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은 문학이 들어와 살기 좋은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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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영재 기자 garden@kma.org
  • 승인 2019.08.27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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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과 문학 접경연구소, 의학-문학 접경 생성 현상 탐색
'문학 속 질병, 질병학 속 문학' 주제 강연·시낭송 진행

의료의 핵심적이고 실제적 영역인 질병학 속에 문학이 어떻게 들어와 재주(在住)하며 활약하고 있을까? 의학과 문학 간의 접경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한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의학과 문학 접경연구소는 지난 24일 서울시 50+ 중부캠퍼스에서 '의학과 문학 접경: 문학 속 질병, 질병학 속 문학'을 주제로 두 번째 세미나를 열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시문학 속 질병: 나환자 시인 한하운의 시적 변모 양상 고찰'(이승하 중앙대 문창과 교수·한국문예창작학회 회장), '소설문학 속 질병: <페스트> 중심으로'(박재현 성균관의대 사회의학과 교수), '질병학 속 문학의 재주(在住)'(유형준 씨엠병원 내과·한림의대 명예교수), '시낭송 테라피 시연'(문미란 시인·시낭송가/기타 반주  변수진) 등의 강연과 낭송이 진행됐다.

이승하 교수는 한센병을 앓은 시인 한하운의 시를 통해 '천형'을 끌어안은채 예술혼을 불태웠던 시인과 시에 나타난 감정과 의식의 흐름을 되짚으며, 병의 진행과정에서 동반된 심경변화가 어떻게 작품에 투영되는 지를 살폈다.

질병의 굴레 속에서 삶을 보낸 한하운의 시는 '환자로서의 내면의식 탐구→병에 대한 자의식→사회에 대한 관심→현실참여의식으로 심화→순수서정시로의 안착'으로 이환되며, 마음의 측면에서는 '고통의 승화→병에 대한 분노의 표출→사회에 대한 관점으로 확대→격정적인 사회비판→평정과 서정의 세계'로 이행한다고 설명했다.

박재현 교수는 소설 <페스트>는 우리가 사는 사회를 떠날 수 없는, 인간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부조리한 현실을 상징한다고 지적했다. 사회의학적 관점에서 질병 역시 사회적인 구조에 영향을 받아 발생하며, 질병의 원인은 생물학적으로 한정되지 않으며 전쟁·실업·사회적 편견과 같은 사회의 부조리로 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의학적인 질병인 페스트는 소설 속에서 부조리로 추상화돼 이야기를 풀어간다.

의학과 문학 접경연구소는 지난 24일 서울시 50+ 중부캠퍼스에서 '의학과 문학 접경: 문학 속 질병, 질병학 속 문학'을 주제로 두 번째 세미나를 열었다. 앞 줄 왼쪽부터 변수진 반주자·문미란 시인·유형준 교수·이승하 교수·유석희 교수·박재현 교수.
의학과 문학 접경연구소는 지난 24일 서울시 50+ 중부캠퍼스에서 '의학과 문학 접경: 문학 속 질병, 질병학 속 문학'을 주제로 두 번째 세미나를 열었다. 앞 줄 왼쪽부터 변수진 반주자·문미란 시인·유형준 교수·이승하 교수·유석희 교수·박재현 교수.

유형준 의학과문학접경연구소장은 질병학 속에 재주하고 있는 문학을 소설과 시로 나누어 살피고, 질병 치료 분야에서 시테라피에 관한 이론과 임상 의학적연구 결과를 제시했다. 문학이 의학 속으로 들어와 잠시 머물거나 한데 뒤섞이면서 공존하며, 이 공존은 둘 그대로 특성이 유지되는 통섭(通涉)이다. 서로 섞이면서 녹아 원래의 둘과 다른 하나가 되는 통섭(統攝)은 아니라는 것이다.

유 소장은 "의학과 문학이 접경면을 확장하고 접경의 밀착도가 끈끈해질수록 재주와 공존의 기회와 정도는 잦고 강해진다. 그러나 상당 부분 서로 오버랩 할지라도 단지 하나 위에 다른 하나가 얹혀 있는 형국이다. 활발히 진하게 통섭하려면 반드시 제3의 요인, 제3의 에너지가 필요하다"며 "그 요인과 에너지의 노력과 정성이 의학과 문학을 쉬이 풀어지지 않도록 어긋매끼게 겯는 모습은 보로메오(Boromeo) 고리를 닮았다. 둘은 그저 엇갈린 상황이고 제3의 고리가 엮어주어야 하는 보로메오 통섭의 꼴로 재주하고 있으리라 가정했다"고 설명했다.

문미란 시인은 '생명은 때로 아플 때가 있다'(이승하) 시낭송을  통해 시테라피에 다가섰다. 시테라피는 시를 읽고 듣고 쓰는 모든 행위를 활용하는데, 특히 시테라피의 한 방법으로 시낭송은 오감을 동원한 행동성이 보다 적극적이어서 테라피 효과를 강화시키는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시낭송은 시 속에 녹아 있는 시인과 시의 이미지·메시지·감정 등을 낭송자가 재해석해 발성이라는 행위를 통하여 소리로 변환시키면서 억양의 변화와 함께 정서와 감정을 넣어 청중에게 전달하는 재창작 예술이다. 오감 작동성을 증강한 시낭송 퍼포먼스는 테라피 효과를 극대화하게 된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연자들은 "의학은 병적 변화가 증상과 징후로 드러내는 무늬를 연구하고 실행하는 인문학"이라며 "인간의 신체를 해부하고 나아가서 유전자 수준까지 미세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점에선 어느 분야의 인문학자도 넘볼 수 없는 심오하고 세미한 인간 실체를 잘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인문학적 토양에 기초한 의학은 문학이 들어와 살기 좋은, 즉 질병학 속 문학의 재주에 어색하지 않은 거주 환경일 것"이라고 목소리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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