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준 지음/행림미디어 펴냄/1만 8000원
"지금 가장 잘 할 수 있는 건 늙는 걸세."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 늙는다. 봄날의 생기를 잃고 여름날의 열정도 놓치고 가을날의 원숙함에도 외면받다보면 어느새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내내 지녔던 모습은 흔적을 지우게 된다. 그래도 사람은 거두는 게 있다. 수많은 것을 잃으며 다다른 늙음에는 삶을 관조하는 통찰이 배이고, 살아온 역정을 거치며 쌓은 지혜를 품고, 영욕을 감내하며 배운 시간의 의미를 되새긴다.
유형준 한국만성질환관리협회장(CM병원 내과)이 새책 <늙음 오디세이아>를 펴냈다.
늙음은 아무리 잘 준비해도 낯설다. 누구에게나 '처음'인 까닭이다. 처음이다보니 시듦도 남음도 처음이어서 서툴 수밖에 없다.
또 늙음은 꺾임과 즐거움에서 얻는 성숙이다. 나이들어 쇠락해지는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면 꺾여진 노쇠이고, 쇠해졌어도 남아 있는 쓸모들을 빠뜨리지 않고 챙기면 즐거움이 된다. 바라보는 방향만 다를 뿐 한 모습이다.
늙음을 마주하는 저자의 독백이다.
"늙음을 바라보는 시각은 매우 다양하다. 전체적으로도 그렇고 개인적으로도 각자의 인생 궤적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어쩌면 늙음을 보편적으로 정의하는 것, 심지어 정의하려는 의도 자체가 딱한 일일지도 모른다. 늙음은 연구의 대상이라기보다 오히려 서술로 담아내야 본디 모습이 제대로 드러나는 서사의 소재라는 생각이다. 연구 논문이 아닌 오디세이아 같은 서사시로 표현하는 게 늙음의 실체에 보다 가까이 다가서는 방식이라 여긴다." (본문 <늙음의 시학>에서 )
저자는 늙음의 서사 64편을 책 속으로 옮겼다. 한 의료계 전문지에 이태 동안 연재한 글이 중심이다.
'늙음이 넌지시 내민 손을 꽉 잡고 늙어가는' 그는 '늙음을 영절스레 서사할 재간 없음'을 탓하면서도, 에둘러 지금 가장 잘 할 수 있는 늙는 길에 들어서 있다.
책은 저가가 갈무리한 늙음에 대한 지혜로 매조지한다.
"세월이 억지로 거꾸로 갈 수 있나요. 청춘에서 늙음으로 이름이 바뀐 바로 그 샘을 찾아 열심히 늙어가세요."
시인이며 수필가로 문재(文才)를 드러내고 있는 저자는 한국의사시인회 초대회장·문학예술동인회장·박달회장·문학청준작가회의 초대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함춘문예회장·쉼표문학 고문·한국의사수필가협회 감사·의료예술연구회장·의학과문학접경연구소장 등을 맡고 있다. 쓴 책으로는 <노화수정 클리닉> <당뇨병 교육> <당뇨병의 역사> <당뇨병 알면 병이 아니다> 등과 공동시집 <가라앉지 못한 말들> 단독시집 <두근거리는 지금>을 상재했다(☎ 02-790-11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