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시집이 나오던 날 선배가 말했다
이 길도 괜찮다
축하 연주 내내 파가니니와 걸었다
낯익은 길 위에서 천천히 발을 옮기던 그가 멈칫,
아리아 한 움큼을 끊어 공중으로 흩뜨리고
끊긴 틈새 헛디뎌 바닥에 떨어진 발목이
절뚝거리는 몇 소절의 신음을 흘렸다
아리아도 숨 쉬고 가슴 뛰는데
아리도 상처 나면 붉은 피 흘리는데
버릴 수 있다고요
떨칠 수 있다고요
건밤 새고 나면
유년의 끊어진 연줄에 매달려 떠나던 허공처럼
아직도 하늘을 동경하고 있을 거라고
방금 축사를 마친 선배가 시집을 뒤적이며 말했다
굵기가 있어서 그래
한림의대 교수(강남성심병원내분비내과)/<문학청춘> 등단(2013)/한국의사시인회 초대회장/시집 <가라앉지 못한 말들> <두근거리는 지금>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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