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고등법원, 건보법 제47조의2 제2항 위헌 제청…헌법재판소 심리 진행
건보공단 지급보류로 폐업…'직업수행 자유·재산권·무죄 추정 원칙' 위배
법원에서 확정 판결이 아닌 수사기관의 수사 결과에서 사무장병원이 확인됐다는 이유로 요양급여비용 지급을 보류할 수 있도록 규정한 국민건강보험법 제47조의2 제1항(요양급여비용의 지급 보류)이 위헌 심판을 받게 됐다.
대전고등법원은 지난 7월 3일 국민건강보험법 제47조의2 제1항의 위헌 여부에 관한 심판을 제청했다. 이에 따라 헌법재판소는 관련법안의 위헌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심리에 들어갔다.
헌재가 심리하고 있는 국민건강보험법 제47조의2 제1항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요양급여비용의 지급을 청구한 요양기관이 의료법 제33조 제2항 또는 약사법 제20조 제1항을 위반했다는 사실을 수사기관의 수사 결과로 확인한 경우에는 해당 요양기관이 청구한 요양급여비용의 지급을 보류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 조항 신설 이전에는 국민건강보험법 제57조에 근거, 부당하게 지급한 요양급여비용을 환수했다.
하지만 환수처분 통지를 받은 사무장병원이 재산 은닉·도피, 폐업, 파산 등의 수단을 악용하면서 환수 결정금액의 상당 부분을 환수하지 못하는 등 사후적 조치의 실효성이 떨어지자, 국회는 2014년 5월 20일 수사 결과를 근거로 요양급여비용 지급을 보류할 수 있도록 관련 조항을 신설했다.
이 조항 신설에 따라 건보공단은 수사기관으로부터 의료법 제33조 제2항을 위반했다는 수사 결과를 근거로 요양급여비용의 지급을 보류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대전고등법원 행정재판부는 의료법인 A의료재단에 대한 요양급여부지급처분 취소 소송 중 A의료재단이 민사재판에서 1심과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데 이어 대법원서도 상고가 기각 결정된 점, 그리고 형사사건에서도 1심에서 A의료재단에 무죄가 선고됐음에도 건보공단이 A의료재단에 '무죄가 확정될 때까지는 요양급여비용을 지급할 수 없다'라는 이유로 요양급여비용을 지급하지 않은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봤다.
같은 사안을 놓고 벌어진 행정소송에서도 A의료기관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으며, 현재 대전고등법원에서 항소심(2심) 재판을 받고 있다.
대전고등법원은 건보공단의 지급 보류 처분에 따라 A의료재단이 청구한 요양급여비용을 지급하지 않음으로써 A의료재단은 경영에 어려움을 겪게 됐고, 부동산에 대해 임의 경매개시결정이 내려지는 등 사실상 폐업 상태에 이른 점을 유심히 살폈다.
재판부는 요양급여비용 지급 기간이 부당하게 길어진다면 의료기관은 경영악화를 겪을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의료업을 수행할 수 없게 돼 지급 보류 처분은 사실상 의료기관에 대한 업무를 정지시키는 것과 효과에 있어 크게 다르지 않고, 이로 인해 의료기관 개설자의 직업수행 자유뿐만 아니라 의료기관에서 종사하고 있는 근로자들, 의료기관에 입원해 있는 환자들, 의료기관과 거래 관계에 있는 제3자 등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봤다.
그러면서 이 사건 법률조항이 위헌이라고 인정할 만한 타당한 이유로 ▲헌법상 기본권인 의료기관 개설자의 직업수행 자유 제한 ▲의료기관의 요양급여비용청구원은 헌법상 재산권의 보호 범위에 포함된다고 할 것이므로 의료기관 개설자의 재산권 제한 ▲무죄 추정의 원칙 위반을 들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조항(제47조의2 제3항)에서 무죄판결이 확정되는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유로 혐의가 입증되지 않은 경우 이자를 가산해 지급하도록 하는 규정을 두고 있을 뿐, 지급 보류 처분의 해제 사유에 관해서는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며 지급 보류 처분에 대해 권리구제를 받을 방법이 없어지게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지급 보류 규정이 아니더라도 건보공단이 수사기관으로부터 수사 결과를 통보받으면 의료기관에 요양급여비용을 지급하되 동시에 의료기관의 재산에 대해 가압류 또는 가처분 등의 보전처분을 하거나 담보권을 설정하는 방법도 있다"며 "건보공단이 수사 결과를 통보받고 '일방적'으로 지급 보류 처분을 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해 보이지도 않는다"고 밝혔다.
