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서 현지조사 연기...법원 "조사거부 아니다."

아파서 현지조사 연기...법원 "조사거부 아니다."

  • 이정환 기자 leejh91@doctorsnews.co.kr
  • 승인 2019.07.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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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대표자 직접·대면조사 필수 아냐"...강압적 현지조사 관행 제동
서울행정법원 "직원 통해 현지조사 가능"...업무정지처분 위법 판결

ⓒ의협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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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기관 대표자가 건강상의 이유로 현지조사를 연기해 달라고 요청했음에도 이를 묵살한 채 직접 조사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업무정지처분을 내린 것은 위법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은 "현지조사 시 의료기관 대표자에 대한 대면·직접 조사는 필수적인 것이 아니다"면서 "대표자가 현장에 없다면 직원(대리인)에게 조사명령서를 제시하는 방법으로 조사를 할 수 있기 때문에 현지조사를 거부·회피했다는 이유로 행정처분을 내린 것은 적법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사건은 2017년 2월 16일 오전 10시 30분경 A의료기관에 대해 실시한 현지조사가 발단이 됐다. 조사원들은 당시 출근하지 않은 상태인 A의료기관장과의 통화에서 "조사명령서를 대표자인 A의료기관장에게 직접 전달한 후에야 현지조사를 개시할 수 있다. 조사를 거부하면 업무정지처분을 받을 수 있고, 형사처벌 대상이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A의료기관장은 "오늘은 몸이 좋지 않아 나갈 수 없다. 조사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성명·소속·전화번호 등을 남겨달라. 현지조사 대상기간·조사목적이 무엇인지 말해달라. 조사명령서를 카카오톡 메시지로 보내거나 직원에게 전달해 달라. 약제비를 일부 착오 청구한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

현지조사팀장은 2월 16일 오후 5시 26분경 '현지조사 연기는 천재지변 등 피치 못할 사유가 있을 때 해당한다. 만나주지 않아 조사 거부·방해·기피에 대한 처분으로 1년 이내의 업무정지 및 형사고발로 인한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내일(2월 17일) 10시에 방문하겠으니 조사 수용을 권고드리고, 거부할 경우 의사표시를 확실히 해 줬으면 한다'는 취지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A의료기관장은  2월 17일 오전 9시 43분경 '내일 오면 어떨지요. 제가 일어날 수 없네요. 죄송합니다. 조사는 성실히 받겠습니다'는 문자메시지를 발송했다. 

현지조사팀은  2월 17일 오전 11시 27분경 '보건복지부에 보고하였고, 조사를 못 받는다는 의견을 조사거부로 보아 종료하겠다'는 취지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보건복지부는 2017년 2월 17일 A의료기관 원장(원고)이 현지조사를 거부하는 것으로 판단해 현지조사를 중단하고, 행정처분 절차를 밟았다.

보건복지부 장관은 2018년 4월 24일 A의료기관장이 검사 또는 조사를 거부·방해·기피했다며 국민건강보험법 규정에 근거해 요양기관 업무정지처분 1년을, 2018년 5월 9일에는 의료급여법의 근거해 의료급여기관 업무정지처분 1년을 내렸다.

정지처분 통지를 받은 A의료기관장은 보건복지부 장관을 상대로 영업정지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A의료기관장은 "현지조사원들이 의료기관으로 직접 나와서 현지조사에 응할 것을 요구했는데, 당시 건강이 좋지 않아 의료기관에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이유로 현지조사 연기를 요청했고, 실제로 현지조사원들은 직원의 협조를 받아 현지조사를 할 수 있었음에도 업무정지처분을 내린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서울행정법원 재판부는 ▲원고가 일부 부당청구 부분을 인정하면서 자신의 처지를 설명한 점 ▲현지조사원들을 대변해 진행하는 조사절차를 따르지는 않았지만 기본적으로 현지조사에 응하겠다는 태도를 보인 점 ▲건강이 좋아지면 언제든지 현지조사를 받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점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보건복지부 '요양기관 현지조사 지침'에서도 '요양기관 대표자의 질병·장기출장 등으로 그 대리인만으로는 현지조사가 곤란하다고 판단될 때(이 경우 증거인멸, 자료의 위·변조 등에 대비해 조사자료 우선 징구) 조사 연기가 가능하다고 명시하고 있다"며 "현지조사원들은 직원에게 조사자료를 건네받을 수도 있고, 현지조사에서 요양기관 대표자에 대한 대면조사 또는 직접 조사가 필수적인 방법도 아니다"고 판단했다.

"원고가 몸이 아파 현지조사를 받을 수 없으니 현지조사를 연기해 달라고 요청함에도, 현지조사원들은 현지조사의 연기 사유가 존재하는지 아무런 확인도 하지 않은 채 현지조사에 응할 것을 반복적으로 요구했다"고 밝힌 서울행정법원 재판부는 "원고가 현지조사를 거부·회피하는 것으로 섣불리 단정했다"면서 "원고가 정당한 이유 없이 이 사건 현지조사를 거부·방해·기피한 사실을 인정하기 부족하므로, 업무정지처분은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이 사건 원고 측 변호를 맡은 현두륜 변호사(법무법인 세승)는 "이번 사건은 강압적인 현지조사에 대한 의료기관 대표자들의 절차적 기본권이 문제가 되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현 변호사는 "현지조사 과정에서 의료기관 대표자에 대한 대면조사 및 그의 사실확인서 작성은 필수적인 것이 아님에도 현지조사 실무에서는 의료기관 대표자(개설자)에게 사실확인서 작성을 강요하고 있고, 이를 위해서 현지조사 현장에 대표자가 나와 조사를 받을 것을 요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 변호사는 "법원은 의료기관 대표자에 대한 대면조사 또는 직접조사는 필수적인 것이 아니라고 하고, 그 대리인(직원)을 통한 현지조사가 가능하다면 이를 현지조사 거부나 회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며 "건강보험 현지조사 시 의료기관 대표자에 대한 강압적인 조사 관행이 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A의료기관장에 대해 행정처분과 별도로 국민건강보험법·의료급여법 위반 등의 혐의가 있다며 형사고발을 진행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는 2018년 12월 19일 원고가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낸 점, 평소 건강이 좋지 않아 조사에 임할 수 없었던 점(경추디스크·수면장애·안면마비·우울장애 등 진료확인서 제출), 현지조사원들이 의료기관을 재차 방문해 현지조사를 진행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고려, 정당한 사유 없이 조사를 거부·기피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불기소 결정(혐의없음)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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