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행위 범위 입법 영역…의료법에 열거해 면허 분쟁 줄여야
일반인 상식과 사회통념 어긋나…의료법 면허범위 개정 힘받나?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치과의사의 안면부 보톡스 사용을 사실상 허용한 이후 의사와 치과의사의 갈등이 일고 있는 가운데, 법조계 전문가들이 의료법을 개정해 의사와 치과의사의 면허 범위를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6년 7월 21일 환자에게 보톡스 시술을 한 혐의(의료법 위반)로 1심과 2심에서 벌금 100만원과 선고 유예를 받은 치과의사의 상고심에서 유죄 취지의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전원합의체는 "모든 안면부 시술을 치과의사의 면허 범위 내라고 단정한 사안은 아니고, 치과의사의 면허 범위 내인지는 구체적 사안에 따라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단서를 달았지만 "안면부에 대한 의료행위라 하여 모두 치과 의료행위의 대상에서 배제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또 의학과 치의학은 의료행위의 기초가 되는 학문적 원리가 다르지 아니하고 각각의 대학 교육과정 및 수련 과정도 공통되는 부분이 적지 않게 존재하며, 대부분의 치과대학이나 치의학전문대학원에서 보톡스 시술에 대해 교육하고, 치과 의료현장에서 보톡스 시술이 활용되고 있는 것 등 보톡스 시술이 의사만의 업무영역에 전속하는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점을 종합하면, 환자의 안면부인 눈가와 미간에 보톡스를 시술한 피고인의 행위가 치과의사에게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법조계, 대법원 결정 의료법 종별 면허제도 근간 훼손 우려
이런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단에 대해 대한의료법학회, 서울서부지방검찰청, 보건의약식품 전문검사 커뮤니티는 15일 2019년 춘계공동학술대회를 열고, 의료인의 업무 범위와 관련한 문제를 심층적으로 다뤘다.
이날 주제발표 및 지정토론자로 나온 법조계 전문가들은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결정은 의료법이 채택하고 있는 종별 면허제도의 근간을 허무는 것으로서, 의사와 치과의사 간 면허 범위를 둘러싼 갈등을 더욱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을 우려했다.
따라서 향후 분쟁을 줄이고 의료인 면허의 허용범위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의사, 치과의사의 면허 허용범위에 대해 적극적으로 논의하고, 입법적으로 허용되는 것들을 의료법에 예시적으로 열거함으로써 분쟁을 줄여나가는 방안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입을 모았다.
의료기사법 사례 처럼 의료법에 입법적으로 허용 열거가 대안
이날 학술대회에서 주제발표를 한 오세진 검사(대구지검 포항지청)는 "치과의사의 면허 범위를 넓게 해석한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면서 "의사와 한의사의 면허 범위와는 달리 의사와 치과의사의 면허 범위 구별이 쉽지 않은 측면에서 이런 결론을 내린 것으로 생각되고, 또 형사처벌을 되도록 하지 않으려는 측면도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치과위생사가 치아 보철물을 치아에 임시로 접착해 의료기사 등에 관한 법률 위반죄로 처벌된 사례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데 참고할 수 있을 것이라며 대안을 제시했다.
오 검사에 따르면 대법원은 치과위생사인 피고인이 치아 보철물을 환자의 치아에 임시 접착한 행위는 치과위생사의 업무의 범위와 한계를 규정한 의료기사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제2조 제1항 제6호)의 '치아 및 구강질환의 예방과 위생에 관한 업무'에 해당하지 않음이 문언상 명백해 무면허 의료행위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의료기사 등에 관한 법률 위반죄가 성립됐다.
"현재처럼 오로지 의료법에서 정한 의료인 면허 범위 해석의 영역에 맡기는 것은 갈등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밝힌 오 검사는 "학계 등에서 적어도 각 의료인의 면허에 따라 고유의 영역으로 인정할 수 있는 것들의 예시를 정하고, 이를 늘려나가는 방법으로 면허범위를 조금씩 구체화해 나가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료기사법의 사례와 같이 입법적으로 허용되는 것들을 예시적으로 열거함으로써 분쟁을 줄여나가는 방안을 고민해 볼 여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치과대학서 보톡스 배워도 면허범위 벗어난 무면허 의료행위 명백
이영호 변호사(법무법인 의성)도 "대법원 전원합의체 결정 이후 유사한 후속 판결이 뒤따르고 추후 의료계는 물론 사회적으로 미치는 파장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의료인의 면허를 구분하고 있는 의료법의 기본취지나 문헌에 반하는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든다"고 밝혔다.
이 변호사는 의사와 치과의사의 교육과정에 차이가 분명하다는 것을 예로 들었다. 교육과정은 근본적으로 의료법에 따른 각 직역의 업무 영역의 차이에 바탕을 둔 것이라는 것.