즉, 건강보험 재정의 건전성을 확보하려는 것이 법률조항의 목적이라면, 충분히 다른 방법을 통해 입법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
재판부는 "이 사건 법률조항은 그 위헌 여부가 이 사건 재판의 전제가 될 뿐만 아니라 이를 위헌이라고 인정할 만한 타당한 이유가 있음으로, 그 위헌 여부에 관한 심판을 구하기 위해 위헌제청 결정을 내리게 됐다"고 밝혔다.
정혜승 변호사(법무법인 반우)는 "아직 유죄가 확정되지 않은 의료기관에 진료의 대가인 요양급여비용의 지급을 보류하는 것은 지나치게 행정 편의적이며 위헌적인 방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조항 때문에 여러 의료기관이 요양급여비를 지급받지 못해 운영을 중단하는 등 폐업 상황을 맞고 있다"라며 "위헌 여부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현명하게 판단해주기를 바란다"라고 기대했다.
<관련 법률 조항>
국민건강보험법 제47조의2(요양급여비용의 지급 보류)
① 제47조제3항에도 불구하고 공단은 요양급여비용의 지급을 청구한 요양기관이 의료법 제33조 제2항 또는 약사법 제20조 제1항을 위반했다는 사실을 수사기관의 수사 결과로 확인한 경우에는 해당 요양기관이 청구한 요양급여비용의 지급을 보류할 수 있다.
③ 법원의 무죄 판결이 확정되는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유로 제1항에 따른 요양기관이 의료법 제33조 제2항 또는 약사법 제20조 제1항을 위반한 혐의가 입증되지 아니한 경우에는 공단은 지급 보류된 요양급여비용에 지급 보류된 기간 동안의 이자를 가산해 해당 요양기관에 지급해야 한다.
국민건강보험법 제57조(부당이득의 징수)
① 공단은 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으로 보험급여를 받은 사람이나 보험급여 비용을 받은 요양기관에 대해 그 보험급여나 보험급여 비용에 상당하는 금액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징수한다.
② 공단은 제1항에 따라 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으로 보험급여 비용을 받은 요양기관이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해당 요양기관을 개설한 자에게 그 요양기관과 연대해 같은 항에 따른 징수금을 납부하게 할 수 있다.
1. 의료법 제33조 제2항을 위반해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없는 자가 의료인의 면허나 의료법인 등의 명의를 대여받아 개설·운영하는 의료기관
③ 사용자나 가입자의 거짓 보고나 거짓 증명 또는 요양기관의 거짓 진단에 따라 보험급여가 실시된 경우 공단은 이들에게 보험급여를 받은 사람과 연대해 제1항에 따른 징수금을 내게 할 수 있다.
④ 공단은 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으로 보험급여를 받은 사람과 같은 세대에 속한 가입자(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으로 보험급여를 받은 사람이 피부양자인 경우에는 그 직장가입자를 말한다)에게 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으로 보험급여를 받은 사람과 연대해 제1항에 따른 징수금을 내게 할 수 있다.
⑤ 요양기관이 가입자나 피부양자로부터 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으로 요양급여비용을 받은 경우 공단은 해당 요양기관으로부터 이를 징수해 가입자나 피부양자에게 지체 없이 지급해야 한다. 이 경우 공단은 가입자나 피부양자에게 지급해야 하는 금액을 그 가입자 및 피부양자가 내야 하는 보험료등과 상계할 수 있다.
의료법 제33조(개설 등)
②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가 아니면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없다. 이 경우 의사는 종합병원·병원·요양병원 또는 의원을, 치과의사는 치과병원 또는 치과의원을, 한의사는 한방병원·요양병원 또는 한의원을, 조산사는 조산원만을 개설할 수 있다.
1.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또는 조산사
2.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3. 의료업을 목적으로 설립된 법인(이하 '의료법인'이라 한다)
4. 민법이나 특별법에 따라 설립된 비영리법인
5.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른 준정부기관, 지방의료원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른 지방의료원,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법에 따른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위헌 제청>
법률의 위헌 여부가 일반법원에서 재판의 전제가 되는 경우에 법원이 직권 또는 당사자의 신청에 의해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는 제도
법원이 당사자의 신청 또는 직권으로 위헌제청결정을 하고 대법원을 거쳐 헌법재판소에 위헌제청결정서 정본이 송부되면, 헌법재판소는 이를 접수해 심판절차를 진행한다. 법원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때에는 당해 소송사건의 재판은 헌법재판소의 위헌여부의 결정이 있을 때까지 정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