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이 대지와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가?', 고민의 결과
사람 이해하고 고민하며 배려…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내는 것
병원건축이 많은 사전지식을 가져야 하고 해결해야 하는 과제의 수가 많은 상호 복합적이라는 점에서 특수한 분야의 설계라고도 한다. 하지만 공간과 인간을 중심에 두고 건축을 전개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병원건축이 타 일반건축과의 차이는 없다.
다만 전문적이고 특정한 부분의 지식이 뒷받침돼야 하는 것이 다르다 할 수 있으나 부제가 주제를 뛰어넘을 수 없듯이 건축 본연의 가치는 존중받고 구현돼야 할 것이다. 병원건축을 이해하기 위해 보편적인 건축의 과정을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좋은 건축
좋은 건축이란 무엇일까? 필자를 포함한 많은 건축가들이 가지고 있는 결코 쉽지 않는 의문사항이다.
아주 우연치 않게 이탈리아 베로나에 이틀 정도 머무를 기회가 생겼는데 도심 중앙광장의 아레나에서 공연된 오페라 나부코를 관람하면서 그 답에 접근할 수 있는 열쇠를 발견했다. 지금도 'Va, pensiero'이 연주될 때 마다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나서 가슴이 뛰곤 하는데, 많은 오페라 중에서 그 것이 이렇게 특별할 수 있는 것은 그 작품의 무대로 사용된 1세기에 지어진 로마시대의 건축물과 분위기 때문이었다.
그곳은 정밀하게 소리를 제어하는 실내 오페라 전용 극장보다 더 좋은 소리를 만들어 낼 수 없고 안락한 의자를 제공하지 않는 불편함에도 여름 밤하늘의 별빛과 도시의 역사 속에 빛나는 이 건축물은 관객에게 오페라의 가장 좋은 배경이었다.
이러한 경험은 건축이 가지는 보이지 않는 힘과 도시, 역사, 건축의 미묘한 관계를 인식하게 해준 커다란 사건으로 20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강한 기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좋은 건축이란 무엇일까?"
건축, 패션
건축을 하면서 타 분야와의 공통점을 찾아본다는 것은 상당히 흥미로운 일이다. 특히 패션은 사람을 그 속에 담고 보호한다는 본연적인 임무를 가지고 있어 종종 건축과 비교되곤 한다.
사람들이 옷을 입는 목적은 외부환경의 혹독함을 견디고자 하는 목적이 우선적일 것이며 대단히 사적인 욕구의 표현수단일 수도 있고 사회적 지위를 표현하는 한 방편일 수도 있다. 주목할 점은 패션이 내부의 자아를 표현하는 수단으로서 외부의 타자와 끊임없이 대화한다는 점이다.
패션이 재료의 질감이나 색 그리고 형상을 달리 하면서 외부와 다양하게 소통한다는 점에서 건축의 외피와 비슷하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건축은 어느 장소에 고정되어야 하며 조금 더 많은 시간을 사람들과 같이한다는 태생적인 한계와 패션 보다는 사적인 영역뿐만 아니라 좀 더 많은 부분에 있어서 공공의 영역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상당히 다른 면도 있어 보인다. 하지만 패션의 적극적인 내외부간 끊임없는 관계 맺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건축, 도시
건축물은 사람들의 욕구를 표현하는 장치이며 수단이기도 하다. 단순한 요구로서는 건축물이 완성되기 힘들고 그것을 넘어선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힘을 가진 욕구로 분출될 때 건축물로서 구현된다.
사람들의 욕구는 시대에 따라 변하는데 이를 반영하여 모으고 합해서 주로 유행한 것을 정리한 것이 거창하게 말하면 양식이니 스타일이다.
도시가 이러한 건축의 시간적인 퇴적물이라 가정한다면 도시를 걷고 느낀다는 것은 이면에 숨겨진 건축물이 건축될 당시의 사람들의 시간과 이야기를 발굴하는 것이라 할 수 있으며 고고학자가 유적을 발굴하는 행위와 비슷하다 할 것이다.
요즘의 서울의 거리를 보면 재개발이나 재건축을 위해 도시의 한 부분을 들어내 개발되지 않은 쪽의 잘려나가 면이 보여 지곤 하는데 여기서 우린 도시 유적의 단면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속에는 많은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 써왔던 삶의 이야기가 보여질듯하다.
대지, 프로그램 그리고 다른 것과의 관계
건축물을 설계할 때 주어지는 조건은 프로젝트마다 각기 달라진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든지 건축물이 지어질 땅과 그 안을 채우는 프로그램은 필수적이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 그리고 어떠한 경우에는 해체하기도 하면서 설계는 시작된다.
대지는 상당한 힘을 가지고 있어 끝까지 프로젝트를 지배하곤 한다. 이때 대지의 의미를 지형·향·조망 등의 자연요소에 한하지 않고 도시, 주변건물, 지역사회, 땅의 역사, 지명의 유래 등의 유·무형의 것들과 그 땅의 사람들까지 버무려진 것으로 확장해본다. 의미가 확장된 대지에 건축물이 지어진다는 것은 그 형상이 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원래 대지와 새로운 대지 사이에 건축물은 어떠한 매개체가 될 것인가? 건축이 대지와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가가 좋은 건축여부를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프로그램은 때로는 너무 견고하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 많은 수정이 되곤 하는데 건축의 쓰임새를 결정하는 요소로 클라이언트가 맨 처음에 말하는 의지이기도 하다. 텍스트로 주어지는 프로그램을 해석하고 각 프로그램간의 밀접함을 파악해 구체화시키는 작업에 몰입한다.
어떠한 경우에는 이를 뒤집어 생각해보기도 하거나 프로그램을 해체해 다시 조립해보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 속에 프로그램을 공간으로 전환하고자 하지만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그려보지 않는다면 공허해지는 순간 한계에 마주친다.
이를 극복하고 건축하고자 하는 사람과 그것을 사용하고자 하는 사람, 사회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면서 이러한 관계를 조율하여 좋은 결과물을 찾아내는 것이 건축의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병원 건축하기 _ 사전준비
병원건축의 과정을 엿보고자 한다. 병원건축의 입문자들은 먼저 접하는 커다란 장애물이 있다. 바로 '말'이다. 건축물을 완성해가는 과정에서는 많은 사람들의 욕구와 의견이 모아진다.
특히 최종사용자인 의료진의 생각이 중요한데 이들이 말하는 단어는 입문단계의 건축가에게는 외계어나 다름없다. 공부를 통해서 극복해보고자 하지만 머리가 아는 것과 마음으로 이해하는 것은 다를 수밖에 없다. 관찰을 통해 필드에서 경험하는 단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환자와 의료인을 관찰한다. 평면과 단면에 그려지는 동선은 서로 교차하고 분리되어 공간으로 변환된다. 결국은 좋은 병원건축의 본질은 사람이며 사람을 이해하고 이러한 점을 어떻게 고민하고 배려하여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내는지가 가장 중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