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가 악어 입 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니까 강은
보여주기만 하더군
박쥐가 강물에 날개를 적시면 강물은 잠시 데칼코마니
숨어 있던 악어는 입을 벌리지, 찢어질 만큼 힘껏
강은 보여주었던 풍경을 지워버리고
모른 척
지하에서 올라와 마르지 않는다는 강이
기다리는 것들 사이로 흘러 기다리는 것들을 끌고 가지
박쥐는 강물을 기다리고
악어는 박쥐를 기다리고
그들 사이로, 하늘은 핏빛을 뿌려놓더군
난 밥상 앞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다가
노을이 그림자를 한 숟갈씩 내미는 걸 보고 알았어, 기다림 이란 말
모든 목숨은 기다림으로 포장되어 있더군
그늘이 없으면 스스로 그늘을 만들고
강물을 바라보고만 있는 저녁
강물은 지나가지만 제자리인 것처럼
숨을 죽이고 있어
난 입속의 밥알을 튀기면서 말했어
박쥐가 악어 입속으로 들어간다
▶분당 야베스가정의학과의원장. 2012년 <발견> 신인상으로 등단/시집 <오래된 말> <기다리는 게 버릇이 되었다> <그가 들으시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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