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부당청구 사기죄 무혐의' 판결의 의미

[기획취재]'부당청구 사기죄 무혐의' 판결의 의미

  • 김병덕기자 kduck@kma.org
  • 승인 2003.10.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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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의 '진료에 대한 의학적 판단' 인정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지난 9월 국정감사에서 유시민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01년부터 2003년 9월까지 부당청구를 했다는 이유로 실사(현지조사)를 받은 기관은 1,948곳 이었으며, 이 중 의원은 1,217개 곳으로 확인됐다.

연도별 현황을 보면 2001년에는 전체 요양기관 6만2,600개 기관 중 실사를 받은 기관은 813곳(전체 의원 2만1,342개 중 의원 451곳), 이 중 부당사실이 확인된 기관은 640곳(의원 369곳)이었으며, 사법기관에 형사고발 조치된 건수는 84건 이었다.

2002년의 경우에는 전체 요양기관 6만5,467개 기관 중 실사를 받은 기관은 683곳(전체 의원 2만2,760개 중 의원 454곳), 이 중 부당사실이 확인된 기관은 503곳(344곳) 이었으며, 사법기관에 형사고발 조치된 건수는 23건이었다.

2003년의 경우(9월 현재)는 전체 요양기관 6만7,361개 기관 중 실사를 받은 기관은 452곳(312곳), 이 중 부당사실이 확인된 기관은 324곳(219곳) 이었으며, 사법기관에 형사고발 조치된 건수는 28건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2001년도의 경우만 보더라도 전체 의원 2만1,342개 중 부당사실이 확인된 기관은 451곳으로 2.11%밖에 되지 않아 실제로 다른 언론매체에 발표된 내용과는 많은 차이를 보였다.

한편, 복지부 및 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이번 L피부과의원 이외에도 무혐의 처분을 받은 기관으로 M약국이 한 곳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번 전북 익산의 L피부과의원의 판결이 가지는 의미는 의사 자신이 부당청구를 했다는 자인서를 작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는 사기죄와는 상관이 없다는 것을 의미해 향후 복지부 실사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일부 법조계 인사들도 부당청구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의사를 사기죄로 몰아갈 수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어 이에 대한 복지부의 대응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복지부는 그동안 실사를 진행해 오면서 부당청구를 한 기관에 대해 자인서를 받았으며, 자인서를 받은 기관 중 부당청구금액이 많거나 고의성이 의심되는 기관을 중심으로 형사고발을 했기 때문에 상당한 타격이 아닐 수 없다.

국민건강보험의 부당청구라 함은 요양기관이 사위 기타 부당한 방법에 의해 국민건강보험법상의 보험급여비용을 가입자, 피부양자 또는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청구하는 것을 말한다. 그 원인에는 고의에 기한 것도 있겠지만 착오나 과실을 동반한 경우도 포함된다.

한편, 허위청구의 법적인 의미는 널리 거래관계에서 지켜야 할 신의칙에 반하는 행위로서 사람으로 하여금 착오를 일으키게 하는 기망행위를 수단으로 사실에 반하는 보험급여비용의 청구라고 정의 내릴 수 있다.

부당청구의 유형에는 허위청구, 협진체계를 이용한 부당청구, DRG 적용 불이행 청구, 급여기준의 일탈 청구(부적정 진료 청구, 비급여대상 치석제거술을 급여로 청구), 비급여 또는 급여대상을 본인부담 시킨 후 보험으로 재청구, 집중치료실 입원료 부적정 청구, 의료법 미이행 청구(진료기록부 미작성, 무면허의료행위로 인한 청구) 등이 있다.

부당청구의 경우에는 국민건강보험법상 형벌에 의한 처벌은 규정되어 있지 않으며, 고의에 의한 허위청구의 경우에는 행정적인 처벌은 물론 형법상 사기죄로 처벌될 수도 있다.

형법 제347조상의 사기죄는 고의로 타인을 기망해 착오에 빠뜨리고 그 처분행위를 유발해 재물을 교부받거나 재산상 이익을 얻음으로써 성립하는 것으로 기망, 착오, 재산적 처분행위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

전현희 변호사(메디컬로법률사무소)에 따르면 의사가 독자적으로 혹은 간호사나 대행청구회사와 공모해 실제로 진료하지 않은 내역에 대해 허위로 보험청구를 한 경우는 사기죄(고의)로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의사가 진료행위를 함에 있어 의학적 판단아래 적정진료라고 판단해 진료한 결과를 청구하는 것은 비록 국민건강보험법상 과잉청구나 부당청구로 인정된다고 할지라도 형법상의 고의에 의한 기망행위로는 볼 수 없다.

