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백종우(경희의대 교수·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친구야 여기 많은 분들이 너 외롭지 않게 모여주셨다. 너에게 그리고 이분들에게 너의 이야기를 전하려한다. 이일을 겪고 우리가 함께한 29년간 몰랐는데 새로 알게된 것들도 많아.
너는 허리가 끊어지는 듯한 통증으로 우울증을 경험하고 나서 '이제 저 그 병 알아요' 라고 환자분들께 얘기했었지? 우울증과 트라우마를 전공한 우리가 이번에 트라우마가 무언지 좀 알게 되었어. 악몽에 잠을 깨기도 하고 갑자기 눈물이 터져나오고, 주변에 비슷한 사람이 지나가면 너 같고 군중 속에서 네 목소리가 들리는 것같아.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고통을 말하는 환자분들의 마음을 조금 더 새로 알게 되었어.
그렇게 이틀을 보내고 1월 2일 아침에 너의 여동생분이 가족을 대표해서 전화를 주셨어. 첫째, 안전한 치료환경을 만드는 것, 둘째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편견과 차별없이 쉽게 치료와 지원을 받을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 이 두가지가 고인의 유지라고 하셨어. 왜 누구도 증오하지 않을까? 오히려 네가 가장 사랑하던 환자분들에 대한 편견이 늘지 않을까 걱정해주셨어.
영결식장에서 부인이 조의금을 기부하여 고인의 유지가 이어지는 게 너를 영원히 살아있게 하는 거라고 하셨어. 추모공원에 가서 마지막 인사를 하는 순간, 어머님이 네게 손을 올리시고 '우리 아들 세원아~ 바르게 살아줘서 고마워 우리 아들로 태어나줘서 고마워'라고 말씀하시는데 미안해 더 이상 눈물을 참을 수 없었어. 그래 네가 이렇게 훌륭한 부모님, 부인 그리고 동생들과 함께 살아왔다는 것을 새로 알게 되었다.
첨엔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왜 살리지 못했는지? 머릿속에서 '왜?'라는 질문만 맴돌았어. 손하나 까딱하기 힘들었다. 둘째날 네가 그 상황에서도 환자와 동료의 안전을 걱정하고 행동했다는 것을 기자님께 처음 듣고 '그래 평소 너답게 책임있게 행동했구나' 알 수 있었어. 그리고는 마음을 잡았다. 네가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지 무엇보다 너의 아이들이 알 수 있게 기록을 남겨야겠다고. 많은 분들이 옮겨주고 보아주고 마음으로 함께해주셨다.
빈소에서 사람의 체온이라는 게 얼마나 따뜻한 것인지 새로 알게 되었어.
서로 꼭 안아주고 손 잡는게 얼마나 따뜻한 것인지. 그 자리에 4분의 1은 너가 뵙던 환자들이 오셨다. 가족의 손을 잡고 감사의 편지를 전해주셨어. 가장 힘든 시기에 도움을 준 사람이라고 감사하고 (전) 환자라고 쓰셨다. 네가 도와드린 자살유가족도 오셨고 감사의 편지함이 넘쳤어. 친구야 나는 네가 참 자랑스럽다.
지난 29년동안 숱한 선택의 기로에 서면, 나는 항상 너한테 먼저 연락을 했었지. 내말을 다 들어주곤, 너는 내가 후회없는 선택을 할수 있게 객관화 그리고 명료화를 해주었었지. 그리고 오늘 너는 또 우리 모두에게 명료화를 해주고 있어. 불안은 안전을 위해, 우울은 추모를 위해 분노는 정신건강을 위한 시스템을 만드는데 쓸께. 한번도 제대로 모이지 못했던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있어. 법과 제도로, 좋은 치료환경으로, 포괄적 지원을 만들고 앞에 네 이름을 새겨놓을 거야. 너가 간절히 원했던 것처럼 전문가로서 최선을 다하고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길이니 손 오그라들어도 참아.
네가 자신만만한 정신과 전공의 2년차였던 어느날, 환자분의 자살을 막지 못했다고 그렇게 자책했었지? 그리곤 2012년에 보고 듣고 말하기 한국형 표준자살예방교육프로그램의 틀을 밤새 만들어 와서 그림으로 보여주던 그날의 눈빛을 잊지 못한다. 2019년엔 2.0 완전개정판을 만들겠다고 그렇게 신나했었지? 다 전하지 못한 너의 진심은 우리가 대신 전할께. 네가 빠진 자리는 전력손실이 너무 커서 우리가 많이 모여도 좀 힘들 것 같다. 우리를 응원해줘야겠다.
'우리 함께 살아보자' 라고 했지? 체온으로 위로하고 손잡고 서로 지켜주는 사회를 만들 때까지 함께 행동할 거야. 조금 느려서 답답해보여도 믿고 기다려줘
끝으로 너 말고 부모님과 가족들께 인사드릴께.
어머님 아버님! 세원이 바르게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 부인과 동생분들! 그 선한 마음 감사합니다. 아들들! 너희 아빠는 우리의 자랑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그러니까 쫄지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