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는 지연된다
오늘도 항공기는 지연된다
지상에 자욱하게 안개 깔리면
미명未明에 눈을 뜬 스튜어디스는 안다
도저히 안개의 중심을 헤아릴 수 없음을
누군가 간절히 기다리고 있을
시간은 초조함이다
사람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꿈을 실은 화물들이
길게 넘어진 활주로를 빙빙 돌며 하품하고
누군가는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를 연발한다
살아간다는 것은
기실 얼마나 오랫동안 안개 속을 헤맴이던가
지연, 지연, 지연을 반복하며
생의 바퀴가 마구 헛돌고 헛돌아도
접점을 향하여 달려가는 우리 사랑의
비행은 멈추지 말자
때론 흐르는 강물같이 긴 슬픔을
그토록 아찔하였던 이륙의 순간을
사시나무 떨리던 매서운 하강도
아름다운 한 폭의 비행이었음을
기억하라, 사랑은
무너질 듯 무너질 듯 다시 서는 길
끝내는 외로운 길이었던 것을,
▶ 인제대 명예교수(흉부외과)/온천 사랑의요양병원장/<미네르바>(2006) 등단/시집 <때론 너무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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