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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9 15:21 (금)
외부에서 바라본 의사시인회
외부에서 바라본 의사시인회
  • 김연종 원장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19.11.26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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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종 원장(경기 의정부·김연종내과의원)
김연종 원장(김연종내과의원)
김연종 원장(김연종내과의원)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프란츠 카프카)

손에든 것이 도끼가 아니라 망치여도 상관없다. 책을 읽는다는 건 자유를 읽는 것과 같다. 니체식으로 말하면 책은 노예 같은 삶을 끊어버리고 주인으로서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세모 시즌이 왔다. 올 한해의 문학을 점검해 본다. 지금까지 자가진단이었다면 올해는 조금 다른 방식이다. 외부인이 바라본 의사시인회, 외부인의 눈으로 우리 문학을 살펴보고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려는 것이다.

2019 한국의사시인회정기총회가 인사동의 조그만 식당에서 개최됐다. 문학 집담회를 겸한 모임인데 한 해를 결산하고 후년의 계획을 수립하는 자리다. 간단한 회무보고에 이어 회원들의 근황 소개가 있었다. 올해도 여러 회원들의 시집 출간이 줄을 이었다. 문예지 창간과 문학 세미나 개최 등 한국의사시인회 회원들의 문학 활동이 두드러진 한 해였다. 토의사항으로 신입회원 확충과 모임 활성화 방안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현재 쉬고 있는 회원들과도 지속적인 교신으로 그들의 문학 활동을 독려하기로 했다. 문학 기행을 계속 추진하고 출간 기념회의 지방 개최로 회원 상호간 교류를 확대키로 했다. 사화집 발간에 대한 의견도 있었다.

김완 회장님은 한국의사시인회의 존재 의미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토로했다. 의료현장에 대한 시를 창작함으로 직업의식과 시인으로서 사명감을 함께 살리자는 방안을 제시했다.

매년 발간하는 의사시인회 사화집 세 편의 시 중 한 편 정도는 의학시로 게재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다. 개인의 문학적 성향과 시적 취향에 따라 작품을 써야 한다는 말과 함께. 의사시인의 페르소나에 대해 고뇌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여전히 문학과 의학의 깊은 골에서 갈등하는 회원들이 많다. 이에 대한 진심어린 충고와 조언이 있었다.

오늘의 외부 인사로 참여한 고영 시인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시 전문 잡지인 <시인동네>를 발행하고 있다. 최근에 아픈 개인사를 겪으면서도 기꺼이 모임에 참가해준 데 대한 감사와 존경을 표했다. <백날을 함께 살고 일생이 갔다> 배영옥 시인의 유고시집에 대한 답시 형태의 시집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이 시대 진정한 로맨티스트다운 모습이다. 그는 자신의 첫 시집이며 최근에 재출간한 시집<산복도로에 쪽배가 떴다> 사인본을 직접 선물해 주었다. 그는 일방적 강의를 거부하고 자유로운 형식의 좌담을 택했다.

의학의 현장이야말로 귀한 문학의 현장이다. 소중한 자산을 잘 활용하면 시적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전문 영역에 대한 묘사는 의사시인만이 갖고 있는 최대의 강점이다.

문학계의 블루오션이 될 수도 있다. 전문 영역에 대한 시 쓰기를 확고히 하되 작가 이력에는 의사 명함을 생략해 반전의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으리라는 조언도 덧붙였다. 덕담 위주의 말이 많았지만 왜 모르겠는가? 그렇다고 자기 허물을 마냥 보고만 있을 수도 없는 일. 내부에서 자성의 목소리도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냉정하게 따져보자. 엄밀히 말해 문학이란 어떤 권력도 아무런 의무도 없다. 문학은 그 자체로 존재해야지 목표가 따로 있을 수 없다. 그것은 문학인이나 문학 단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한국의사시인회도 마찬가지다. 문학과 의학의 접점을 찾으려는 시도는 처음부터 잘못 끼운 단추일지도 모른다. 즐겁게 모여 함께 이야기하는 자리가 진정한 문학 판이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면서 기꺼이 존재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문학의 존재 이유가 아닐까.

새벽마다 책을 들여다보고 무언가 쓰고 있는 내게 출근하는 아들이 비아냥거린 어조로 묻는다. 요즘 취미 생활은 잘 되어 가느냐고. 시업이 취미로 비춰진 마당에 무슨 답변을 할 수 있을까. 대답 대신 가만히 내게 묻는다. 문학이란 너에게 무엇이냐고. 진정 외롭고 힘들 때 너를 위로하는 게 있기는 하냐고. 나는 속으로 대답한다. 내게 시 쓰기는 직업이거나 취미 이전에 삶의 방식이라고. 설령 존재의 의미를 잃게 되더라도 나는 이 삶의 방식을 고수하며 살아가겠노라고.

쓸쓸한 쪽지를 건넸다 한참을들여다보던 동네 의사는 말없이 고개만 저었다 몸과 마음이 동시에 상한 것 같다며의뢰서를 써주었다나는 점점 시들었고 마침내 절망했다

우울한 쪽지를건넸다 요리저리 살피던 변방의 시인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몸과 마음이 동시에 위태로워지는 순간 詩가 탄생한다고 했다 나는 시들시들 앓았고 마침내 절필했다

날씨에는 늘 예민했다 관상대는 어감이 좋지 않아기상청으로 개명했다 입춘이 지나면서부터 황사와 미세먼지와두려움이동시에 펄럭인다

점점 흐릿해지다 어느 순간 또렷해진 문장이 연필심처럼 눈을 찌른다 무럭무럭 자라 지우개로도 지워지지 않는 강박을 처방전에 옮겨 적는다

- 졸시 '미궁에 대한 돌팔이 처방' 전문
 

나는 다시 내게 묻는다. 내가 문학을 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이 질문 앞에서 오래도록 고민했다. 그것은 내가 의사로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와 똑같은 질문이기 때문이다. 나는 잠시 의사로서의 삶을 되돌아본다. 틀에 박힌 상담을 하고 교과서적인 답변을 하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으려는 것은 아닌지. 환자의 고통은 외면하고 돈만 밝힌다는 사회적 페르소나에 대해서는 무어라 변명할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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