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가 모든 것 결정해야 한다"는 생각 경계해야
'병원 건축' 바뀌는 제도·의료장비·치유 환경 등 고민
병원은 완공과 함께 바뀌기 시작하고 성장하는 건축물이다. 그것을 설계했을 때와는 다르게 더 좋은 방향이 있거나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이 바뀌거나 혹은 정책이나 처음 예상했던 수요의 변화 등 나름 이유를 가지고 처음과는 다르게 조정되고 덧대어진다.
그리고 24시간 쓰이는 병원건축물은 쉽게 낡고 고장이 나기 쉽다.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바꾸거나 고쳐서 써야할 때 이를 고려한 건축가의 대비책은 무엇인가? 또 다른 측면에서 처음부터 잘못된 의사결정에 의해 만들어져 소멸하고 재탄생의 과정을 거치는 공간에 대해 알아본다.
사용자 'Needs' 잘 담아내는 세심함 필요
다른 시작, 같은 결과
홍콩영화를 보면서 빽빽하고 복잡한 간판들로 둘러싸인 건축물 사이로 비행기가 지나가는 장면을 한번쯤은 봤을 것이다. 지금은 철거되고 없는 카이탁 공항 부근에 있던 구룡성채에서 볼 수 있었던 광경이다.
여러 이유에 의해 과거 홍콩정부의 행정권이 닿지 않는 이곳은 잠실야구장 보다 조금 작은 정도의 땅에 최대 5만명이나 살던 초고밀도 집적 건축물이자 도시였다. 설계도 없고 법과 구조를 무시하고 오로지 거주민의 요구와 노동력으로 쌓아올려진 주택·상점·학교·탁아소·불법의료시설·성매매업소·도박장·공장 등이 버무려진 빌딩의 숲이었다.
이와 비교되는 집합 건축물이 이탈리아의 캄피아 아파트이다. 나폴리에 건설된 돛의 형상을 한 이 야심찬 프로젝트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주거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여러 건축가들과 전문가들이 협업한 것이었다.
그러나 갑작스런 지진과 치안의 공백이 가져다 온 빈민의 유입으로 인해 70년대 공용주택 정책의 실패로 상징되었고, 범죄와 마약이 지배하는 주거지로 바뀌었다.
또 하나의 게토로 드라마의 배경이 되었고 일부는 철거되는 운명도 맞이했다. 하지만 구룡성채와는 다르게 촉망받는 건축가가 계획을 했으며 사회적인 규칙을 준수했음에도 비슷한 결과를 만들었다.
이것은 이상적인 사고를 맹신하고 건축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사람'의 의지를 간과한 결과이다.
본론으로 넘어와서 위와 유사하다면 유사한 과밀하고 여러 기능을 적층하는 형태인 병원건축이 위와 같은 실패작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사용자의 행태를 잘 관찰하고 담아내는 세심함이 필요하다.
이때 모든 것을 결정하고 테두리 안에 가두려 하지 말고 여지를 남겨 놓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근대건축의 커다란 도그마에 빠져 건축가가 모든 것을 결정해야 이상적인 공간을 만든다는 생각을 떨쳐버리긴 쉽지 않다. 이를 경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가변성
병원은 설계과정에 많은 조정과 변경이 이뤄진다. 여기까지는 건축가는 힘이 들지만 수정을 하기에 괜찮은 단계이다. 하지만 건설의 과정이 끝나고 사용중이 되는 상태에서도 이러한 변경은 지속적으로 이뤄진다.
만약 건축물이 스마트폰과 같이 요구에 따라 설치하고 필요 없으면 지워버리면 되는 앱을 설치할 수 있는 플랫폼 같다면 좋겠지만 가상이 아니고 물리적 중력에 지배당하는 위치여서 그럴 수 없는 한계점이 있다.
하지만 선배 건축가들은 구조와 사유에 대한 사고의 전환을 통해 많은 발전과 변화를 도모했는데 유니버셜 플랜도 이중의 하나이다. 고딕성당은 상부 하중을 벽을 통해서 지면에 전달하는 구조이다.