즉, 의학적 판단에 의해 환자에게 치료한 행위가 국민건강보험급여에 규정되어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지출된 의료비용이 발생해 청구를 한 경우(심사기준에 저촉되는 치료나 치료재료 및 약제에 대해 청구를 한 경우) 보험금을 편취할 의사나 기망의 의사가 있었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 변호사는 “이러한 범위의 치료행위에 대해 허위 및 부당청구로 분류해 사기죄로 형사고발하는 것은 의사의 의료에 대한 독자적인 자율판단의 범위를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으로써 삼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전 변호사는 “의료기관의 보험청구시 일차적으로 심사평가원에서 평가의 과정을 거치고 심사평가원이 적정하다고 판단한 금액을 지급하므로, 만약 심사평가원에서 적정성 판단을 소홀히 해 결과적으로 의료기관에서 과잉청구한 보험금이 그대로 지급된다고 하더라도 이는 의료기관의 기망에 의한 지급이 아니라 심사평가원의 업무소홀로 인한 지급이므로 이론상 사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복지부와 심사평가원에 따르면 부당청구를 한 것에 대한 사실 확인을 위해서는 무조건 자인서를 작성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자인서를 의무적으로 써야 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복지부와 심사평가원 간에도 약간의 이견이 있다.

우선 복지부 보험관리과 관계자는 “자인서를 써야 할 법적 근거는 없다”고 시인하면서도 “실사를 나간 다음 부당혐의에 대한 사실 확인을 위해서는 자인서를 꼭 써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해당 의사 본인이 자인서 쓰기를 거부해도 상관은 없다”며, 강제성은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는 반대로 심사평가원 관계자는 “자인서를 쓰지 않는 것은 실사를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에 꼭 써야 한다”며, “자인서를 써주지 않으면 고발조치 된다고 의사들에게 설명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이 관계자는 “실사 시 자료제출을 거부할 경우에도 고발조치 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으며, 자인서를 작성해 준 뒤에는 어느 정도의 행정처분을 받는지에 대해서도 자세한 설명을 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복지부와 심사평가원의 자인서에 대한 해석이 다른 것도 문제이지만 실사를 주관하는 복지부에서조차 자인서를 써야 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인정한 부분을 심사평가원은 왜 다르게 해석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게다가 자인서 작성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빌미로 해당 의사들에게 `형사고발 될 수 있다'고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분명히 `권력을 이용한 협박'이 아닐 수 없다.

자인서에 대한 복지부의 해석이 옳은 것이라면 복지부는 물론 심사평가원은 실사 과정에서 해당 요양기관들 의사들에게 권력을 악용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 이유는 부당청구기관으로 지목된 요양기관들은 실사 과정에서 부당한 취급을 받더라도 또 다른 피해를 우려해 항변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실사팀이 요구하는 대로 자인서에 서명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에 대해 복지부 및 심사평가원은 “서로 합의 하에 자인서를 작성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고 해명을 하고 있으나, 실제로 실사를 당하는 입장에서는 실사팀으로부터 위협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전북 익산의 L피부과의원의 경우도 실사팀이 “부당청구사실을 시인하고 과징금만 내면 더 이상 문제는 없을 것”이라며, K원장에게 잘못을 시인하도록 종용한 것으로 알려져 사태의 심각성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이에 대해 심사평가원 관계자는 “당시 K원장과의 대화 중 고압적인 자세는 없었으며, 서로 좋게좋게 자인서를 작성했다”며, K원장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우선 부당청구기관으로 지목된 기관은 실사팀이 방문하였을 경우, 먼저 부당청구를 했다고 인정하지 않다가, 구체적인 자료가 제시되면 대부분 인정을 하거나 수긍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해당 요양기관에서 이를 인정하면, 복지부 및 심사평가원 직원으로 구성된 실사팀은 부당청구사실을 시인하고 과징금만 내면 더 이상 문제는 없을 것이라며 요양기관에서 잘못을 시인하도록 종용하거나 자인서를 쓰도록 유도한다.

이 경우 대부분의 요양기관은 조사기간이 길어지고, 진료에 지장을 받을 것을 두려워하거나 귀찮아해 자인서를 쓰게 된다. 또한 부당청구 한 금액만 반환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믿고 법정 싸움 등으로 이어지는 복잡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실사팀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실사팀이 행여나 행정처분에 머무르지 않고 복지부에 의해 부당청구를 이유로 형사고발 될 경우 문제는 심각해진다.

