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정신병원' 개설 불허! 그런데 사유가…?

또 '정신병원' 개설 불허! 그런데 사유가…?

  • 홍완기 기자 wangi0602@doctorsnews.co.kr
  • 승인 2019.08.0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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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병상수 권고기준 초과했다"...인천 서구청, 개설 불허 이유
의협 "법령따라 허가해야...정신질환자·가족 상처 준 반인권 행정"

아노스병원 개설예정 건물 ⓒ의협신문
인천시 서구에 있는 아너스병원 개설 예정 건물. ⓒ의협신문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인구 1000명당 1개 병상을 권고기준으로 정했다. 서구에는 이미 1058병상이 있다. 이는 권고 기준을 초과하는 수치다. 추가 시설을 배제(불허)한다"

지역언론사(인천투데이) 보도에 따르면, 이재현 인천 서구청장은 7월 30일 '원당 사거리 정신병원 개설' 관련 검토 결과를 보고하는 주민설명회에서 이같이 정신병원 개설을 불허한 이유를 밝혔다.

의료법이 규정한 병원 개설 허가 조항이 아닌 WHO 권고기준을 내세워 불허하기로 결정했다는 것.

주민설명회에서 김영선 서구 보건행정과장은 "주민의 반대만으로 개설을 불허한 게 아니다. 서구청의 병원 총량관리계획 정책과 맞물려 내린 결정이다. 7월 31일 병원에 불허를 통지하겠다"고 밝혔다.

'정신병원' 개설 허가를 둘러싼 갈등이 경기도 오산시 세교지역에 이어 최근 인천시 서구에서도 발생했다.

경기도 오산시 정신의료기관 설립 과정에서 벌어진 안민석 의원의 '막말' 논란을 계기로 '우리집 마당에는 안된다'는 님비 현상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제용진 원장(아너스병원 개설허가 신청자)은 지난 5월 인천시 서구 검단 원당사거리에 5층 건물을 임대, 186병상을 갖춘 정신병원을 개설하기 위해 허가 신청 절차를 밟았다. 병원은 지하 2층, 지상 5층 규모로 1층에는 외래 진료실을, 2층부터 5층까지는 폐쇄병동을 설치하려고 했다.

하지만 서구보건소는 서류 불충분을 이유로 의료기관 개설허가 신청을 반려했다.

정신의료기관 설치를 규정하고 있는 현행 정신건강복지법 시행규칙 제11조 제2항 별표4에는 정신의료기관의 시설 기준에는 입원환자 60명당 1명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두도록 명시하고 있다. 

제용진 원장은 "서구보건소는 보건복지부가 오산시 평안한사랑병원에 '시정명령'을 하면서 내린 '유권해석'을 들어  '입원환자'가 아닌 '병상 수' 기준을 따라야 한다며 전문의 숫자가 부족하다는 이유를 댔다"고 말했다.

'입원환자'가 아닌 '병상 수' 기준에 따라야 한다는 서구보건소의 반려 이유를 충족하기 위해 제용진 원장은 두 달 동안 의사 및 간호사 채용 공고를 냈다. 하지만 지원자를 찾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병상 수를 59병상으로 축소했다. 간호사와 직원을 채용, 지난 7월 8일 다시 개설허가를 신청했다. 건물 준공 허가도 마쳤다.

병원 개설허가 행정처리 시한인 7월 19일까지 허가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서구보건소는 "서구청 정책위원회에서 허가 여부에 관해 회의를 하기로 했다. 8월 2일까지 결정해 주겠다"며 결정을 미뤘다.

하지만 7월 30일 원당 사거리 정신병원 개설 신청 검토 결과를 보고하는 주민설명회에서 서구보건소는 "정신병원 개설 허가는 불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날 설명회에는 이재현 서구청장과 서구의회 의원(더불어민주당 이순학, 자유한국당 이의상)을 비롯해 김영선 서구 보건행정과장 등 구청 및 구의회 관계자와 주민 100여 명이 참석했다.

