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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8 17:57 (목)
"독특하고 매력적인 만화…대체 불가능"
"독특하고 매력적인 만화…대체 불가능"
  • 이영재 기자 garden@kma.org
  • 승인 2019.01.07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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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만화 항생제' 연재 시작한 박성진 원장(강원 춘천시·하나내과의원)

"만화는 스토리를 갖고 있는 연속적인 그림과 글의 조합이다. 그러나 만화는 형식과 내용, 역할과 기능면에서 다양하게 표현될 수 있고, 회화·영화·문학 등 예술적 표현수단과 교차점을 지니기 때문에 만화를 한 마디로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랜 시간 간직해 온 사랑이지만 정의조차 불가능한 영역에 다가서며 그대로 한계가 되고 가슴 속 만화앓이는 계속된다. 

박성진 원장(강원 춘천·하나내과의원)이 새해부터 '만화 항생제' 웹툰 버전을 인터넷 <의협신문>을 통해 연재한다. 그는 지난 2002년 1월부터 2004년 10월까지 <의협신문>에 '만화 항생제'를 연재하며 의학의 전문적인 영역을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냈다. 2005∼2006년, 2013년에는 힘겨운 의료현실을 감내하는 의사들의 속내를 한 컷 만평에 옮겼다. 일간 매체에는 '진료실 엿보기'·'유쾌한 당뇨닥터' 등을 통해 대국민 소통에 나서기도 했다. 

의학만화가로 이름을 알린지 스무 해에 가깝다. 많은 시간이 지났어도 변하지 않는 게 있다. 만화와 함께 할 때의 즐거움이다. 고통이 따르는 즐거움….

결이 다른 감정을 한 데 모으는 지난한 시간이 이제 다시 시작된다. 그의 고통과 즐거움 속으로 한걸음 더 다가선다.

 

ⓒ의협신문 김선경기자 photo@kma.org
ⓒ의협신문 김선경기자 photo@kma.org

의사 중 많은 이들이 외도를 한다. 그 가운데 글, 그림, 글씨, 사진, 음악 등 창작을 수반하는 일들은 언제나 어렵고 외롭다. 그는 왜 태블릿으로 펜을 옮길 수밖에 없을까.

"의학만화는 어렵고 딱딱한 의학지식을 이야기에 녹여서 글과 그림으로 풀어냅니다.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제일 좋아하는 분야입니다. 생각나는대로 바로 작업을 시작할 수 없는 현실이어도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 

16년전 <만화 항생제>는 '처음'이라는 형식으로 독자들과 접점을 찾아 나갔지만 웹툰은 대세가 된 지 오래다. 형식이 내용을 지배하는 시대에 이번엔 어떻게 풀어갈까.

"외국에서는 인터넷 만화를 웹코믹(Webcomic)이라고 합니다. 웹툰은 카툰과 만화책 형식을 복합적으로 담고 있는 한국적인 플랫폼입니다. 이젠 외국에서도 한국의 웹툰은 웹코닉이 아닌 웹툰이라고 부릅니다. 지면 연재는 꽤 오랜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제 게으름 탓에 새로운 내용을 담지 못했습니다. 이번 웹툰에는 비약적으로 발전한 B형간염·C형간염·AIDS 치료제 등 항바이러스 분야 업데이트에 주력할 생각입니다. 상대적으로 큰 변화가 없는 항균제 분야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고 철 지난 유머코드도 신중히(?) 손볼 생각입니다."

진료에 찌든 외양은 만화이야기가 시작되면서 금세 홍조를 띤다. 만화의 힘일까.

"이번 연재 시작이 부끄럽지만 제겐 '오래된 미래'입니다. 입은 지 시간이 흘러 해졌지만 편안한, 그러면서도 새로운, 맞춤옷을 다시 찾은 느낌입니다. 즐겁습니다."

단행본 <만화 항생제>는 출간하자마자 공전의 히트작으로 화제를 모았고 이후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았다. 문화부에서 선정한 우수도서에도 선정됐다. 책의 운명이 궁금하다.

"<만화 항생제>는 군자출판사에서 초판 출간이후 10쇄까지 나왔습니다. 출판사에서 수 차례 개정판 제의가 있었지만 개인적인 여건 상 다시 그릴 여유가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책을 그대로 둘 수는 없었습니다. 새로운 정보가 없는 학습만화는 오히려 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출판사에 요청해서 절판했습니다."

의대생시절부터 맺은 인연이니 30년이 넘는다. 만화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의사로서 가진 것은 극히 미미하지만 의학만화는 그나마 잘 할 수 있는 분야라는 생각입니다. 당시만 해도 만화로 의학지식을 그려내는 건 경쟁력도 좀 있었습니다(웃음). 만화작업은 즐겁습니다. 모든 창작이 그렇지만 과정은 힘들어도 그려내고 나면 뿌듯합니다. 누구에게나 허락되지 않기에 홀로 그 '보람'을 만끽합니다."

