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와 회복 얻으며 그들 곁에 머물렀을 뿐…"

"치유와 회복 얻으며 그들 곁에 머물렀을 뿐…"

  • 이영재 기자 garden@kma.org
  • 승인 2019.03.19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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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보령의료봉사상 대상 수상 이석로 원장

이석로 원장(방글라데시 꼬람똘라병원)ⓒ의협신문
이석로 원장(방글라데시 꼬람똘라병원)ⓒ의협신문

3년. 태어난 지 18개월 된 아이를 품에 안고 방글라데시행에 나서면서 아내에게 한 다짐이었다. 

그러나 1994년 첫 발을 내디딘 방글라데시 꼬람똘라 거리를 그는 오늘도 걷고 있다.

마음 속 가두었던 "이렇게 살아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되뇌임은 이제 스무 해를 훌쩍 넘겨서도 이어지고 있다.

때로는 앞이 보이지 않을 때도 있었고, 멈추고 싶은 순간도 이어졌지만 그를 붙든 것은 '사람'과 '사랑'이었다. 

"가난한 저희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가난과 질병 속에서 고통과 시름에 지쳐가면서도 그에게 향한 감사의 눈빛과 목소리를 외면할 수 없었다. 베푼다는 속된 마음은 그들의 맑은 영혼 앞에서 부끄러움으로 돌아왔다. 봉사가 아니었다. 그저 그들 곁에서 사랑하고, 아파하고, 슬퍼하고, 즐거워하며, 또 함께 배우고 나눴던 시간이었다. 그들에게 내민 손길은 되려 그의 부족함을 채우고 있었다.

제35회 보령의료봉사상 대상을 수상한 이석로 원장(방글라데시 꼬람똘라병원)이 걸어온 길을 따라가며 삶의 의미를 묻는다.

쉽지 않은 결정이다. 힘든 수련과정을 마치고 서른에 나선 발걸음이다. 그를 움직인 것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의사의 길을 어느 정도 정해져 있습니다. 의대를 졸업하고 수련을 마치면 학교에 남거나, 개원하고 혹은 봉직의사로 일하게 됩니다. 의사가 된 후 예정된 이런 삶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예순이 넘고 은퇴하게 됐을 때 과연 후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광주기독병원에서 수련받을 때 7개 기독교재단 병원 모임인 콤스재단이 방글라데시에 병원을 세웠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리고 수련을 마칠 즈음 병원 게시판에 붙은 꼬람똘라병원 의사 모집 공고를 보게 됐습니다. 큰 고민 없이 지원했습니다."

한 번 쯤 경험해 봐도 좋은 일이라고 여겼다. 그가 원하는 곳 보다는 그를 필요로 하는 이들과 함께 하고 싶었다.

"방글라데시 꼬람똘라병원 건립을 지원한 전주예수병원·광주기독병원·여수애양병원·계명대동산의료원·안동성소병원 등 기독교재단 병원들은 가난과 시름에 힘겨워했던 지난 시절 우리 민족에게 긍휼함으로 다가선 외국 선교사들의 손길을 기억합니다. 100년전 우리가 받았던 사랑을 이젠 나눌 수 있는 상황이 됐습니다. 미력이나마 그 현장에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오히려 제 기쁨이었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직접 경험한 '약속의 땅'의 현실은 여의치 않았다. 그래도 새로움을 접하는 설렘은 작은 위안이 됐다.

"당시 방글라데시는 의료는 물론 기간산업 전 영역이 척박했습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느낌이었습니다. 진료를 하면서 대한 주민들은 순수 그 자체였습니다. 노력한만큼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저를 설레게 했습니다. 그 가운데 제 삶도 돌아보게 됐습니다. 그들과 함께 하면서 저 스스로를 찾는 여정이 시작됐습니다."

그들 역시 우리가 지나온 시간처럼 몸이 아파도 병원을 찾지 않았다. 힘겨운 살림살이에 병원을 향한 발길은 멈췄고 열악한 의료상황에 의료기관을 찾을 수도 없었다. 

"꼬람똘라지역은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서 30㎞ 남짓 거리인데도 우리 병원 외에는 의료기관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몸이 아파도 참는 게 미덕인 현실이었습니다. 민간 처방에 의지하다가 질환이 악화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환자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왜 이제 오셨어요', '좀 더 빨리 오셨으면 좋았을텐데…', '저희는 가난해요', '병원이 없어요'… 하소연이 이어졌습니다. 그들의 아픔이 그대로 전해졌습니다."

그의 손길은 진료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들의 삶 가운데로 들어가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힘겨운 삶을 치유하는 사회적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아직도 방글라데시 인구의 90%는 농업에 종사합니다. 농사일 외에는 삶의 이어갈 수단이 여의치 않습니다. 지금은 공장도 많이 생기고 일자리도 늘었지만 당시에는 하루를 보내는 일 조차 부담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고민 끝에 유실수나 목재로 쓰일 나무를 나눠주는 식수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교통·유통 수단이던 인력거 대여와 가축 분양을 통해 자립기반 마련을 위한 갖가지 방안도 모색했습니다. 또 마을 공동 양호실을 운영하면서 주민들의 보건위생 개선에 작은 힘이나마 보탤 수 있었습니다."

