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전신마취·지방흡입술 부작용·합병증 위험성 제대로 설명 안해"
'의료행위' 예상외 결과 발생·피할 수 없는 위험한 행위 고려...책임 제한
20대 환자가 지방흡입 수술을 받다가 사지마비와 언어장애 등의 뇌 손상을 입은 사건에서 법원이 병원 측에 40%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등법원은 원고 A씨와 그의 부모가 B성형외과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5731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일부승소 판결했다.
원고 A씨는 2013년 B성형외과(피고 측)에서 팔뚝 부위 등에 지방흡입 수술을 받다가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이후 어렵게 의식을 회복했지만, 사지마비·언어장애·지적장애 등의 후유증이 발생했다.
이에 원고 A씨와 부모는 병원 측이 마취 및 수술 전에 혈액검사를 시행하지 않았고, 전신마취의 필요성과 위험성, 그리고 지방흡입 수술의 위험성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았다며 B성형외과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원고 측의 설명의무 위반 주장에 대해 피고 측은 "지방흡입술 전 환자에게 시행되는 혈액검사는 환자의 체질적인 소인을 확인하는 검사가 아니라 수술 후 환자의 상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출혈 경향에 대한 검사인데, 원고 A씨의 무산소성 뇌 손상의 원인은 출혈과 전혀 무관한 지방색전증으로 추정된다"며 "마취 및 수술 전 혈액검사를 시행하지 않아 장애를 발생시킨 과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또 "수술 직후 발생한 응급상황에 대한 조처를 하느라 수술 기록지를 늦게 작성한 것이고, 수술실 CCTV 영상 역시 병원을 이전하면서 보안업체를 변경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폐기된 것이지 의도적으로 증거를 인멸한 것은 아니며, 수술 당시 환자 감시 모니터를 통해 환자의 활력징후 등을 지속해서 감시했고 정상적인 소견이 유지돼 활력 지수 측정을 추가로 기재하지 않았고, 마취 시간을 해 2시간 30분 정도의 수술에서 5회의 활력지수 측정은 적은 획수가 아니어서 수술 과정에서 A씨의 경과를 자세히 관찰하면서 수술을 신중히 시행해야 할 주의의무를 위반하지도 않았다"고 항변했다.
이와 함께 "원고 A씨에 대한 진료기록부에 의하면, 이 사건 수술 전에 병원 의료진이 출혈, 감염, 지방색전증 등의 발생 가능성에 관해 충분히 설명한 것이 인정되므로 설명의무를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서울고법 재판부는 의사의 설명의무 위반은 인정하고, 의사에게 폭넓은 재량이 부여돼 있는 것을 고려했다.
서울고법 재판부는 "지방흡입술의 경우 출혈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준비사항으로 출혈 경향에 대한 조사 및 검사로 혈액검사인 혈액응고검사, 전혈구 계산을 시행해야 한다"며 피고 측이 주의 의무를 다했다고 보지 않았다. 마취 및 수술 전 혈액검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의료상 과실이 있다고 본 것.
그러면서 "수술실 CCTV 영상이 이 사건에서 유력한 증거자료가 됨에도 피고들이 아무런 의도 없이 영상이 폐기되는 것을 방치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고, 특수 상황에서는 수십 초 내에 산소포화도가 급격히 감소할 수 있음에도 활력 지수를 5회 측정한 것은 충분하다고 볼 수 없다"며 피고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밖에 "원고 A씨의 무산소성 뇌 손상이 피고들의 응급처치와 무관하게 지방색전증에 의해 불가피하게 발생한 것이므로, 피고들이 응급처치 지연의 과실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나 A씨의 무산소성 뇌 손상이 지방색전증에 의해 발생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서울고법 재판부는 "의사의 설명의무는 의료행위에 따르는 후유증이나 부작용 등의 위험 발생 가능성이 희소하다는 사정만으로 면제될 수 없고, 후유증이나 부작용이 해당 치료행위에 전형적으로 발생하는 위험이거나 회복할 수 없는 중대한 경우에는 그 발생 가능성의 희소성에도 설명의 대상이 된다"라고 봤다.
이와 함께 "A씨에 대한 진료기록부에 '출혈, 감염 발생 가능', '지방전색증 등의 호흡곤란 드물지만, 발생 가능'이라고 기재돼 있지만, 이런 기재만으로는 병원 측이 A씨에게 전신마취와 지방흡입술의 부작용이나 합병증 등에 대해 위험성을 충분히 고려해 해당 의료행위를 받을지 여부를 선택할 수 있을 정도로 제대로 설명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다만 ▲의료행위는 의사가 전문적 지식과 숙련된 처치행위를 통해 환자의 진료 및 수술 등을 하는 것으로 환자의 증상에 대한 판단은 풍부한 임상경험 및 고도의 의학전문지식이 바탕이 돼 내려지므로 의사에게 폭넓은 재량이 부여된 점 ▲의료행위는 본질에서 신체 침해를 수반하고, 모든 기술을 다 해 진료를 하더라도 예상외의 결과가 생기는 것을 피할 수 없는 고도의 위험한 행위인 점 ▲원고의 무산소성 뇌손상에는 체질적인 소인이 일부라도 개입된 것으로 볼 여지가 없지 않은 점 ▲원고의 무산소성 뇌 손상이 피고들에게 통제할 수 없는 지방색전증으로 인해 발생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점 등을 고려해 손해배상책임을 40%로 제한했다.
이번 사건과 관련 법조계 한 관계자는 "의사의 설명의무는 후유증이나 부작용 발생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사정으로는 면제되지 않고, 중대한 위험이 있는 경우 희소성과 별개로 반드시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 재판부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진료기록부에 여러 가능성이 기재된 흔적이 있지만, 이런 기재가 있다는 이유만으로는 병원 측이 원고에게 설명의무를 충실히 했다고 인정하지 않은 판결"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