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 전·후 닥쳐올 '혼란' 두렵다"…우려 목소리
'낙태'관련, 법적 책임 범위 확대 '불안감' 증가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산부인과 의사들이 "법적인 의무와 행정적인 부담이 대폭 늘어나고, 보다 강력한 '낙태죄' 처벌이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2018년 8월 보건복지부가 '형법 제270조를 위반해 낙태하게 한 경우에는 자격정지 1개월에 처한다'는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 일부 개정안'을 공표·시행하자, 인공임신중절수술(낙태) 전면 거부를 선언하며 반발했다.
헌법재판소가 11일 낙태죄 처벌 위헌 여부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며 '낙태'에 대한 '의사처벌'조항의 근거인 관련 법률이 사실상 효력을 상실했다.
적지 않은 산부인과 의사는 "낙태죄로 처벌할 수 있는 근거가 사라졌다!"는 반응보다 법적인 의무와 행정적인 부담이 대폭 늘어나고, 보다 강력한 '낙태죄' 처벌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입법 공백에 따른 '혼란'과 법적 책임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의사도 많았다.
A산부인과 전문의는 "(불합치)결정이 나왔다고 해서 바로 (낙태)수술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알고 있다. 개정 전까지 인공임신중절수술은 '불법'과 '합법' 그 어딘가에 존재할 것"이라며 "(불합치)소식을 접한 환자들이 병원을 찾아와 낙태가 된다고 결정이 났는데, 왜 안 해주냐며 항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관련 법률 개정 전까지 환자를 설득할 수 있는 장치나 근거,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낙태 불·가능 여부를 일정 '주수'로 나눌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도 언급했다.
B의대 C교수(산부인과)는 "개인적으로 낙태죄 '헌법 불합치' 결정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개인적 신념이 아니라도, 걱정되는 부분이 많다"고 밝혔다.
"현재 언론을 통해 '22주' 등을 기준으로, 낙태 가능 기간을 정하려는 움직임을 접했다. 하지만, 주수에 따라 진단할 수 있는 염색체 이상 등이 다를 수 있다. 또한 22주 이후에 이상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면서 "이 경우, 22주 안에 해당 이상을 발견하지 못한 책임을 의사에게 전가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신념에 의한 낙태 거부'를 '정당한 진료 거부' 요건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C교수는 "개인적인 신념을 가진 의사들에게도 큰 골칫거리다. 나 역시 마찬가지"라며 "해외에서는 이런 경우, 72시간 안에 수술이 가능한 다른 병원을 소개해주는 제도가 있다. 법 개정 시, 이러한 부분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판결이라는 대부분의 평가와 달리, 헌재 결정이 오히려 '시대를 역행한 판결'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D산부인과 원장은 "시대의 흐름이라고 하지만, 충동적인 성생활과 낙태를 조장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D원장은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비양육자에게 양육비를 의무적으로 부담토록 하는 '양육비 책임법'을 제정해야 한다"면서 "OECD 선진국처럼 전담기관이 양육비를 대신 징수하고, 양육비 부담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여권 발급과 운전면허 취소는 물론 사업면허까지 제한하는 강력한 이행 수단을 법제화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성교육이 현재의 피임 교육에서 벗어나 책임의식을 강조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제대로 된 성교육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E의사는 "낙태를 허용하고 있는 국가들은 의무적으로 사전 상담과 숙려기간을 규정하고 있고, 낙태를 결정하기까지의 행정적 절차 또한 상당히 복잡하다"면서 "행정적 절차를 지키지 않는 데 따른 처벌조항들이 늘어난다면, 임신부와 의사들의 책임이 더욱 가중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F봉직의(G병원 산부인과)는 낙태죄 폐지로 인해 남성들의 '피임' 참여율이 낮아질 것으로 우려했다.
"의사 생활을 하다 보면 피임과 관련해, 현재도 여성 쪽에서만 신경을 쓰고 있는 경우가 상당수"라고 지적한 F봉직의는 "낙태죄 폐지로 인해, 자칫 '정관수술' 등 남성의 피임에 대한 경각심을 더 낮추는 데 영향을 끼칠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H병원장(I산부인과병원)은 "주변에 산부인과 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지인들이 많다. 대부분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 특히 '낙태 합법화' 이후 환자들의 대형병원 '쏠림'현상이 두드러질 것이라는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고 전했다.
"물론 옳은 것은 아니지만 이전에는 '낙태'를 원하는 환자들이 '큰 병원'일수록 낙태가 더 어렵고, 기록에 남을 것으로 인식해 개원가를 찾는 경우가 더 많았다"면서 "하지만, 이제 '헌법불합치'라고 하니, 다른 질병도 그렇듯 더 큰 병원에서 수술받기를 원할 것이다. 이는 또 다른 '쏠림'을 불러올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방어적인 과목의 특성상, '변화' 자체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내는 분위기라는 점도 짚었다.
J의사는 "낙태를 지금 시행한다고 해서, 처벌을 받을 가능성은 미약하지만 '혹시나'하는 의사들이 많다. 이러한 변화가 올 때마다 '이번에는 어떤 것으로 처벌받을 일이 생길까?', '어떤 것으로 공격을 해올까?'라는 걱정부터 나오는 것이 사실"이라며 "산부인과 의사들은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의료분쟁'에서 약자라는 인식이 있다. 특히나 이번처럼 사회적 이슈를 끌고 온 사안의 경우 더욱 불안감이 크다"고 전했다.
낙태는 신념의 문제와 여성·남성, 환자·의사, 부모·조부모 등 입장 차이, 절차·방법·기준·법의 행정적 문제 등 복합한 난제들을 모두 안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2020년 12월 31일'을 낙태죄 관련 형법 개정 시한으로 못박았다.
사안 자체의 복잡성과 관련법 개정 시한으로 '과도기'까지 설정된 상황에서 '예견된 혼란'은 더욱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K의사는 "낙태와 직접 관련이 있는 형법과 모자보건법 개정도 필요하지만 출산을 선택할 수 있도록 국민의 인식을 개선하고, 소중한 생명을 지키는 게 사회와 개인에게 올바른 선택이 될 수 있도록 전폭적인 사회적인 지원을 늘리는 정책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며 "낙태에 관한 이슈에서 벗어나 우리 사회가 생명을 지키고, 함께 키울 수 있도록 제도와 환경과 문화적 개선 방안을 모색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