꼬람똘라병원은 병원 역할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고 가난한 외부모 가정 아이들의 지원도 맡고 있다. 

"부임 당시엔 저와 함께 현지인 의사 1명이 하루 60∼70명의 환자를 진료했습니다. 20여년이 흐른 지금은 한국인 의사 3명·현지인 의사 8명과 각 전문 영역에서 일하는 120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하루 250명 안팎이 저희 병원을 찾고 있습니다. 진료 외에도 아이 돌봄을 위한 유치원과 가난한 가정의 자녀들을 위탁받아 교육하는 호스텔시스템도 갖추고 있습니다. 병원으로서 기능과 더불어 그들의 이웃으로서 우리가 할 일들에 폭넓게 다가서고 있습니다." 

많은 것을 전해주고 알려주고 싶었지만 오히려 그들로부터 더 많은 것을 채울 수 있었다.

"한국적인 사고로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그들에게 그리 중요치 않았습니다. 단순한 문화적 차이로 볼 수도 있었지만 함께 하는 시간이 지나가면서 저 스스로의 가치체계에 갇혀 있었다는 것을 느끼게 됐습니다. 작은 지식과 배움으로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가르치칠 수 있다는 생각은 오만이었습니다. 그들의 삶 가운데 새로운 가치를 접하게 됐고 인생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형식이 내용을 지배할 수 없다는 단순한 진리와 참고 기다리는 인내와 배려를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병원이 알려지고 성장세에 접어들면서 지난해 대비 환자수도 20∼30% 늘었다. 수익금도 증가하면서 지역사회 개발을 위한 여력도 생겼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병원 정체성과 지속가능한 사회적 역할을 위한 세 가지 원칙도 세웠다.

"진료뿐만 아니라 우리 병원이 지닌 역할을 위해 수익금의 쓰임새에 대한 우선 순위를 정했습니다. 첫 번째는 병원의 미래를 위해 의료진 및 장비·시설 등에 투자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직원들의 복지와 급여에 대한 부분입니다. 세 번째는 의료소외 계층을 위한 지원입니다. 이 세 가지 기준을 통해 병원의 내실을 도모하면서 주민 건강 증진에도 힘을 쏟을 생각입니다."

설립한 지 3년 된 간호학교도 점차 자리잡아 가고 있다. 교육 과정을 마치면 병원에서 채용해 일자리도 만들고 있다. 작은 희망의 씨앗이 되고 있다.

"방글라데시 여성이 마주하는 삶의 여건은 척박합니다. 교육기회도 제대로 주어지지 않고 직장을 갖기도 어렵습니다. 간호학교에서는 해다마 10∼15명의 학생을 뽑습니다. 기숙사를 운영하며 최소한의 비용을 받고 교육하고 있습니다. 간호학교 과정을 마친 학생들은 병원에서 바로 영입합니다. 배움의 기회를 통해 새로운 희망을 접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있습니다."

많은 시간이 지났다. 혼자만의 삶이 아니다. 아내와 자녀들의 도움은 절대적이었다.

"세 아이가 모두 현지에서 자라다보니 교육문제 등에 대해 걱정이 앞선 것도 사실입니다. 지금 돌아보니 기우였습니다. 제 조바심 탓이었습니다. 모두 잘 자라 주었습니다. 올해 한국에서 사범대학을 마친 둘째 아이는 방글라데시에서 2년간 봉사하기로 했습니다. 아이들이 자랄 때 여의치 않은 송전 상황 때문에 정전이 잦았습니다. 자연스레 아이들과 이야기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서로의 속내를 털어놓고 진솔하게 마주하는 자리였습니다. 아이들은 아빠의 삶을 성원해주었습니다. 약사인 아내는 지금 간호학교에서 강의를 하며 유치원 운영을 맡고 있습니다. 항상 제 곁을 지키는 든든한 지원군입니다."

그의 마음엔 치유와 회복이 가득하다. 스무 해를 넘게 이어올 수 있었던 자양분이다. 

"'봉사'를 앞세우면 지치게 됩니다. 저 역시 경험했습니다. 베풀면 곧 채워집니다. 내 것을 준다고 생각하지만 더 크게 돌아옵니다. 혼자 걷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도와주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개인적인 성숙과 가정 회복도 큰 버팀목이 됐습니다. 실망도 했고, 여기까지라고 끝낼 수도 있었고, 앞이 안 보일 때도 있었지만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들의 삶 속에서 영혼의 치유를 얻고 제 부족함을 드러내면 채워졌습니다. 힘겨울 때 어깨를 내주고 거친 발걸음에 동행해 준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는 늘 비우고 늘 채운다. 혼자만의 여정이 아니라지만 그가 자리를 지켰기에 이어질 수 있었다. 그들의 삶 가운데로 다가서며 인술의 깊이를 더했다. 

베풂은 채움을 예비한다. 그의 시간이 남긴 값진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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