따라서 처음부터 의사, 치과의사, 간호사의 양성이라는 서로 다른 목적으로 설립된 대학에서 설령 '보다 수준 높은 의료인의 양성'을 이유로 교육 범위를 확대한다고 하더라도 교육의 목적 자체가 달라질 수는 없으며, 면허 종류에 따른 의료행위의 범위는 입법자의 결정에 따른 영역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지적이다.
"간호대학에서 내과학을 배운 간호사라 할지라도 스스로 환자를 진료하고 치료하는 행위를 할 경우 면허 범위를 벗어난 무면허 의료행위에 해당함이 명백하다"고 밝힌 이 변호사는 "치과대학에서 보톡스나 피부레이저시술, 여드름 치료와 같은 의료행위에 대해 교육을 하더라도 치과의사가 이런 행위를 하는 것은 의료법에 따른 면허 종별 허용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과대학에서 설령 치과 진료에 관한 전문적인 교육을 추가하더라도 의사가 치과 치료를 시행하는 경우 무면허 의료행위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 것과 같은 이치"라고 설명했다.
이 변호사는 "입법자가 의료법에서 종별 면허제도를 구분한 것은 신체 부위에 따라 면허 범위를 결정한 것으로, 법원 역시 의료법에 규정된 의료인의 업무영역은 충분히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의료법상 의료인에게 허용된 의료행위를 어디까지로 한정할 것인가와 허용된 영역을 벗어나 의료행위를 한 의료인 개인을 처벌할 것인가는 구별되는 문제"라며 "해당 의료인에게 행정처분이 충분히 가능함에도 이를 형사처벌의 문제로 일관하게 될 경우, 형사재판의 단계에 이르러 법령에 명확하게 규정되지 아니한 탓으로 죄형법정주의가 작용하게 되면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하는 과정에서 의료인의 업무 영역이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일반인 상식·사회통념에 어듯난 결정…종별 갈등 조장 초래
박지용 교수(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도 대법원 전원합의체 결정이 의료법의 업무 범위에 관한 법 문언의 의미 등과 배치되는 문제를 언급했다.
박 교수는 "대법원판결은 의료법에 의사와 치과의사의 면허 범위에 관한 구체적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각 의료인의 면허 범위에 대한 판단의 기준을 종국적으로 공중보건적 위험성의 정도로 귀결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치과의사의 안면부 보톡스 시술과 같이 문제되는 특정 행위가 공중보건적 위험성이 낮다는 이유로 의료법상의 업무 범위를 일탈하는 의료행위를 허용하는 것은 의료법이 채택하고 있는 종별 면허제도의 근간을 허무는 것으로서 법 해석의 한계를 넘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대법원의 입장은 일반인의 상식과 사회통념에도 어긋난다고도 했다. 더군다나 의료행위와 비의료 행위를 구별하는 기준으로 사용되는 공중보건적 위험성을 면허범위 확정의 단계에서도 사용함으로써 오히려 그 법적 불명확성은 확대됐고, 이로 인해 의사와 치과의사 간의 면허 범위를 둘러싼 갈등을 더욱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꼬집었다.
치협 학술이사, "부작용 크지 않는 영역 면허범위 확대" 주장
법조계 전문가들의 이런 지적에 대해 이부규 대한치과의사협회 학술이사(서울아산병원 치과-구강악안면외과 교수)는 반론을 제기했다.
이 학술이사는 현재 외국의 경우 치과의사가 안면에 대한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 것으로 규정하는 경우가 많고, 우리나라도 해방 이후 전쟁 속에서 발전한 미국의 치의학과 치과 제도를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미국 구강악안면외과의 역사, 제도 및 의술이 그대로 우리나라의 시스템 속에 녹아 있다는 것을 부각했다.
이와 함께 치과대학 교육과정에서 필수적으로 교육하는 구강악안면외과학은 '구강', '턱'뿐만 아니라 '안면부' 일반에 대해서도 광범위하게 포함하고 있다는 점도 언급했다.
이 학술이사는 "치과의사가 안면부에 대해 충분한 의료지식이 있기 때문에 치과의사가 안면부 의료행위를 하더라도 국민의 건강을 위협할 가능성은 없다. 그것이 치료 목적이든 미용 목적이든 마찬가지"라면서 "의료법은 각 의료인에게 독점권을 부여하는 방향이 아니라 국민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기준으로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도의 의술이 필요하지도 않고 그 부작용도 크지 않는 의료행위의 영역은 될 수 있는대로 의료인의 면허 범위를 폭넓게 확대하고, 고도의 의술이 필요하고 부작용도 큰 의료행위의 영역은 치과의사든 일반의사든 자격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의료법을 개정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
이 학술이사는 "만약 의료법을 개정하고자 한다면, 국민의 건강, 그리고 의술의 발전 및 국민의 선택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뤄지길 바란다"며 법조계의 우려에 대해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