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사시인회 지음/현대시학 펴냄/1만원
시을 모르면서 시집을 소개하는 일은 늘 힘들다. 힘들면 안 하면 그만인데 그럴 수도 없다. 밥벌이이기도 하고 시인들과의 시간이 보태지기도 한다. 시를 어려워하지 말라는 시인들의 권면에도 시를 시로 보지 못한다. 한계와 푸념이 두터워진다. 게다가 힘들다는 것은 혼자만의 모자름에 그치지 않는다. 누군가는 보게 될 글인데 단 몇에게라도 시를 더 멀어지게 하면 어떡하나….
한국의사시인회 일곱 번째 작품집 <달이란 말이 찻잔 위에 올라왔다>가 출간됐다.
책제의 연유를 모르니 언뜻 찻잔 보다는 술잔이 어울릴 듯하다.
첫 장을 열면 김완 한국의사시인회장이 시집을 풀어놓는다.
시인의 산문은 언제나 아름답다.
봄, 산, 꽃, 새, 자유, 창조가 한 단락에 어우러진다. 봄이 잉태한 자유와 창조는 산, 꽃, 새들과 만난다. 영혼과 육체의 치유가 결코 구분될 수 없다는 진리는 '시와 의학'의 의미에 맞닿는다.
"의사들이 시를 쓰고 읽는 것은 인간의 질병과 의료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귀한 기회"라는 독백과 함께….
그리고 시어 하나에, 한 구절에 얼마나 많은 고뇌가 담겼는지를 에둘러 말한다.
"손 시린 겨우내 담금질한 언어는 정신의 지문이다. 새롭게 선보이는 시인들의 넋이 찍힌 '무늬'들을 어찌 함부로 할 수 있겠는가."
7집 제목은 한현수 시인의 '둥그러워 둥그러워진 달이야, 란 말을 들었다'에서 옮겼다.
10월의 밤/당신이 당신의 이름을 얻은 후 육십 번째의 해와 달/……달은 낮게 있어서 붉어지는 거고/높이 떠 있을수록 밝아지는 거고/자꾸만 달이란 말이 찾잔 위에 올라왔다/….
귀가 순해진다는 예순 해를 지나다보면 우리 삶도 둥그러워 둥그러워질까….
이번 작품집은 시인 20명의 시 60편을 품었다.
▲권주원(인턴X/엑스레이/돌팔이) ▲김경수(꽃의 기억/약손은 없다/추억의 냄새) ▲김기준(수면마취/호문쿨루스/바리데기) ▲김세영(염장/붉은 연어의 노래/흙) ▲김승기(하심/철로처럼/헤라클레스를 기다리며) ▲김연종(ADHD/B주류/돌팔이 시사) ▲김완(인연/비명/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응수(서녘에서 놀다/개가 살다/그대는 날쌘 짐승을 기르고 있다) ▲김호준(응급실1/응급실2/참례) ▲박권수(장미요양원/오래된 나무는 안다/포장마차) ▲박언휘(추억/유토피아/행복한 여백) ▲서화(생의 변주곡/저작/찔레꽃 연가) ▲송세헌(명절여행/골목이 사라진다/요양원1) ▲유담(눈물의 체온/일출/그림자 없는 곳) ▲정의홍(종각역에서/초당집/컵라면) ▲조광현(비행기는 지연된다/수영강변에서/가서 보리라) ▲주영만(모색 2/모색 3/모색 4) ▲최예환(낯선 소리/ㅅ/초신성을 보다) ▲한현수(어느 겨울, 잠들면 물고기만 나오는 꿈/박쥐가 악어 입 속으로 들어간다/둥그러워 둥그러워진 달이야, 란 말을 들었다) ▲홍지헌(꿈속에서/신비로운 물/냉이 이야기).
한국의사시인회는 6월 22일 토요일 오후 5시 서울 인사동 '옥정'에서 7집 출판기념회를 연다(☎ 02-701-23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