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동생이 수술동의서 서명했는데…'설명의무 위반' 판결

환자 동생이 수술동의서 서명했는데…'설명의무 위반' 판결

  • 홍완기 기자 wangi0602@doctorsnews.co.kr
  • 승인 2019.01.0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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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등법원, 1심 판결 뒤집고 "자기 결정권 침해 인정"
'성인으로서 판단능력 있으면, 친족 승낙을 환자의 승낙으로 갈음할 수 없어…'

ⓒ의협신문 김선경
ⓒ의협신문 김선경

환자의 보호자가 수술동의서에 서명했어도, 환자 본인에게 받지 않았다면 '설명의무를 위반'해 환자의 자기 결정권을 침해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등법원 제17민사부는 2018년 7월 19일 환자 가족의 손해배상소송을 기각한 1심을 뒤집고, 환자 본인에게 설명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위자료 1500만 원 지급을 선고했다.

사건은 2009년 7월 21일 A씨가 B병원 정형외과를 내원하면서 시작됐다. 의료진은 당시 "치료법으로 일리자로프 연장술을 고려할 수 있다. 무릎 관절의 운동 범위 회복은 어렵다"고 설명한 후 재내원을 권유했다.

A씨는 9월 22일 B병원을 다시 찾아, 대퇴골 연장 수술을 받기로 했다. 2010년 1월 25일 일리자로프 외고정기를 이용한 대퇴골 연장 수술을 받았다. 당시 A씨 대퇴 길이는 우측이 좌측보다 3.2㎝ 짧은 상태였고, 우측 무릎 관절의 운동 범위는 0∼90도로 제한돼 있었다.

수술 후 A씨는 골수염이 재발했다. B병원은 항생제 치료를 시행했다. 골유합 미비 등을 이유로 2010년 9월 25일 외고정 장치를 제거한 후, 골수강내 금속정 고정 및 뼈 이식 수술을 받았다.

이후 우측 무릎 관절의 강직이 발생, 2012년 2월 17일 관절경 및 일부 개방적 유착 박리 수술을 받았다. 유착박리수술 후에도 우측 무릎 관절의 운동 범위 제한이 개선되지 않아 같은 해 6월 8일 금속정 제거 및 대퇴사두근 성형 수술을 받았다.

A씨의 대퇴길이는 우측이 좌측보다 2.2㎝ 짧은 상태다. 수술로 우측 대퇴 길이가 1㎝ 연장됐다. 수술 후 우측 무릎 관절 운동 범위는 15∼60도로 수술 전에 비해 운동 범위가 50% 감소했다.

한편, A씨는 6세 때 우측 무릎을 다치는 사고를 당해 접골원에서 치료를 받은 경험이 있다. 이후 다시 넘어져 우측 대퇴부 골절상을 입었다. 당시 치료 과정에서 골수염이 발생했다.

18세, 21세 되던 해에는 C병원에서 2차례에 걸쳐 절개 및 배농술을 받았다. 대퇴부 골절, 골수염 등의 후유증으로 우측 대퇴부 단축, 우측 무릎 관절의 운동 범위 제한, 요추 변형 등 후유증을 앓게 된 병력이 있다.

A씨 측은 "B병원이 ▲환자의 나이를 고려해 수술 부위 감염으로 인한 골수염 재발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수술을 시행한 잘못이 있으며 ▲감염 관리상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아 수술 부위에 봉와직염과 골수염을 발생시켰다"고 주장했다.

또한 ▲의료진이 수술 후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부작용·합병증 등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성인으로서 판단능력을 갖고 있는 환자를 제쳐두고 동생에게만 수술에 관한 설명을 해 설명의무의 이행을 했다고 볼 수 없다"며 손해배상소송을 진행했다.

1심 법원과 서울고등법원은 모두 수술상의 과실이나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판단은 '설명의 의무' 위반 판결에서 갈렸다.

사건 수술 전날인 2010년 1월 24일, B병원은 수술 동의서에 수술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과 후유증을 수기로 작성했고, A씨의 동생이 해당 수술 동의서에 서명했다.

1심 법원은 ▲환자가 담당 의사로부터 치료를 위한 대퇴골연장술이 필요하고, 우측 무릎 관절의 운동 범위 회복은 어렵다는 취지의 설명을 듣고, 2개월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다시 병원에 내원해 수술을 결정했던 점 ▲담당 의사가 "골수염이 재발할 경우 재수술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과 함께 수술의 위험성·합병증 등을 동의서에 직접 기재했을 당시 입원실에 A씨가 함께 있어, 위 설명을 직접 들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고려했을 때, 의료진이 설명의 의무를 위반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서울고등법원은 "환자가 직접 의사의 설명을 듣고, 수술에 동의할 수 없었던 특별한 사정이 보이지 않는다"며 "의료진이 환자 본인이 아니라 동생에게 수술 부작용·후유증 등을 설명했다는 것만으로 환자에 대한 설명의무를 다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특히 '환자가 성인으로서의 판단능력을 가지고 있는 이상 친족의 승낙으로써 환자의 승낙에 갈음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결들(대법원 1994년 11월 25일 선고 94다35671 판결, 대법원 2015년 10월 29일 선고 2015다13843 판결)에 무게를 실었다.

재판부는 "수술동의서에 환자 동생이 서명했다는 사실만으로는 합병증과 부작용이 드물지 않고, 수술 이후 적극적 물리치료와 세심한 관리가 필요해 환자와 보호자의 상당한 노력이 요구되는 이 수술과 관련해 병원 의료진이 감염을 비롯해 부작용과 후유장해에 관해 설명했다는 점을 인정하기 부족하고 달리 인정할 근거가 없다"고 봤다.

"A씨가 동생과 함께 설명을 듣고 동의서에 서명·날인만 동생이 하도록 했다거나 동생으로부터 의사의 설명 내용을 충실히 듣고 자기 결정권을 행사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며 "환자는 사건 수술 시행 결정에 관한 자기 결정권을 침해받음으로써 정신적 고통을 입었다고 할 것이므로 금전으로 위자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서울고등법원은 "위자료 액수는 수술 내용과 필요성, 발생한 후유증 내용과 발생 경위·경과, 환자의 나이와 가족관계, 그 밖에 여러 사정을 참작해 1500만 원으로 정함이 상당하다"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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