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전쟁의 시대', 신석기시대 海男을 돌아보다

'남녀 전쟁의 시대', 신석기시대 海男을 돌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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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1.25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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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속에서 해삼이나 전복을 따는 사람을 해녀(海女)라고 부른다. 그렇지만 해남(海男)이라는 말은 익숙하지 않다. 어문 규정을 관장하는 국립국어원이 발간한 표준국어대사전에도 '해녀'라는 단어는 있지만, '해남'이라는 말은 없다. 우리나라 여자들이 선천적으로 물질을 잘하는 것일까?

고고학적으로 본다면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7000여 년 전 신석기시대를 기준으로 한다면 한반도 남부에서는 남녀 가릴 것 없이 잠수를 해서 전복 따위를 잡았다는 사실이 발굴을 통해 증명됐기 때문이다. 이는 경남 통영시 산양면 연곡리에 자리한 연대도라는 섬 유적의 발굴을 통해 알 수 있다.

 

경상남도 통영시 연대도.
경상남도 통영시 연대도.

태풍이 '발굴'한 연대도 유적

사적 335호인 연대도 유적은 1987년 태풍 셀마 덕분에 그 모습이 드러났다. 바다에 접해 있던 밭을 태풍이 왕창 쓸어 내면서, 땅 속에 묻혀 있던 신석기시대 유적이 노출된 것이다. 유적이 드러난 다음 해인 1988년부터 1992년까지 국립진주박물관이 발굴했다.

발굴 조사 결과 연대도 유적은 지금부터 7300∼6700년 전의 것이었다. 유적의 연대는 어떻게 알았을까?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 덕분이었다.

모든 생명체는 살아 있을 때 영양분을 섭취하면서 체내에 탄소 동위원소인 C-14을 축적한다. 그러나 죽은 뒤에는 C-14을 더 이상 섭취하지 못하는데, C-14은 시간이 지나면서 N-14으로 변화(정확히는 '붕괴'라고 해야 한다)한다. 그 변화 속도는 5730년이 지나면 원래 양에서 절반으로 줄어드는 정도이다. 즉 생명체 안에 있어야 할 C-14의 비율이 절반으로 줄었다면 그 생명체가 죽은 시기는 지금부터 5730년 전이 되는 셈이다.

 

<span class='searchWord'>외이도골종</span>의 흔적을 지니고 있는 대표적 인골 화석.
외이도골종의 흔적을 지니고 있는 대표적 인골 화석.

신석기 남녀가 외이도골종을 겪은 까닭은?

이곳에서는 모두 17구의 인골이 발굴됐다. 발굴을 맡았던 국립진주박물관은 인골을 김진정 당시 부산대 교수에게 의뢰해 분석했다. 일본 연구팀과 공동으로 연구한 김 교수는 어린이 것 2구를 제외한 대부분의 인골이 남녀를 불문하고 외이도골종(外耳道骨腫)에 걸려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바깥귀길(외이도)에 뼈와 같이 딱딱한 조직으로 이루어진 '혹'이 있었던 것이다. 

외이도골종은 요즘 해녀들에게도 자주 나타나는 일종의 직업병이다. 깊고 찬 바닷물에 들어가면 기압 차이 등으로 귀가 먹먹해진다. 귀 바깥쪽에서 가해지는 과도한 압력 때문이다. 압력을 줄이기 위해 몸은 바깥귀길의 일부를 좁히려고 한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외이도골종에 걸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통해, 7000여 년 전 연대도에 살았던 사람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물질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이 곳에서 발굴된 조개무덤(패총 貝塚)에서 전복과 소라 껍데기 등이 숱하게 발굴된 데서도 이는 방증된다. 조개류의 80%가 굴 껍질이었고, 홍합이 그 뒤를 이었다. 

조개무덤은 조개류를 먹은 뒤 껍데기를 모아서 버린 것이 퇴적되면서 형성되는 것이다. 한데 고대인들은 조개무덤에 조개껍질만 버린 것이 아니었다. 지금의 쓰레기매립장처럼 생활 쓰레기를 이 곳에 모아서 버렸다. 고대인이라고 생활 쓰레기를 집 주변 이 곳 저 곳에 마구 버린 것은 아니었다.

물론 연대도 사람들이 바다 속으로 잠수해서 채취한 조개류만 먹고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패총.
패총.

고라니 한 마리=굴 5만 여 개 열량

영국의 저명한 고고학자인 콜린 렌프류와 폴 반의 연구에 따르면, 한 사람이 조개류만 먹고 살기 위해서는 매일 굴 700마리를 먹거나, 새조개 1400마리를 먹어야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만약 7000여 년 전 연대도에 살던 사람들이 굴이나 새조개 등만을 먹고 살았다면, 이 지역의 조개류는 씨가 말랐을 것이다. 

렌프류는 고라니 한 마리의 열량은 굴 5만 2267개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지적하기도 했다. 굴 5만개 이상을 얻기 위해 들이는 노동력과, 고라니나 사슴 한 마리를 잡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을 비교했을 때 고라니 잡기가 훨씬 어렵다고 이야기하기는 힘들 것이다. 음식물 섭취로 인해 얻는 열량은 물론, 식량을 얻기 위한 노력 등을 종합해 본다면, 패류만으로 먹고 살기는 힘들다는 이야기이다.

이를 입증하듯 연대도 조개무덤에서도 잠수를 통해 채취한 조개류 외에도 도미와 상어를 비롯한 각종 어류, 그리고 고래 등은 물론 사슴과 맷돼지 등 뭍에 사는 동물 뼈, 그리고 오리와 농병아리 류의 각종 새 뼈도 나왔다.

7000여 년 전 연대도에 살았던 사람들은 이처럼 다양한 음식 섭취를 통해 영양상태도 나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발굴된 17구의 인골 중 키를 측정할 수 있는 남성 성인의 인골이 2구 있었다. 키는 각각 167cm, 161cm로 추정됐다. 요즘으로 치면 작다고 볼 수 있지만,  20세기 초 조선 남성의 키가 160cm을 약간 넘는 정도였다는 일본의 조사 결과를 본다면 결코 작지 않았음을 엿 볼 수 있다. 

 

남녀가 '손에 손잡고' 물질을 했던 신석기시대

바닷가에 살던 신석기인들이 남녀를 불문하고 바다 속을 잠수해서 먹거리를 채취했음을 알려주는 외이도골종은 연대도 외에도, 경남 통영시에 있는 욕지도의 신석기시대 인골이나 일본의 신석기시대 유적의 인골에서도 발견된 바 있다. 

'남혐'(남자 혐오의 준말)이니 '여혐'(여자 혐오의 준말)이니 하는 표현을 요즘 자주 듣는다. 한남충 워마드 메갈 등 상대 성(性)을 비하하거나 혐오하는 표현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남녀 갈등이 사회 문제로 처음 대두할 때 등장했던 '된장녀' '김치남'이라는 표현은 지금의 남녀 갈등 강도로 보면 '애교'에 가깝게 느껴질 정도다. 사회적 혹은 계층적 갈등이 많은 우리 사회에서 남녀 갈등마저도 심화됐음을 알려준다.

생물학적으로 본다면, 남녀는 사랑을 나눔으로써 유전자를 복제하기 위해 같은 종이 '분화'된 것인데…. 7000년 전 연대도에서 손을 맞잡고 사이좋게 물질을 함께 하던 신석기 남녀를 상상한 것은 이런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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