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상당인과관계 없으면 손해배상 안 돼" 파기·환송
"악성신경이완증후군, 신경과 전문의 아니면 진단 어려워"
2차례 내원했지만 '악성신경이완증후군'을 진단·처치하지 못해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며 환자 가족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의료진의 주의의무위반이 환자의 안 좋은 결과와 상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 경우 손해배상을 구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제3부는 12월 13일 1심과 2심에서 판결이 갈린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1심 판결에 무게를 실어, 판결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했다.
사건은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A 씨(당시 22세)는 2011년 2월 18일 오후 8시 22분경 두통, 오심 및 구토 증상으로 H 병원에 내원했다. B 의사는 혈액검사를 했으나 특이소견이 없고, 경도의 구토 증세만 있다고 판단, 수액과 구토 억제제인 멕소롱을 투여했다. 이후 A 씨는 증상이 호전돼 오후 9시 43경 귀가했다.
귀가 후 구토 증상이 재발한 A 씨는 2011년 2월 19시 새벽 4시 32분경 다시 H 병원에 내원했다. B 의사는 A 씨의 생체징후가 정상범위에 있고, 8시간 전인 1차 내원 당시 시행한 혈액검사도 정상으로 나오자 수액과 멕소롱 주사 후 일반병실에 입실시켰다.
같은 날 새벽 5시 50분부터 A 씨는 안색이 창백해지며 호흡곤란과 복통을 호소했다. 간호사는 반좌위자세와 심호흡을 유도하고, 산소를 투여했다. 하지만 증세는 호전되지 않고, 오전 7시 45분경 혼수상태에 빠졌다. H 병원 C 의사는 오전 7시 55분경 뇌 CT 촬영을 실시하고, 오전 8시 10분경 중환자실로 옮겼다.
오전 8시 18분경 실시한 혈액검사 결과를 토대로 대사성 산증 및 급성신부전으로 진단, 오전 8시 40분경부터 비본, 오전 9시부터 칼슘 글루코네이트를 투여했다. 하지만 증세가 호전되지 않고, 혼수상태가 지속되자 S 대학병원으로 전원했다.
S 대학병원 의료진은 2011년 2월 19일 오전 11시 28분경 뇌 CT 촬영을 실시했지만, 특이소견이 없다고 판정했다. 낮 12시 40분경 요추천자 검사에서 세균감염은 확인되지 않았다. 의료진은 환자의 증상을 대사문제로 인한 의식 저하로 판단, 내과중환자실로 옮겨 오후 6시 47분경부터 투석치료를 실시했다.
D 담당의사는 2월 20일 오후 3시 35분경 뇌 CT 촬영 결과, 전날보다 뇌부종 증세가 악화된 사실을 확인했다.
신경과 의료진과 상의해 바이러스성 뇌염 가능성을 의심한 D의사는 항바이러스제인 어사이클로비어를 처방했다.
하지만 A 씨는 당시 뇌 CT 검사에서 뇌사가 의심되는 상태였다. S 대학병원 의료진은 개두술을 할 경우 뇌탈출 가능성이 있어, 생명 유지를 위한 보존적 치료만 계속했다.
A 씨는 2011년 3월 8일 오후 7시 43분경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사망했다. 원사인은 간부전, 심부전, 호흡부전 및 다발성 장기부전이었다.
멕소롱은 염산 메토클로프라마이드 성분의 약제 상표명이다. 오심, 구토 억제제로 사용된다. 성인 1일 10㎎을 1∼2회 주사한다. 과다투여할 경우 저혈압 및 빈맥 등 합병증이 나타날 수 있다. 탈수, 영양불량 등 신체적 피폐 환자에 투여할 경우 부작용으로 말린증후군(신경이완제 악성증후군)이 나타날 수 있다. 말린 증후군이 발생하면 고열이 지속되고 의식장해, 호흡곤란, 순환허탈과 탈수증상, 급성신부전으로 사망한 사례가 있다는 보고가 있다.
A 씨의 부모는 H 병원과 이후 전원한 S 대학병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진행했다.
H 병원 의료진에 대해서는 정맥주사로 멕소롱과 수액을 과다투여, 약물중독으로 인한 의식소실, 급성신부전, 고칼륨혈증을 일으켰음에도 대사성 산증으로 오진해 잘못된 치료를 한 과실을 주장했다.
S 대학병원 의료진에게는 전원 당시 급성신부전이 의심되는 상황에서 조속히 혈액투석치료를 실시하지 않았고, H 병원의 약물 과다투여로 인해 발생한 뇌부종으로 뇌압상승이 예상되는 상황임을 간과해 요추천자 검사 이후에도 뇌압상승 방지 처치를 하지 않는 등 치료상 과실로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주장했다.
