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시장 점유율 90%…내시경 국산화 절실
산·학·연·병 협력...정부·국회 정책적 지원해야
일본이 수출금지 품목에 내시경을 넣는다면 어떻게 될까. 일본 소화기내시경이 글로벌시장의 90%이상을 점유하는 현실속에서 국내 의료계에 미치는 파장은 가늠키 어렵다. 실제로 내시경 부품 가운데 광학 관련 기기가 군수물품으로 분류돼 있어 전혀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도 아니다.
그동안 국내에서도 소화기내시경 개발을 위한 여러 시도가 있었지만 끝내 결실을 맺지 못했다. 만시지탄이지만 이젠 소화기내시경 국산화를 위한 첫 발을 떼야 한다는 지적이 학계를 중심으로 모아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인재근 의원(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이 주최하고 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대한소화기내시경연구재단이 주관한 '의료기기 국산화 개발 활성화'(-소화기내시경을 중심으로-) 국회 정책토론회가 21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렸다.
소화기내시경 국산화를 위한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무엇일까. 토론회에서는 정부와 국회의 정책적 지원이 선결과제라는데 입을 모았다. 산·학·연·병 협력을 통해 소화기내시경 국산화를 위해 앞에서 끌고 정부와 국회가 정책적 지원을 통해 뒤를 받쳐야 한다는 판단이다. 어느 한 기업, 한 의료기관이 중심이 아니라 모든 연관 기관들이 총력을 기울여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새로운 의미의 운동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조주영 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대한소화기내시경연구재단 이사장(CHA의과학대 교수)은 '국산 소화기내시경 개발 필요성' 발제에서 내시경 국산화에 대한 열린 가능성과 당위성을 짚었다.
조 이사장은 "내시경의 꽃은 소화기내시경이다. 소화기내시경은 4차산업 기술이 집약된 분야로 이를 통해 연관 산업의 발전도 견인할 수 있다"며 "학회·기업·정부가 합심해 내시경 국산화에 함께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용 문제와 함께 세계 수준에 올라선 한국 소화기내시경 분야의 위상도 되새겼다.
조 이사장은 "기기 당 연간 600∼3000만원에 이르는 수리비 등으로 국가적으로 매년 100∼500억원 정도의 수선충당비용이 소요되고 있다. 게다가 평균 기기수명(5∼10년)에 따른 구매비용도 만만치 않다"며 "내시경 국산화를 통해 국가재정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 소화기내시경 분야는 학술논문 양과 질에서 세계 3∼5위권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지만 국산 내시경을 보유하지 못해 안타깝다"며 "학회·기업·정부가 소화기내시경 국산화를 위해 지혜를 모을 때"라고 덧붙였다.
'의료기기 국산화의 난제 및 정부지원 방안' 발제를 맡은 이범재 고려의대 교수는 ▲의료기기 기업 규모 유지를 위한 정책적 지원 ▲전략적 의료기기 선택 ▲산·학·연·병 협력 및 스타트기업·대기업 공조 등 글로벌 기업 육성 방안 마련 등을 의료기기 국산화 선결조건으로 꼽았다.
이 교수는 의료기기 국산화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몇가지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의료진·병원 입장에서는 제품의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으며, 품질·AS 만족도가 떨어지고, 최신·검증된 회사 제품과 익숙한 제품을 선호하며, 소비자-구매자 불일치 등의 이유로 국산 의료기기가 도입되기 힘들다"며 "또 개발자 입장에서는 인·허가 과정의 어려움과 개발자와 소비자 사이의 상이한 제품 평가, 높은 시장 장벽, 판매과정에 가격 협상 등에 불편을 겪을 것"이라고 말했다.
선택과 집중을 통한 의료기기 개발 필요성도 강조했다. 글로벌 의료기기 시장 규모가 다른 산업에 비해 큰 규모는 아니지만 내시경 단독으로 생각했을 때는 의미가 다르다는 인식이다. 또 소화기내시경은 에크모·인공호흡기 처럼 필수적이지만 수익성보다 국민건강을 위한 제품과 다빈치 처럼 고가이지만 필수적이지 않은 제품 등 두 가지 지향을 모두 충족한다는 판단이다.
이 교수는 "글로벌 1위기업인 메드트로닉스 매출이 300억 달러, 연성내시경 1위기업 올림푸스 매출이 56억 달러 정도다. 타 산업에 비해 전체 파이가 크지는 않다"며 "그러나 국내 시장 규모를 살펴보면 체외진단-심장학-진단영상-정형외과-안과-일반·성형외과에 이어 다음이 내시경이다. 전문과 전체가 아니라 내시경 단독으로 7위다. 국산화를 이야기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의료기기 국산화에 내수 기반 조성과 기업 규모 유지를 위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한 이유도 설명했다.
이 교수는 "과거 내시경 개발에 국가 예산이 투입됐지만 지금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며 "내수가 기반되지 않은 채 수출에만 기대는 것으로는 살아남기 어렵다. 소화가내시경학회는 8000명의 의료소비자가 확보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메드트로닉 같은 경우 캡슐내시경 개발 업체를 인수한 후 제품 업그레이드를 통해 시장 점유율을 높여간다"며 "기기 업그레이드가 안 되면 시장에서 도태된다. 소규모 회사로는 한계가 있다. 회사 규모 유지를 위한 정책적 지원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이 교수는 "소화기내시경 분야는 한 번의 혁신이 더 남아 있다. 한국엔 세계 최고 수준의 소화기내시경 의사가 있다. IT기술·시장·수요자·개발자 모두 준비돼 있다"며 "최선의 정책 지원을 통해 날개를 달아줄 정부의 손길을 기다린다"고 말했다.
이날 정책토론회에는 인재근 의원(보건복지위원회)·무소속 양정숙 의원(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권덕철 한국보건산업진흥원장·신경림 대한간호협회장 등과 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인재근 의원은 "우리나라는 위암·대장암 유병률이 높아 내시경의 수요가 높다. 그럼에도 현재 국내 소화기내시경의 제작과 보급은 전적으로 일본 회사에 의지하고 있다"며 "정부와 학계 등 각 전문가들이 지혜를 모아 의료기기 국산화를 위한 논의와 제도가 활성화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권덕철 보건산업진흥원장은 "의료현장에 있으면서 의료기기에 대한 치료 효과 차원을 넘어서 개발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연 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 관계자께 경의를 표한다"며 "학계의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전달되면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의료기기 R&D 지원을 위한 범부처전주기의료기기연구개발사업이 6년동안 지속되는 만큼 협업 기회가 많이 마련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