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덕선 의협 의료정책연구소장 "새해 목표, 의사면허기구법 제정·의약분업 투쟁 20주년 정리"
"의협 짐 너무 많아 이익-공익 역할 분리해야...전공의 교육과 의사 양성 지원이 공공성 강화"
안덕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은 처음 최대집 의협 회장 당선인에게 연구소장직을 제안받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최대집 의협 회장 당선인과 전혀 안면이 없었기 때문. 결국엔 "본인이 잘 모르는 전문적 분야를 맡아 달라"는 진솔한 부탁과 평소 존경하던 원로 두 분의 권유로, 연구소장직을 맡게 됐다고 했다.
"의협이 맡은 짐이 너무도 많다"고 지적한 그는 이익단체와 공익단체의 역할을 명확히 하고, 선진국 처럼 이익단체와 공익단체의 역할을 분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의료정책연구소의 2020년 새해 목표로는 의사면허기구 관련 법안 발의와 20주년을 맞은 '의약분업 투쟁' 정리를 꼽았다(의약분업 투쟁을 계기로 의료계는 의권투쟁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으로 손꼽힌 의료정책 개발을 위한 의료정책연구소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2002년 논의를 시작, 2006년 2월 15일 정식 출범했다).
안덕선 연구소장은 "의사들의 파업을 '부도덕한 것'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민주정권에서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전문의들의 높은 기술에 반해, 전공의 교육 수준은 상당히 떨어진다"는 평가와 함께 개선 방안도 제시했다.
의협 제40대 집행부 의료정책소장으로 부임한 지 1년 6개월이 지났다. 임기의 절반이 지난 2019년 12월 마지막 주에 의료전문 기자단이 안덕선 의협 연구소장을 만나 지난 소회를 들어봤다.
<일문일답>
2019년 마지막 인터뷰이가 됐다. 연구소장 임기가 절반 정도 지났다.
2018년 3월 최대집 의협 회장 당선인이 의협 정책연구소장 자리를 제안했을 때, 깜짝 놀랐다. 일면식도 없었기 때문이다. "본인이 잘 모르는 전문적 영역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고민을 많이 했고, 가장 존경하는 원로 두 분께 상의했다. 두 분 모두 고민할 필요도 없이 "하라"고 하더라(웃음).
연구소장을 맡기 전, 의학교육평가원과 의과대학 등을 통해 정책과제를 많이 수행했다. 하지만, 전공의 교육이나 면허기구, 보수교육 등 다른 기관에서 지원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이 부분은 의료정책연구소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의료정책연구소의 역할과 기능에 감사한 마음이 있다. 평소 관심이 있는 분야들이다. 개인적으로는 의학교육과 의료정책 연구 분야를 찬찬히 들여다 볼 기회가 생겼다는 데 의의가 있다.
소회가 궁금하다.
고작 절반 지났다. 절반을 가지고 "보람 있다" 이런 소감을 말하긴 이른 것 같다. 중요한 이슈가 계속 떠오르고 있고, 지금도 추진 중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다.
처음 연구소장직을 맡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계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의협 의료정책연구소 규모의 소장이라면, 스스로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연구소장이 비상근으로 출근하는 연구소는 좀 아닌 것 같다고 느꼈다. 그래서 초반엔 나름대로 기획도 세워보고, 어떤 일을 하겠다는 목표도 잡아봤다.
의료정책연구소는 의사들의 협조를 받기 좋은 구조란 장점이 있다. 연구 결과의 정확도 역시 높은 편이다.
하지만, 현재 연구원이 12명 정도다. 규모에서 아쉬움이 있다. 이순신 장군의 13척 배에 비유할 수도 있겠다(웃음). 지원이 더 필요한 부분이다.
가장 주안점을 두고 있는 분야가 있다면?
의협은 법정단체로, 면허관리, 보수관리, 의료감정 등 공공의 일을 많이 하고 있다. 다른 나라로 따지면 수많은 의사 전문가 단체를 하나로 합해 놓은 성격이다.
이익단체는 정부와 임금을 협상하고, 정부 정책에 대한 찬반을 논해야 한다. 여기에 소비자가 피해를 볼 수 있는 정책을 먼저 반대하기도 한다. 의협이 맡아야 할 짐이 너무도 많다. 우리나라가 기능상 분류가 덜 돼 있다는 거다. 단체의 특성을 명확히 하고, 좀 더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2019년에는 계획대로 전문성 제고를 위해 연구하고, 국회에서 토론을 했다. 입법 발의까지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 박자 먼저 나가보자는 의지로 법안을 만들어 전달했다. 의협 대외협력팀과 집행부에서도 함께 노력하고 있다. 20대 국회서는 힘들겠지만 새해에 또 다시 시작할 생각이다.
의협의 기능을 분화해야 한다는 건가?
