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의 '한', 중국 의미하는 '漢'...1986년 한의사협회 요청, 우리나라 의미하는 '韓'으로 바뀜
잘못된 명칭은 개념을 혼동하게 만든다. '한의학'과 '양의학'이라고 하면 두 가지의 차이가 지역적 특성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지역적 특성은 우열을 가리기 보다는 모두 존중해야 된다는 결론에 빠지기 쉽다. 보건의료 문제에 대해서 이중잣대를 용인하게 만들기도 한다.
한의학은 중의학(traditional Chinese medicine)에 사상체질의학 등 최근에 한반도에서 발생한 비주류 학설 몇몇이 덧붙여진 형태다. 한의계에서 자랑하는 외국의 사례나 현황·연구 등도 출처를 확인해보면 대부분 'traditional Chinese medicine'을 언급하고 있으며, 'Korean'이라는 단어는 보기 힘들다.
한의학의 '한'은 중국을 의미하는 '漢'을 쓰다가, 1986년 한의사협회의 요청으로 우리나라를 의미하는 '韓'으로 바뀌었다.
한의학을 '우리 조상들이 물려준 고유의 유산'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작전은 큰 효과를 거뒀는데, 홍보를 위해서 중의학을 한의학이라고 말하는 모습이 보기 좋은 모양새는 아니지만 반대하지는 않겠다.
중의학과 한의학은 같다고 볼 수 있지만, 중의사와 한의사는 그렇지 않다. 중의사는 한국에서 한의사 면허를 받을 수 없고 면허시험 응시 자격도 없다.
마찬가지로 한의사는 중국에서 면허를 받을 수 없다. 한중 FTA에서 중국이 이 부분의 개방을 요구하는데 중의학을 찬양하는 한의사들이 중의사가 우리나라에서 진료를 못하게 반대한다고 한다.
정통 중의학 치료를 받고 싶다면 중국으로 건너가야만 한다(참고로 한국의 의사는 중국에서 간단한 절차를 거쳐 단기 면허를 받을 수 있다).
'양의학'은 '서양의학'을 말하는데 우리나라에서 의사들이 행하는 의학은 현대의학 또는 정통의학 정도로 불러야 마땅하며 '양의학'은 옳지 않다. 한의학에 대비되는 서양전통의학은 서양 사람들이 임상시험 방법을 개발해 검증을 하고, 과학을 깨우치면서 최근 1∼2세기 사이에 폐기시켰다.
한의사들은 현대의학과 동등한 기준을 요구하면 '전통'을 핑계로 내세운다. 한의사들은 질병을 이해하고 치료하는 원리로 과학 이론이 아닌 음양오행·장부학설·경락학설 등의 동양의 전통 이론을 근거로 삼는다.
치료의 정당성은 임상시험이나 세포실험 등의 실험적 근거가 아닌 전통적으로 사용돼 왔다는 경험을 근거라고 내세운다. 따라서 의사와 한의사의 차이, (현대)의학과 한의학의 차이는 지역적 변이가 아닌 본질적 차이다.
이제 의미가 명확해졌으니 본론으로 들어가자. 현대의학과 한의학에게, 의사와 한의사에게 이중잣대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
인류가 관찰과 실험과 검증 과정을 거쳐 밝혀낸 인간과 질병에 대한 지식이 한의학 이론과 상충된다면 그것은 단지 옛날 사람들의 그릇된 생각일 뿐이며 폐기해야 한다. '한의학 이론은 틀린 것이 아니고 과학 또는 현대의학과 관점이 다를 뿐이다'라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어떤 질병에 대한 치료법은 (플라시보효과를 초과하는) 도움을 주거나, 아무런 도움이나 해를 주지 않거나, 해를 끼치거나 셋 중 하나다. 그 중 어디에 해당하는지는 임상시험을 실시해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과학적 검증은 양의학의 잣대라 한의학에 적용시켜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전통과 경험 따위는 치료법의 근거가 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사례는 서양의 사혈요법을 비롯해서 무궁무진하다. 죽은 사람을 살리거나 빠진 이빨을 자라게 하는 처방 등 동의보감을 비롯해 여러 한방 고서에 나온 치료법들 중 많은 처방들을 이미 우리는 임상시험을 해볼 필요도 없이 상식 수준에서 틀렸음을 안다.
허준은 과학 상식이 없었기 때문에 '전통과 경험'의 권위에 복종해 중국의 한의학서적에 적힌 틀린 사실들을 진실이라 믿고 동의보감에 옮겨 적었다. '한의학의 전통과 경험이 근거다'라는 주장도 타당하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타당하지 않은 주장들을 토대로 한의학이 현대의학과 대등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는 한의학에도 현대의학과 같은 기준을 요구해야 한다. 보건의료에 이중잣대를 허용하는 일은 국민의 건강과 재산을 희생시켜 한방 관련 종사자들의 소득을 보전하는 꼴이다.
'양의학', '양의사'라는 잘못된 용어 사용을 근절하는 일이 불합리한 제도를 개선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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