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연루될 수 있다"…'협진' 탈 쓴 '한방병원 보험사기'

"당신도 연루될 수 있다"…'협진' 탈 쓴 '한방병원 보험사기'

  • 홍완기 기자 wangi0602@doctorsnews.co.kr
  • 승인 2019.03.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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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방병원 '보험사기' 사건 연루…'약식명령' 처벌
"'사무장병원'만 조심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의사가 '보험사기' 등 사건에 연루된 경우, 환수처분과 민사상 손해배상은 물론 형사고발과 '면허 취소' 등 처벌 수위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최근 사회생활을 막 시작한 의대 졸업생을 대상으로, '협진'의 탈을 쓴 일부 한방병원이 보험사기 행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의협신문>은 한방병원 보험사기 사건에 연루돼 적지 않은 의사들이 고초를 겪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제보자의 소개로 <의협신문>과의 인터뷰에 응한 A씨는 "제가 당한 사례를 통해 다른 선·후배들이 유사한 피해를 보지 않았으면 한다"고 밝혔다.

 

그래픽/윤세호기자 seho3@hanmail.netⓒ의협신문
그래픽/윤세호기자 seho3@hanmail.netⓒ의협신문

"사무장병원만 조심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A씨는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한 달 정도 요양병원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시설과 근무환경이 좋다는 얘기에 A의사는 광주소재 한방병원의 협진의사로 자리를 옮겼다.

"졸업한 후, 취업에 자신이 없었는데 요양병원에서 근무하면서 약을 쓰는 방법을 익혔습니다. 그래서, 다른 병원에 취업해도 괜찮겠다 싶었죠. 일단 근무가 굉장히 간단하고, 편했습니다. 시설도 깔끔하고 근무환경이 좋았습니다"

A의사가 주로 했던 업무는 '협진'. 한의사가 먼저 진료를 보고, 물리치료나 도수치료를 처방하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한의사가 초진한 뒤, '환자가 들어온다'는 메시지가 모니터에 뜨면 환자를 진료했습니다. 입원 여부 등을 이미 결정한 이후 제게 넘어오는 시스템이었습니다. 입원을 얼마 정도할지 등이 이미 다 결정된 상태로 차트에 뜨곤 했습니다."

A의사는 입사 시, 한방병원 원무과장이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했고, 업무인수를 통해 한의사가 처방한 입원 여부, 날짜 등은 그대로 두고, 약 처방이나 물리·도수치료 등 의사만이 할 수 있는 처방을 주문했다고 밝혔다.

"본격적인 사회생활은 거의 처음이었습니다. 무조건 열심히 하자는 생각에 시키는 대로 따랐습니다. 대부분 한방에서 넘어오는 환자들이 심하게 아픈 분들이 아니었습니다. 디스크, 관절염 환자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오더만 내면 방사선사가 엑스레이 사진을 찍어서 가지고 왔고, 피검사 처방을 내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약은 진통제나 감기약 정도를 주로 처방했습니다."

"입원이 이미 결정된 상태로, 한 번 환자를 보면 이후에 입원 여부나 실제로 치료를 받았는지는 확인할 수 없는 시스템이었다"고 했다.

"환자는 첫 날 한 번밖에 보지 못했습니다. 넘어온 환자에 '물리치료 7번, 도수치료 2번' 정도를 일괄적으로 넣어주면 된다고 인계 받았습니다. 물리치료, 도수치료는 적응증이 특별한 것이 아니었고, 고주파와 전기치료를 받는 환자들은 주로 어르신들이었습니다. 당연히 좋을 거라 막연히 생각했습니다."

A의사는 한방병원에서 1년 남짓 근무하던 중, 경찰 조사를 받게 됐다. 보험사기였다.

"학교에서 '사무장병원'을 조심하라고 많이 들었습니다. 의료법에서 배웠으니까, 그것만 조심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입사할 때 대표명도 확인했고, 한의사인 것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보험사기에 연루될 줄은 상상도 못했죠…경찰에서 일괄적으로 처방을 내버리고, 환자를 첫 날에 보고 환자 있는지 여부를 확인도 안 하고, 보험사기를 방조한 것이 아니냐고 추궁했습니다. 아무 것도 몰랐던 저는 너무 억울했습니다."

조사가 시작되자, 한방병원 측은 한의사도 아니고, 봉직의 신분이니 걱정하지 말라며 A의사를 안심시켰다.