새 작품을 냈다는 소식은 없었다. 손이 근질거릴만한 했을텐데 용케 견뎠다. 그런데 견딘 게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의협신문 김선경기자 photo@kma.org
ⓒ의협신문 김선경기자 photo@kma.org

"마음이야 항상 만화에 머무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만화가로서가 아니라 13명의 식구가 있는 내과 개원의로서 살아남는 게 더 중요했습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밥벌이 굴레를 벗어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도 예의 버릇은 못 버렸다. 자신의 웹툰사이트(www.meditoon.net)통해 이전에 없던 새로운 시도를 했다. 스토리만화였고 완결은 잠시 미뤘다. 

"작품 기획은 여럿입니다. 그러나 완성된 건 없습니다. '초음파의 신'이라는 스토리만화에 도전했습니다. 백순구 원주의대 교수님(원주기독병원 소화기내과)의 도움으로 복잡한 초음파 증례를 이야기에 녹여내고 보다 구체적인 의학 정보를 강의로 담아 유튜브로 연동시키는 형식이었습니다.

정보와 재미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예기치 못한 상황에 부닥쳤습니다. 함께 작업하는 검진실장이자 만화가 동료 신성식 작가의 암 투병으로 인해 자연스레 중단됐습니다. 다행히 신 작가는 예후가 좋습니다. 몸 상태가 회복되면 바로 이어갈 예정입니다."

만화없이 메마른 시간을 보냈다. 잊혀질만도 하다. 열정도 가물거린다. 그래도 갈증은 남는다.

"열정은 예전같지 않습니다. 나이도 들고…. 무엇보다 절망적인 의료현실에서 의원 경영은 너무 힘듭니다. 그렇지만 만화는 여전히 독특하고 매력적이고 대체할 수 없는 분야입니다. 그 매력에 자주 기대고 싶습니다."

이번 연재는 숨죽이던 본능의 회복이다. 그리고 또 다른 기회도 엿본다.

"항생제도 중요하지만 질환별 만화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상지질혈증·골다공증·당뇨병·B형간염·C형간염 등의 치료제가 새로 개발돼 시장에 나와 있습니다. 제가 대학병원에서 수련할 때는 없던 약제입니다. 치료과정에 대한 개념이 복잡하고 이해도 힘듭니다. 물론 대부분의 내과 의사들은 잘 알고 있지만 내과 전공이 아닌 의사들에겐 생소하고 낯섭니다. 이런 질환에 대해 알기 쉽게 만화로 그려낸다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춘천에서 개원한지도 십 수년이다. 어엿한 클리닉이 됐을까. 아니면 아직도 불안에 잠식당한 영혼일까.

"모든게 점점 나빠지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개원의들은 같은 마음입니다. 규제는 심해지고 시장은 좁아지고 의료전달체계는 무너져서 3차병원 쏠림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자본 없는 영세한 병의원은 살아남기 힘듭니다. 언제쯤이면 괜찮아질지 되묻고 싶습니다."

그의 출현이후 각 영역의 전문 학문을 다루는 만화가의 등장이 잦아졌다. 그 역시 그들과 함께 '의생명과학만화연구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금은 의사만화가 전성기입니다. 비단 의학뿐만 아니라 생명과학이나 공학 등 여러 전문분야에서 전문만화가들의 활동이 눈부십니다. 친분이 있는 의사만화가만 해도 정민석 아주의대 교수님을 비롯 유진수(외과)·배재호(정신건강의학과)·박지영(가정의학과)·박정재(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과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인 남편과 함께 작업중인 윤유정 선생님이 있습니다. 또 생명공학만화의 거두 신인철 한양대 교수님과 대학생 만화가로 생명과학만화를 그리는 김도윤 씨, 의대생이면서 만화를 그리는 황지민 씨 등은 그림 실력과 전문지식을 겸비하고 있습니다. 의학일러스트 분야의 장동수·윤관현 선생님도 함께 합니다. 이 분들과 의생명과학만화연구회를 통해 정기적인 모임 갖고 있습니다. 1세대 의사만화가로 이젠 퇴물이 된 기분입니다(웃음)."

새 세대의 만화가는 어떤 모습일까. 특히 의사만화가라면 어떨까. 

"만화를 좋아한다면 보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그리고 참여하길 바랍니다. 그림 실력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인공지능이 도입되고 4차 산업혁명의 시기가 되면 의사의 역할도 달라지게 됩니다. 단순 지식의 암기나 적용만으로 살아남기 힘듭니다. 새로운 안목으로 보다 창의적인 미개척 분야에 뛰어드는 게 중요합니다. 만화는 의사에게도 좋은 도구이자 나침반이 될 수 있습니다."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결정적 순간'을 말했다. 그는 일생 동안 '렌즈가 맺는 상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지만, 그것이 시간을 초월한 형태와 표정과 내용의 조화에 도달한 절정의 순간'을 갈망했다.

의학만화가 박성진. 그에게 앞으로의 시간은 '결정적 순간'을 찾는 여행이다. 고단한 삶을 감내했던 그가 만화에 대한 열정이 잦아들고 의료현실에 대한 절망이 늘어가면서도 다시 뗀 발걸음이다. 가슴에서 시작해 발끝까지 이르는…

그 여정의 끝에 뭐가 있을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 때는 이미 결정적 순간을 지나쳤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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