건강보험 부당청구로 사기죄가 적용돼 유죄판결을 받을 경우 현행법상 그 정도에 따라 해당 요양기관 의사는 면허취소, 혹은 의사면허정지, 의료업업무정지의 행정처분 및 부당청구액의 5배에 해당하는 과징금 및 부당이득반환 및 요양기관업무정지라는 가혹한 처벌을 받게 된다.

이에 대해 요양기관은 형사고발을 피할 수 있다는 기대에 자인서를 쓰고 과징금만 물면 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에 대한 계획적인 준비가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의협 차원에서 이러한 상황에 대해 구체적인 대응방법이나, 행정처분 및 형사고발에 대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는 실정이다.

K원장은 “복지부가 주장하는 것처럼 여드름 환자의 경우 일반적으로 그 증상이 심한 경우에는 로아큐탄이라는 약을 처방하고, 경한 경우에는 유니독시라는 약을 처방하지만, 여드름 증상이 경한가 중한가를 결정함에 있어서는 병변의 퍼진 정도 이외에도 흉의 존재여부, 정신적인 문제, 과거 치료에 대한 반응 및 재발 경험, 환자의 상태나 특이체질 여부 등을 고려해 판단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K원장은 “유니독시라는 약을 처방했다고 해서 증상이 경한 여드름이라고 단정할 수 없고, 따라서 위 여드름 증상이 비보험 급여 상병이라고 할 수 없다”며 편취범의를 극구 부인했다.

피의자인 K원장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검찰은 “복지부도 피의자가 통상 경한 여드름 환자에 사용하는 유니독시를 처방했음에도 보험급여를 청구해 일단 비보험급여 상병임에도 불구하고 부당청구 했다는 판단 하에 고발한 것일 뿐 달리 위 유니독시라는 약이 처방된 환자의 여드름 증상이 비보험급여 상병이라고 볼 다른 자료는 없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결국 L피부과의원 사건과 관련 검찰은 “보험급여대상이 될 수 있는 여드름 상태의 경중은 의사가 환자의 상태나 특이체질 등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 판단할 수 있는 것이지, 어떤 약이 처방되었는가에 따라 이를 일률적으로 결정할 수 없으므로 환자의 증상에 대한 판단의 적정성 여부는 별론으로 하고, 피의자가 건강보험공단을 속여 금원을 편취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혐의를 인정할 수 없다고 결정했다.

그동안 복지부에서 부당청구 기관에 대한 기획실사를 한 결과 많은 요양기관이 사기죄로 고발되었는데, 이번 L피부과의원의 경우는 자인서를 작성해 부당청구 혐의를 인정했음에도 이는 고의성이 없으므로 사기죄 적용이 되지 않는다는 첫 번째 사례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또한 부당청구를 하고, 부당청구금액이 많다는 이유로 더 이상 복지부가 사기죄로 검찰에 고발을 하기 어렵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환자를 위해 최선의 진료를 하는 의사의 보험급여비 청구가 부당하다고 해도, 이는 고의성이 없는 것은 물론 의사의 의학적 판단이 사기죄로 적용될 수 없다는 것이므로 향후 비슷한 사례의 사건에 커다란 영향을 줄 것임에 틀림없다.

게다가 이번 사건은 1심에서 징역 8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현재 항소중인 제주도 김 모 원장에 대한 사기사건 재판에도 유리한 판단자료로 적용될 수 있어 결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의협은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의협 김선욱 법제이사는 “부당청구를 했다고 쉬쉬할 것이 아니라 사기죄 적용 등에 대해서는 회원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중요하다”며, 부당한 결정에 맞설 것을 주문했다.
전현희 변호사도 “모든 문제의 열쇠는 의사들이 쥐고 있다”며, “부당한 처분에 자신의 권리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전 변호사는 “의협은 회원들의 다양한 사례를 수집해 집단으로 복지부에 부당성을 주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며, 협회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결국, 부당청구에 대한 사기죄 적용이 부당하다는 첫 사례가 나왔고, 바로 현실에서 이러한 일들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면, 집행부는 보다 적극적으로 복지부와 심사평가원에 부당성을 주장해야 하고, 법적으로 지원해줄 수 있는 모든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의협 스스로도 이번 사건을 자체 정화의 시간을 갖는 계기로 활용해 의사들의 윤리적인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강조할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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