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의·의결-조정 기능 분화..."급여기준·수가, 전문·별도위원회서 조정"
최대집 의협 회장 "의사결정구조 정상화 위한 범사회적 운동 추진"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 심의·의결 사항에 대한 공급자·가입자단체의 공감을 얻기 위해 건정심의 기능과 역할, 위원 구성 등을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이 또다시 제기됐다.
건강보험정책과 건보재정 전반에 걸친 포괄적 내용을 최종 심의·의결하는 건정심의 기능을 심의·의결과 조정 기능으로 분화하고, 건정심 결정의 합리성을 높이기 위해 공익대표의 중립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7일 국회에서 자유한국당 이명수 의원(보건복지위원장) 주최, 대한의사협회 주관으로 '합리적 의사결정구조 마련을 위한 건정심 개편방안 모색 정책세미나'가 열렸다.
이날 발제를 한 이평수 전 차의과대학교 교수(전 의협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는 건정심의 문제점으로 ▲이의제기 또는 반대에도 표결에 의한 일방적 의사결정 ▲수가협상 결렬 시 재정운영위원회의 일방적인 페널티 요구 ▲수가협상 결렬의 책임을 의약계에만 주어지는 것은 부당 ▲수가협상 결렬 시 중재기구 부재 ▲계약당사자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수가 결정 과정의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중재기구의 부재 등을 꼽았다.
사실 이런 지적과 제언은 현행 건정심 구조가 시작된 16년전부터 꾸준히 제기돼왔다. 지난 2004년 감사원도 건정심 구성 및 운영의 부적정성을 지적하고 개선을 주문했지만, 아직까지 개선되지 않고 있다.
당시 감사원은 집중적으로 공익대표의 중립성 확보 필요성을 제기했다. 총 25명의 건정심 위원 중 위원장(보건복지부 차관)과 가입자대표(8명), 공급자대표(8명)를 제외한 공익대표 8명이 정부 부처 공무원(2명)과 정부출연기관 대표(6명)으로 구성된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즉 공익대표를 중립적인 입장에서 독립적인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사람으로 위촉해 실질적인 심의, 의결이 가능하도록 운영해야 한다는 것.
이 전 교수는 대안으로 ▲건정심 기능의 의결과 심의·조정 기능으로 분화 ▲급여기준, 급여의 절차와 방법, 본인부담비율 등은 심의·조정 결과를 사실상 의결로 수용 ▲분야별 특이사항은 전문위원회와 별도위원회를 제도화해 조정 ▲공급자와 가입자가 동수로 추천한 공익대표 위촉 ▲위원장은 공익대표 중 선출 등을 제시했다.
서진수 대한병원협회 보험위원장은 건정심 위원 구성, 운영 과정, 수가계약, 전문성 결여 등 네 분야로 나눠 문제점을 지적했다.
위원 구성에 관해서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규정했다. 건정심에서 2018년 건보료 인상 관련 논의 당시 처음에는 건보료 인상에 찬성하던 공익대표들이 가입자와 공급자의 의견이 계속 대치하자 결국 건보료 인상 반대로 돌아서 건보료 인상이 무산된 사례를 들며, 건정심 의결 구조의 불합리성을 꼬집었다.
건정심 운영 과정에 대해서는 형식적으로 운영되는 건정심 보고안건에 대한 서면심사를 언급했다. 보건안건의 경우 반대의견을 피력해도 의결 자체가 불가하기 때문에 정책에 반영시키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수가계약에 관해서는 계약 결렬 시 페널티 부여 부당성, 결렬 책임을 일방적으로 공급자에게만 부과, 정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 주도 협상 등을 지적했다.
전문성 결여에 관해서는 상당수 가입자대표가 거의 모든 안건에 발언도 하지 않는 등에 문제를 제기했다.
김준현 건강세상네트워크 대표는 건정심의 심의·의결 권한을 보험자인 건보공단에 이관해 보험자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대표는 "보험료, 급여가격 결정 권한을 보험자가 가지고 상대가치·환산지수 등 보험재정 관리를 건보공단이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며 "문재인 케어 추진으로 보험자가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건당 심사에서 경향심사로 전환하는 등의 변화는 공급자에게 재정 배분의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이라는 논리를 펴면서 "건정심 의결 권한 모두를 배제하고 심의 기능만 담당하도록 하고, 객관적 근거를 토대로 조정하는 별도의 전문기구를 설치하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조정의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 국회에 공익대표 위촉 권한을 부여하는 것도 검토할 만 하다"고 덧붙였다.
신영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건정심 위원 위촉을 '최저임금위원회'를 준용해 위원 후보를 3배수로 추천받고, 가입자와 공급자가 반대하는 위원을 제외하는 방식으로 건정심을 구성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보건복지부는 관련 전문가들의 건정심 구성, 운영 과정, 전문성·투명성 지적에 일부 동의하면서, 현행 제도의 장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태도를 보였다.
특히 공익대표의 중립성 지적에 대해서는 조심스럽게 반론했다. 정경실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정책과장은 "공익대표 선임 관련 지적은 조금 불편하다. 정부가 참여하는 모든 위원회에서 정부는 공익대표다. 특정단체나 입장을 편향적 대변하고 있다는 것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뿐만 아니라 정부출연기관 대표는 특정 개인보다는 공익을 대변한다고 얘기할 수밖에 없다"면서 "일방적인 공격과 이의제기는 수용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2시간여 토론회를 끝까지 지켜본 최대집 의협회장은 건정심 의사결정구조 등의 정상화를 위해 국민과 연대하겠다는 의지를 강력히 밝혔다.
최 회장은 "올해를 기준으로 약 60조원을 상회할 것으로 예상되는 막대한 건보재정에 대한 중요 의사결정 역시 건정심을 통해 논의되고 있다. 이런 중요한 역할을 맡은 건정심의 공정성에 대해 의료계를 비롯해 가입자들 역시 불만을 제기하고 있고, 합리적인 의사결정구조로의 개편을 촉구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제하고 "올해 의협은 건정심 의사결정구조를 정상화하기 위한 국민 운동화 작업을 범사회적으로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번 토론회를 통해 건정심의 문제점이 다양하게 노출됐다. 의료계는 강제지정제라는 위헌적 상황을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에 따라 (직업 수행의 자유 제한을) 감내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건보정책 결정 시 최소한의 합리적 의사결정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면서 "의료계는 60조원의 건보재정에 해당하는 의료서비스를 절대적으로 공급하고 있다. 이렇게 역할이 큰 만큼 그에 걸맞은 의사결정 지분을 맡아야 공정하고 정의로운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의협은 건정심 구조의 합리적 개편을 위해 사활을 건 노력을 할 것"이라며 "건정심 개편 논의 과정에서 충분한 대화와 협의를 통해 의료계의 의견이 반영되길 바란다"고 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를 주최한 이명수 의원은 건정심 구조 개편을 위해 국회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의원은 "어떤 위원회든 그 구성과 역할, 결정 과정에 따라서 단독 의사결정보다 못한 결과를 낳는 경우도 있다. 건정심의 단점은 줄이고 장점은 살려서 국민과 관련 단체가 국가의 중요한 기구로서 제 역할을 하는 건정심이라는 생각을 하도록 개선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