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학아카데미연맹·유럽과학한림원연합회, WHO에 규제강화 촉구 성명
한의학 안전성 의문 제기…"과학적 근거 빈약한 제품 무차별 수용 위험" 우려
한국 정부가 한의약의 세계시장 진출을 위해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유럽연합 의사와 과학자들이 한국을 비롯한 중국·일본 등 동아시아 지역에 널리 보급된 한의학의 안전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나섰다.
유럽의학아카데미연맹(FEAM)과 유럽과학한림원연합회(EASAC)은 세계보건기구(WHO)에 전통의학에 대한 규제를 엄격히 해달라는 내용의 공동 성명서를 7일 발표했다.
두 단체는 WHO가 최근 개정한 국제질병분류체계(ICD-11)에 중국 전통의학(TCM)에 관한 내용을 추가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제질병분류체계에 한·중·일이 주도해 전통의학을 편입시킨 것을 따진 것.
FEAM·EASAC는 TCM을 ICD-11 진단 코드에 추가하는 것은 실제로 근거 없는 주장을 정당화·합법화하는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주장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고자 하는 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TCM이나 기타 대체의학(CAM)을 ICD-11에 포함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밝혔다. ICD-11에 TCM을 포함하는 것은 ICD의 기반이 되는 과학적 원리에 반한다는 이유에서다.
이들은 중국을 포함한 전통의학이 말라리아 치료에 아르테미시닌(artemisinin)을 적용한 사례는 주목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아르테미시닌이 항말라리아제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생약학 및 의료화학 분야의 철저한 연구와 임상시험이 동반됐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TCM 의료진이 시험한 쑥(artemisia)은 원래 활성 재현성이 떨어지는데, 의약품 기관에서 승인받은 합성물은 쑥의 약물동력학적 특성을 향상하기 위해 쑥의 천연 분자를 화학적으로 변형시킨 것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현대 의약품의 상당 부분이 천연물질을 기반으로 한 것임은 잘 알려진 사실이고 또 치료 효과가 있는 다른 천연물질도 아직 많을 것"이라고 밝힌 FEAM·EASAC은 "그렇다고 해서 다른 주장도 비판 없이 수용돼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치료 또는 질병 예방 전략은 반드시 작용원리, 투여 방법, 생리 및 심리적 영향과 같은 의학적 기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며 "WHO의 ICD-11 개정안은 표준화된 절차를 통해 충분한 조사를 거치지 않았고, 과학적 근거도 빈약한 제품과 진단법을 무차별적으로 수용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이 밖에 "약초 성분의 유해성으로 인해 벌어지는 다양한 위험은 이미 문서화돼 있다"며 "품질 및 성분구성에 대한 승인체계가 없는 상태에서 불순물 및 용량변동으로 인한 추가적인 위험이 발생할 수 있어 환자의 안전에 문제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FEAM·EASAC은 "모든 제품은 효능, 안전성 및 품질에 대한 일관된 증거가 있어야 하고, 적절한 수준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며 "EU 집행위원회와 회원국은 각자의 규제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