시간이 지나면 기능의 분화가 점차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의료감정원도 설립됐다. 단체의 정체성을 명확히 하고, 모양새도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나아가, 의료정책 구조에 대한 변화도 필요하다. 의료 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정책을 세우고, 논의하는 구조는 문제가 있다. 공무원이 앉아서 인공지능을 도입한다거나 원격의료 등을 어떻게 할 수 있단 건가? 해외의 경우, 이러한 일들을 포함해 의사 구속에 대해서도 면허기구에서 판단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환자가 수술을 결정하려면 3∼5명의 의사를 만나야 한다는 게 정설이 됐다. 한 사람만 제대로 만나, 몇 시간을 이야기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싸구려 진료를 양산하는 의료 시스템, 의사를 범죄자로 모는 제도 등을 모두 개선해야 한다.
의협 종합학술대회에서 해외에선 의료사고로 의사를 구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슈가 됐다.
검찰이 의사를 다루고, 형사 구속하는 것을 보면 너무 어처구니가 없다. 끔찍한 일이다. 독일의 법 전문가는 "너희(대한민국)는 왜 의사 처벌하는 걸 그렇게 좋아하느냐"고 하더라. 이런 판결이 계속된다면, 방어 진료와 부실 의료만 양산하게 된다.
배상을 하라며 사람을 구속하는 일도 문제다. 공권력으로 사람을 인질로 삼는 일이다. 배상제도를 제대로 구축해야 한다. 현재의 배상제도에 플러스알파를 하려는 시도가 더 효과적일 것이다.
올해 의협 의료연구소에서 해외 의사 파업 사례들을 발표했는데…
우리나라에서 의사 파업을 굉장히 부도덕한 일처럼 매도하는 것에 놀랐다. 다른 나라에서는 이미 보편화한 일상적인 일이다. 의료인이지만, 노동자적 속성을 갖고 있다. 외국에선 (정부와 국민 누구나)이런 노동자로서의 속성을 인정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이러한 국제 사정에 둔감하단 걸 느꼈다. 상당히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많다. 한 달 정도에 걸쳐 해외 200개의 사례를 소개했다. 현재는 더 보완해 300개 사례를 모았다. 최근에 프랑스 의사들이 파업을 선언했다. 의사 파업은 굉장히 흔한 일이란 거다.
필수 의료를 제공하고, 국민에게 사전 통지를 한다면 의사 파업은 큰 문제가 없다. 해외 사례에서도 확인됐다. 민주정권에서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는 부분이다.
의사단체 리더십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있는지?
파업을 이끄는 단체는 분명한 이익단체다. 영국의사회의 사례를 보면, 회장 임기가 1년이지만 차기 회장을 수석부회장으로 근무하도록 한다. 회장업무를 수행하기에 앞서 이사회 안에서 3년을 일한다. 회의 주재원은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따로 뽑는다. 이익과 신분보장을 하기에 최적화 돼 있다. 굉장한 전문성을 요하고, 투명도도 높은 편이다.
의협은 3년 임기다. 3년 단위로 완전히 싹 바뀐다. 이익단체의 리더십을 위해 구조변경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현재는 스스로의 힘을 약하게 하는 구조다. 강한 구조가 되기 위해선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논의해야 한다.
1년에 한 번 대의원회에서 만나는 현재 상황은 만성적인 의사소통 부족이라 볼 수 있다. 해외사례에 비해 1년 동안 들어가는 시간, 노력 자체에 엄청난 차이가 난다.
2020년 특별히 계획하고 있는 일은?
2020년은 의약분업 투쟁 20주년이다. 역사 관련 보고서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외국의 경우, 파업 이후 효과에 대한 다양한 논문이나 보고서들이 많이 나온다. 한국 의료계의 경우, 임상 관련 논문은 많이 생산해도 사회적 현상에 대한 연구는 취약한 부분이 있다.
(의약분업 투쟁 관련)사료가 별로 없어 보인다. 하지만, 아직 당시 의약분업 투쟁에 참여한 분들이 생존해 있다. 역사적인 정리와 의미도 함께 정리하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되짚어 봐야 한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나라 전문의들의 세부 기술 수준이 높은 것을 두고, 의학교육 수준이 높다고 생각한다. 결코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 의학교육은)지배구조, 식민지 이데올로기에서 성장을 멈췄다. 사회 수요를 반영한 교육이 필요하다. 현재 전공의 교육만 받아선 밖에서 먹고 살아갈 수가 없다.
정부는 이상한 병원을 만들며 공공성 강화를 할 게 아니라, 전공의 교육에 대한, 의사 양성에 대한 지원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국가의 지원이 높아지면, 공공성은 자연스럽게 얘기될 수 있다.
우리(의사)가 부실한 교육을 받았고, 부실한 교육을 하고 있는 것은 결국 우리(의사)의 책임이다. 폭넓게 아는 지식인 교육을 많이 해봐야 한다. 우리나라 의사 집단이 다른 국가가 추구하고, 지지하는 가치를 함께 지켜가자고 말하고 싶다. 갈 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