는 의료기관에 대한 보상 방안부터 논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소비자와 함께·(사)한국소비자교육지원센터·더불어민주당 고용진 국회의원은 공동으로 27일 국회의원회관 세미나실에서 '의료 소비자 편익 증진을 위한 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 토론회를 개최했다.
3400만명에 달하는 국민이 실손의료보험에 가입했지만, 복잡한 청구 문제로 구비서류 준비에 금전적·시간적 비용이 발생하고, 소액 청구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토론자 대부분은 소비자 관점에서 실손의료보험 청구를 간소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이날 공청회에서는 국민의 개인정보를 민간보험사가 축적하거나 정보 유출로 인한 부작용 문제를 비롯해 의료기관이 청구를 대행할 때 비용을 누가 낼 것인지, 전자문서 형태로 청구할 때 환자 개인정보는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보험회사와 의료기관 사이에 중개업체가 개입했을 때 발생하는 비용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해결방안은 제시되지 않았다.
토론회에서는 지난 9월 21일 고용진 의원이 대표 발의한 '보험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주요 논의 대상이 됐다.
보험업법 개정안은 보험 가입자가 의료기관에 진료비 계산서 등의 서류를 보험회사에 전자적 형태로 전송해 줄 것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고, 의료기관은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실손의료보험 가입자의 요청에 따라야 하며, 서류를 전송하는 비용은 보험회사가 부담토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민영회사를 위한 서류 전송 업무를 공공조직인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위탁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도 신설했다.
주제발표를 한 나종연 교수(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는 "진료비 서류를 보험회사가 통일하고, 전산 서류 발급으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을 감소시킬 필요가 있다"면서 "의료계와 소비자들은 전산화로 소비자의 정보를 보험회사에서 축적하고, 이 자료를 분석해 오용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으므로 신뢰 구축 방안이 요구된다"고 주문했다.
청구 간소화에 대해 보험회사와 의료계가 한 발씩 양보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고용진 의원은 "청구 대행 시 발생하는 비용을 보험회사에서 내겠다는 움직임도 있다"며 "건강보험 청구를 대행하고 있는 의료계가 제2의 건강보험인 실손의료보험 청구도 대행하고, 간소화 서비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세라 대한의사협회 총무이사는 청구 간소화를 논의하기에 앞서 몇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선을 그었다.
이세라 총무이사는 "실손의료보험은 보험회사와 소비자 간 계약에 의해 이뤄진 것인데, 오히려 의료기관만 손해를 보면서 청구대행 업무를 하라는 것"이라고 핵심을 짚었다.
"보험회사들은 보험 가입자에게 보험금을 신속·정확하게 지급하기 위해 청구 간소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보험금 지급 거절과 삭감 사유를 더 많이 찾아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한 이세라 총무이사는 "의료기관이 청구 대행을 하면 당장은 초진 진료기록만 원하지만, 청구 대행이 정착되면 더 자세한 진료기록을 요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개인정보의 집적과 유출의 위험성 문제도 우려했다. 더욱이 공공조직인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민영 보험회사의 업무를 위탁하는 것에도 문제가 있다고 짚었다.
이세라 총무이사는 "보험회사가 요구하면 환자 개인정보가 그대로 보험회사로 들어가는 것이 적절한지 검토해야 하고, 국민이 낸 보험료로 운영하는 심사평가원이 민간보험회사의 일을 대신해 주는 것도 맞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보험가입자에게 보험금 지급을 간편하게 하려면 '진료비 영수증만 주세요'라고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밝힌 이세라 총무이사는 "국민이 이런 문제를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보험회사 측 관계자가 참여하지 않아 의료기관에 대한 보상 방안, 진료비 영수증만으로 청구가 가능한지에 대한 의견을 듣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