"처음 조서를 작성할 때부터 변호사를 고용했어야 했는데, 한방병원에서 걱정하지 말라고 저를 안심시켰습니다. 뭔가 불안했지만 믿고 나머지 계약 기간 동안 일을 마쳤습니다. 하지만, 이후 인턴으로 일하던 중, 약식명령이 날라왔습니다. 알고보니, 페이 한방의사는 변호사를 써서 재판 했다는 걸 알았습니다. 나중에 알아보니, 한방병원에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그 기회를 놓친 것이 너무 후회됩니다."

A의사는 보험사기 방조와 의료법 위반으로 약식기소를 받았다. 대한전공의협의회를 통해 도움을 받아, 변호사를 구한 상태다.

"현재 무죄를 다투고 있는 상황입니다. 보험사기 방조 혐의는 나중에 보험사에서 고소를 진행했습니다. 변호사로부터 다른 보험사로부터 더 많은 소송을 받을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한방병원장 환수금이 엄청 올라가게 되는데, 제가 피의자 신분이기 때문에 다 같이 물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합니다."

A의사는 "추가적인 소송과 피해, 앞으로 발생할지 모르는 의료분쟁에서 불리한 처분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고 털어놨다.

"이제 막 의사로서 생활을 시작했는데…불안합니다. 의료행위는 어쩔 수 없이 분쟁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럴 때, 이번 사건 결과에 따라 불이익이 올 수 있다는 생각에 미래가 더 걱정됩니다."

A의사는 주변 지인들 역시, 비슷한 사례를 겪었다고 털어놨다.

"제 주변 지인 중 비슷한 일을 겪은 분들이 많습니다. 그 중 B선생님은 3년 전에 일했던 한방병원에서 보험사기 사건에 연루돼, 저처럼, 3년 만에 약식명령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내과 C선생님은 CT를 일괄 처방했다가 금고형을 받기도 했습니다."

현행 의료법상 물리치료나 도수치료를 처방할 수 있는 것은 '의사'뿐이다. 이 때문에 한방병원에서는 갓 졸업한 의대생이나 은퇴 후 취업이 어려운 고령의사들을 대상으로 '협진'을 제안하고 있다.

특히 자동차보험의 경우, 환자의 부담금이 없기 때문에 이해관계를 맞춘 일부 병원-보험설계사-환자 등이 보험사기를 벌이는 일이 많다고 귀뜸했다.

A의사는 자신처럼 사정을 잘 몰라서, 무고하게 피해를 당하는 의사 동료들이 더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고 전했다.

"사회 초년생이고, 저는 이런 사기 사건 등을 조심해야 한다고 말해 주는 선배나 동기가 없었습니다. 정말 모르고, 열심히 근무한 것뿐인데 이런 일에 휘말리게 됐습니다. 저 같은 사례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서지수 변호사(대한의사협회 불법의료대응팀)는 "CT, X-ray, 도수치료 등 의학적 처방은 의사의 전권에 해당하는 것으로, 한의사로부터 일괄처방을 지시받아 행하는 경우 보험사기에 연루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면서 "직접 환자를 진찰하고 처방하는 과정이 있어야 함을 반드시 숙지하지 않으면 허위·부당 청구에 휘말릴 위험이 있다"고 조언했다.

이승우 대한전공의협의회장은 "최근 인턴이나 레지던트 전에 한방병원에 근무하면서, 사기 사건에 휘말리고 있다는 제보가 잇따르고 있다"며 "전공의가 법적 분쟁에 휘말리게 되면, 본연의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고, 이는 결국 환자 안전문제와도 직결될 수 있다. 해당 사건은 전공의 신분 이전에 겪은 일이지만 현재는 전공의 회원이기에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에 도움을 드리게 됐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해당 사건 외에도 전공의들은 법적 지식·경험 부족으로 사건에 휘말린다.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현재 로펌 고우와 협약을 체결해 법률 강의와 동영상 제작과 법적 자문 등을 진행하고 있다"면서 "접수된 민원보다 법적인 도움이 필요한 전공의들이 더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 관련 실태조사 또한 검토해 볼 필요성이 있다고 느낀다. 의료분쟁과 관련해, 혼자 해결이 어려울 때 대전협에 연락하면, 언제든지 도움을 드리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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