김영선 서구 보건행정과장은 "병원 측의 불복을 충분히 예상하고 있다. 병원 위치에 따른 주민들의 불안감이 소송의 쟁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소송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겠다"며 개설 불가와 함께 행정소송까지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제용진 원장은 [의협신문]과의 통화에서 답답한 심경을 털어놨다.

"의료법에 따라 두 곳에 근무할 수 없으니 개설 허가를 신청하기 전에 그만둬야 한다는 보건소 직원의 안내에 따라 근무하던 병원에 사표도 냈다. 보건소에서 안내한 사항을 모두 따랐다. 그런데 의료법도, 국내법도 아닌 WHO의 권고사항이 불가 이유라니…납득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제용진 원장은 "우리나라는 이미 1000명당 1.6병상 정도로, 국가 전체적으로 WHO 권고기준을 초과했다. 그럼 우리나라에서는 어디에도 정신병원을 개설할 수 없다는 말인가?"라고 반문하며 "WHO 권고기준은 병원 외에도 정신질환자를 케어할 수 있는 정신보건시설이나 인력을 잘 갖추고 있는 나라를 포함한 평균치다. 주로 병원에서만 (정신질환자를)케어하고 있는 우리나라와 비교할 수 있는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고 반박했다.

현행 정신건강복지법 제3장 제19조에는 ▲300병상 이상의 정신의료기관을 개설하려는 경우 ▲정신의료기관의 병상 수를 300병상 미만에서 기존의 병상 수를 포함하여 300병상 이상으로 증설하려는 경우 ▲300병상 이상의 정신의료기관을 운영하는 자가 병상 수를 증설하려는 경우에 한 해 보건복지부장관이 정신의료기관의 규모를 제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300병상 이하의 경우에는 보건복지부장관은 물론 시·도지사나 구청장이 규모를 제한할 수 있는 규정이 없다.

제용진 원장은 "보건복지부장관이 시·도지사에 병원 계획 수립을 법적으로 지정했다. 구는 시장으로부터 허가를 위임받았을 뿐"이라며 "애초에 신청한 병원은 300병상 이하인 186병상이기 때문에 장관이 법적으로 제한할 수 있는 근거가 없고, 지방자치단체가 병상 수를 결정할 수도 없다"고 밝혔다.

"지난 26년간 정신과 의사로서 사명감으로 일해 왔다. 법에서 정해 놓은 기준을 모두 따랐다. 그런데 왜 이런 상황이 온 건지 이해할 수 없다"고 언급한 제용진 원장은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정신환자들의 진료권을 보장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인천 서구보건소 보건행정과 관계자는 [의협신문]과의 통화에서 "물론 WHO의 권고기준 초과 역시 불허 기준 중 하나로 작용·반영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꼭 그것만이 이유가 된 것은 아니다. 이는 과한 표현"이라고 말했다.

서구보건소 관계자는 개설 불가 사유에 대해 "인천시 관내 전체 지자체 중에서도 계양이나 서구 같은 경우, (병상수가)2배 가까이 초과하고 있다. 서구에 있는 정신의료기관에 실제 서구민이 입원해 치료를 받는 비율이 20~30%정도인 점도 고려했다. 서구민들이 우려하는 부분에 비해 받을 수 있는 혜택이 그렇게 크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대한의사협회는 1일 서구청의 정신병원 개설 허가 불허에 대해 "법령에 의거하지 않은 부적절한 처사"라며 "인천 서구청장과 서구 보건소장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정신병원 개설을 허가하라"고 촉구했다.

의협은 "적법한 사유 없이 정신병원 설립을 불허하는 사태는 병원 개설자뿐 아니라, 정신질환자와 가족들에게 큰 상처를 입히게 될 것"이라며 "사회적 편견으로 인해 고통받는 정신질환자를 위한 국가적 인식개선에 역행하는 반인권적 자치행정"이라고 비판했다.

"적법한 절차 및 기준에 의거한 의료기관 개설 허가의 재검토를 촉구한다"고 밝힌 의협은 "불허 결정 강행 시, 13만 의사회원과 600만 정신보건 가족들이 함께 강경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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