멕소롱 과다투여에 대한 의료진의 과실 여부에 대해서는 1, 2심과 대법원 모두 과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감정촉탁 결과에 따라 멕소롱의 총량이 40㎎인 경우 과다투여로 볼 수 있다"면서도 ▲1차 내원 시 멕소롱이 혼합된 수액 투여 도중 증상 호전으로 수액을 제거하고, 2차 내원 시 다른 수액으로 교체하는 등 전환한 멕소롱의 양을 알 수 없었던 점 ▲저혈압 및 빈맥은 대사성 산증에 의해서도 초래될 수 있는 점 ▲발열이나 근육경축 같은 말린증후군의 다른 증상이 없었던 점을 들었다.
대법원은 "H 병원이 멕소롱을 과다투여했다고 보기 어렵고, 권장 투약 간격을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며 "설령 1일 최대권장사용량을 초과해 투여했더라도 A 씨에게 나타난 증상이 멕소롱 과다 투여로 인한 악성신경이완증후군에 의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치료 소홀과 설명의무 위반 등에 대해서도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1차 내원 당시 실시한 혈액검사에서 혈중 칼륨 및 크레아티닌 농도가 모두 정상이었고, 생체징후도 정상범위 내에 있어 대사성 산증이나 급성신부전을 의심할 만한 정황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환자에게 발생한 중대한 결과가 의사의 침습 행위로 인한 것이 아니거나 환자의 자기 결정권이 문제되지 아니하는 사항에 관해서는 의사의 설명의무 위반이 문제될 여지가 없다"고 밝힌 재판부는 "망인이 구토와 탈수로 인해 대사성 산증 및 급성신부전을 일으켜 사망한 것으로 볼 수 없어, 이에 대한 설명의무 위반이 문제될 여지도 없다"고 판단했다.
1심과 항소심 판결은 2차 내원 당시 H 의료진의 과실과 A 씨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에 대한 판단에서 갈렸다. 1심에서는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고, 환자 측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기각했다.
반면 서울고등법원(항소심 재판부)은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과 환자에게 발생한 악 결과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은 경우라도 주의의무 위반 정도가 일반인의 처지에서 보아 수인한도를 넘어설 만큼 현저하게 불성실한 진료를 행한 것이라고 평가될 정도에 이른 경우, 그 자체로서 불법행위를 구성해 환자나 그 가족이 입은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의 배상을 명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2006년 9월 28일 선고 2004다61402 판결)에 무게를 실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A 씨에게 급속히 진행된 뇌병증 및 대사성 산증의 진행 경과에 비춰 H 병원 의료진이 진단 및 치료의무를 소홀히 한 과실과 A 씨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는 인정되지 않는다"면서도 "2차 내원 후 1시간 만에 상태가 급속히 악화됐음에도 의사에게 환자의 상태를 보고조차 안하고, A 씨가 의식을 상실할 때까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아 뇌병증의 원인을 찾아 치료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하도록 한 것은 일반인의 수인한도를 넘어설 만큼 현저히 불성실한 진료를 행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H 병원에 대해 A 씨 가족이 입은 정신적 고통을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주의의무 위반과 환자에게 발생한 악 결과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 경우, 그에 대한 손해배상을 구할 수 없다"며 "A 씨가 2차 내원한 후 혼수상태에 이를 때까지 적절한 치료와 검사를 지체했다 하더라도 일반인의 수인한도를 넘어설 만큼 현저히 불성실한 진료를 행한 것으로 볼 수 없어, 위자료 배상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1차 내원 시 혈액검사, 활력징후, 맥박 등이 모두 정상범위에 있었던 점 ▲멕소롱 투여 후 증세 호전으로 귀가한 점 ▲2차 내원 시 호흡곤란·복통 등의 증세를 호소하자 H 병원 의료진이 A 씨를 집중관찰한 점 ▲CT 촬영 후 중환자실로 이동시켜 혈액검사를 실시하는 등 곧바로 조치를 취했고, CT 결과로도 이상소견이 발견되지 않은 점 등의 일련의 과정을 했다.
진료기록감정촉탁 결과도 언급했다.
대법원은 ▲'응급실 상황에서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검사해야 하고, 일반 의료진 능력으로는 진단과 치료에 한계가 있으므로 즉시 동맥혈가스분석 검사를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응급실 당직 의사에게 과실이 있다고 연결하기 어려우며 내원 시부터 적절한 처치까지 치료가 약 3시간 정도 늦어진 것을 치명적 범실로 보기 어렵다'는 진료기록감정촉탁 결과와 ▲서울대학교병원장에 대한 진료기록감정촉탁에서 신경과 교수가 "대사성산증, 미오글로빈 증가, 뇌부종으로 인한 뇌사 등 악성신경이완증후군은 환자를 다뤄본 경험이 있는 일부 신경과 전문의가 아니면 알기 어려운 질병"이라는 견해를 밝힌 점에 무게를 실었다.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는 의료사고의 과실과 손해배상책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H 의료재단의 패소 부분을 파기하고, 해당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기 위해 원심법원에 환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