근대에 들어 구조에 대한 생각이 발전돼 슬래브라는 판을 보로 지탱하고 기둥을 통해 하중을 전달하는 방식을 가짐으로서 입면에 쉽게 큰 창문을 만들어내고 평면의 점인 기둥만 있는 자유로운 평면을 만들어냈다.
허물지 못하는 벽에서 해방된 유니버셜 플랜은 기둥의 모듈을 기능에 따라 레이아웃을 달리할 수 있는 적정한 거리를 가지고 배치해 전환 가능한 평면을 말한다. 이러한 사고는 파리 빈민가의 재생프로그램인 퐁피두 센터에서 한번 더 발전된다.
구조와 설비, 계단 및 에스컬레이터가 밖으로 노출되어 안쪽에 있어야 할 것을 모두 밖으로 보내 완벽한 공간의 자유를 준다. 병원건축이 변화와 무한대응하기 위해서는 구조와 설비를 이렇게 풀어낸 건축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곤 한다. 하지만 퐁피두센터가 지금 물가로 평당 5000만원이 넘는 건축비였으니 현실적이지 않다.
대안을 최근의 바이오실험시설에서 찾아본다. 사용자를 위한 공간은 균일한 실내 환경이 가지면서 단면적으로 숨겨진 천정 속 공간을 통해 모든 설비와 유지보수가 이뤄진다.
퐁피두센터에서 외부에 노출됐던 요소를 백설기 떡처럼 차곡차곡 쌓아 놓은 형태이다. 현재 건설되는 병원건축 천정공간에 대비 더 적극적이다.
이것이 이뤄진다면 신뢰성 있는 실내 환경은 물론이고 전등을 교체하거나 공조필터를 교체하기 위해 고객이나 의료진을 잠시 이동하는 일은 없어질 것이다.
사고의 발전
건축한지 상당기간이 지난 병원들은 당시의 기술과 경험이 부족해 현재에 부족함이 더 많이 느껴질 수 밖에 없다. 또한 최근 의료법 개정으로 통한 감염관리를 위한 표준병상과 병상간격 조정은 많은 숙제를 남겼다.
그렇다고 좁은 국토를 가진 우리나라 여건상 새롭게 여유 부지를 찾는 것도 어렵다. 많은 노후화된 병원들의 근심거리이기도 하다.
최근 건설현장에서는 많은 부분을 공장에서 제작해서 조립하는 방법을 사용해 품질의 신뢰성을 확보한다. 외벽 커튼월과 패널, 기둥과 보의 철근 조립 등이 그렇다.
자동차제작에서 모듈화해 조립을 단순화함으로써 품질과 혼류생산 같은 생산성을 높이는 것을 생각해보면 될 것이다. 리모델링 현장에 시간과 현장의 번잡함을 줄이는 프로세스로 확장해 본다.
병원건축에서 반복적인 요소로 사용되는 병실을 모듈화하고 공장에서 제작해 조립하는 방식도 가능할 것이다. 소음과 분진 등 운영상의 간섭을 최소화할 수 있고 공사기간이 상당기간 단축된다.
최근 일부 병실의 화장실은 이러한 방법으로 건설된다. 멀지 않은 시간 내에 많은 부분이 이러한 방식으로 현실화될 수 있을 것이다.
변화에 대응하는 병원건축
우리나라의 병원건축은 상황에 따라 바뀌는 제도, 업그레이드되는 의료장비, 단순 치료에 머물지 않는 치유환경의 요구 등 짧은 기간 동안 많이 변해왔다.
필자가 설계한 건축물을 몇 년 후 다시 찾았을 때 길을 잃어버릴 정도로 대다수의 병원들이 신축한 순간부터 증축과 리모델링을 거친다. 건축가는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는 답을 내놓기 위해 지금 순간도 고민을 거듭한다.
병원이 플랜트가 아니기 때문에 단순한 기능에 대응함이 아닌 본연의 의무를 다하면서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건축물이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