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나 외부 구속없이 의료계 내부 원칙·윤리·도덕적 잣대에 따라 자율 징계해야"
최근 의료계 내부에 자율징계 시스템을 도입하자는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맞는 길이다. 그것은 일부 의사들의 진료행위와 처신하는 품위가 일반 상식수준에도 이해하지 못할 일탈이 실제 벌어지고 있고, 최근 의사면허취소기준 설정을 확대한다며 일반 형사 범법에도 의사면허를 취소하겠다는 타율 입법이 추진되고 있는 현실에서 우려하는 당연한 주장이다.
더욱이 의료인 성범죄 근절강화 대책을 마련하며 국민의 알권리와 선택권보장을 위해 의료인 징계정보 공개가 필요하다고 한다. 의료계는 지역 사회에 주홍글씨를 새기는 마녀사냥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결국 의료계는 자율과 타율 사이 의료행위의 한계와 실제 딜레마에 빠지게 됐다.
한국의 의사들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정해진 여러 규정에 따라 통제된 시스템(국민건강보험법)하에서 진료하고 있다. 자의로 치열한 의대 학사과정과 국시를 거쳐 의사면허를 취득하면 높은 임계치의 윤리와 품위를 요구한다.
사람 사는 사회에 자기 멋대로 살 수는 없다. 춘추시대 이전 부터 이른바 노자의 도덕경은 사람 답게 사는 길을 구현해 왔다. 그러나 아무리 높은 도덕율을 요구하여도 인성(人性)은 내재한 본능적 충동이 있어 의사 중에 극소수는 비윤리 의료행위를 저지르고 있음은 사실이다.
극도로 악화된 의료환경에서 일탈의 유혹을 이겨 내기는 쉽지 않다. 국가면허로 국민 의료를 행하는 주체인 의사들에게 의료법으로 규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의학은 질병을 치유하는 학문이고 의사는 습득한 모든 의학지식을 동원해 진단 치료해야 함 또한 너무도 당연하다.
그런데 교과서 대로의 진료를 제도권으로 묶어 통제하며 그 규정 밖의 진료행위는 마치 범법행위 인 것처럼 취급하는 나라는 공산 사회주의 국가 외에 찾아보기 힘들다. 위축된 진료 환경에서 오진의 굴레로 3명의 의사를 법정 구속시킨 판사도 생겼다.
이제는 법관마저 진료를 통제하려 하고 있다. 진료의가 범법자가 되는 상황에서는 도덕적 이탈자가 암약되기 마련이다. 도덕은 인의(仁義)로 교육이나 학습을 통해 형성되므로 그 환경이 중요하다. 칸트도 인성의 본질에는 선악이 없고 그 환경과의 상호접촉으로 선하거나 악해질 수도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지금은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의 참다운 초도덕적 생활이나 '유토피아'같은 사회를 요구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이런 현대환경과 여건에서 이제 객관화된 도덕율로 의사사회 조직을 재무장해야 할 시기는 됐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 신전(BC 600경)의 선서가 의성(醫聖) 히포크라테스(BC460∼377)윤리지침으로 내려올 정도로 고래로 의사는 그 의술을 행함에 있어 자율성을 보장하는 대신에 엄격한 도덕율과 직업 윤리성을 요구하였고 그 사회적 책임 또한 타직종보다 훨씬 엄중한 편이었다.
인권이 무시된 중국의 장기매매에 관련된 의사들을 보면 권력 앞에 양심과 윤리는 허황하기도 하지만, 최근 한국 소비자 직업 신뢰도 설문에서 나타난 한국 의사들의 윤리의식과 도덕율은 아직 다른 어떤 면허 직종보다 높다는 것이 드러나 고무적이다.
그런데 언제부터 인가 극소수 범법자 혹은 규제이탈자가 발생한 것을 의사 사회 전체로 확대 매도하는 작위적 언론보도는 다분히 정부의 의사 통제 수단으로 볼 수 있다.
저수가 의료보험을 정착 확대하려는 왜곡된 정책에 의사단체가 저항할 때마다 의사비리라며 침소봉대 해 확대 보도해 왔다.
정권 홍보 차원에서 의사들의 비윤리성을 강조하는 보도지침으로 국민들의 의사신뢰에 멍에를 씌워왔던 수순을 우리는 알고 있다. 30여년 세월 정부의 그 매도 술수 탓에 의사에 대한 국민신뢰와 존경심은 땅에 떨어지고 불신의 이미지가 씌워져 버렸다.
사회주의 집단의 중산 노동계급 정도의 기술자로 추락된 것이다. 여기에 최근에는 대리수술 같은 비행(卑行)으로 수술실 내부의 신뢰성까지 문제시하고 수술장 CCTV 설치까지 하려 들고 있다. 정부나 국회는 여전히 입법으로 옥죄려 들고 있다.
지금이라도 이 수순을 역전시킬 수는 없는가? 어렵고 억울하지만 신뢰 회복을 되찾는 길, 그 길은 자율적 정화의 기틀을 마련하고 정착시킬 수밖에 없다. 먼 미래 의료계의 신뢰를 위해 그 동안 타율로 매도된 의사신용을 자율로 되찾아 보자는 운동이다. 신뢰는 신용사회에서 핵심적 가치이고 도리이다.
신뢰는 오랜 기간 어렵게 쌓아지지만 그의 붕괴는 한 순간 모래알처럼 무너진다. 신뢰가 쌓이면 존경심이 생기고 그것은 품격 높은 희생과 봉사정신을 유발하며 그에 따라 선순환의 윤리의식을 심어줄 것이다.
오랫동안 타율로 물들어 온 진료가 하루 아침에 전환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한 걸음씩 나아갈 수밖에 없다. 비윤리 부도덕성이 드러난 의사는 전문가들의 평가로 자체 조율하는 자율징계를 시행해야 하는 것이다.
정부나 외부의 구속을 받지 않고 의료계 구성원 내부의 원칙과 윤리와 도덕 잣대에 따라 징계를 해야 한다. 어디까지 징계하며 그 효율성은 과연 동의할 수 있을까.
의료법에 따른 형사적 징계는 별도 조치에 따르지만, 의료계의 윤리적 잣대에 치명적 손상을 끼친 경우 면허정지까지 자체징계 할 수 있는 권한을 의사단체가 행사해야 한다. 면허관리기구 신설도 자율징계에 좋은 방안이다. 변협처럼 징계권의 국회 입법까지 고려해야 한다.
일부 의사들은 '그 동안 정부의 규제에 시달려 온 의사들에게 동료 의사단체마저 규제 억압하려는 것인가'하고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수십년 요구해 온 의협 대의원총회의 집행부 수임의 정화 징계 안이었으며 멀지만 이 길은 의사들의 신뢰구축의 방향이고 지름길임을 이해해야 한다. 자체 교육과 의료 환경도 강도 깊이 줄기차게 개선해야 할 것이다.
정부나 언론, 시민단체에게 의사의 신뢰를 위한 자체 정화 방향에 대한 이해와 설득도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오진이란 죄목으로 의사를 법정 구속한 법조계에도 의사의 진료 행위는 환자의 믿음에서 출발하고 질병 치유에 가장 가치 있는 당위성임을 이해시켜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암울한 의료환경과 그 자율 속에 한 명이라도 억울한 의료인이 생기지 않도록 세심한 점검과 신문고 설치는 필수적이며 한편 과잉 규제나 진료위축의 실마리가 되는 규정 철폐를 위해서는 의사단체가 끊임없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