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법 판결문 입수…재판부 유죄 판단 근거 살펴보니
"환자 상태 살피지 않고 부작용 설명도 안해…업무상 과실"
선의에 의한 의료행위를 한 의사에게 법원이 업무상과실치사죄를 물어 법정구속한 사건에 대한 의료계의 공분이 거세지고 있다.
고의가 아닌 선의에 의한 진료 과정이 가져온 나쁜 결과에 법정구속을 선고한 판결은 '판결이 아닌 테러'라며 비난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10일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돼 재판에 넘겨진 세브란스병원 J교수에게 금고 10개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또 환자를 함께 진료한 K전공의는 금고 10개월을 선고하고 형의 집행을 2년간 유예했다.
법원은 "피고인들이 업무상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아 환자가 사망에 이르게 됐다"며 유죄판결했다.
80대 고령자, 병원 방문부터 장 정결제 투약 후 사망하기까지
검찰에 따르면 피해자 A씨는 뇌경색 등을 이유로 (사건 당시) 강남세브란스병원 신경과 진료를 받던 중 2016년 6월 24일 복부 X-ray와 CT 촬영 등을 통해 '회맹판을 침범한 상행 대장 종양', '마비성 장폐색, 회맹장판 폐색에 의한 소장 확장'이라는 내용의 영상의학과 1차 판독 소견을 받자 대장암 치료를 위해 6월 25일 소화기내과 위장관 파트로 전과 됐다.
내과 2년차인 K전공의가 피해자에 대한 주치의로 지정돼 소화기내과 J교수(임상조교수) 지도하에 피해자의 진료를 함께 담당하게 됐다.
이후 K전공의와 J교수는 6월 25일 병원에 입원 중이던 피해자를 진찰하면서 피해자에게 장 정결제를 투약한 후 대장내시경을 실시해 대장암 여부를 확인하기로 했다.
K전공의는 6월 26일 오전에 재차 피해자를 진찰한 후 J교수의 승인을 받아, 같은 날 저녁과 다음 날(6월 27일) 아침에 피해자에게 장 정결제를 투여하도록 처방했다.
환자에게 투여된 장 정결제는 다량의 물에 녹여 경구에 투여하는 방법으로 대변 등 장내 물질이 설사 형태의 다량 배변을 통해 강제적으로 배출되게 하는 약품이다.
고령자·쇠약자에게는 신중히 투여해야 하고, 특히 장관이 기계적 또는 기능적으로 폐쇄돼 장의 내용물이 장관을 통과하지 못하는 장폐색이 있는 환자에게 이 약품을 투여하면 다량의 변이 배출되지 못해 장내 압력이 상승하고, 결국 장천공 등 치명적인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장폐색이 의심되는 고령의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에게는 CT 최종 판독 등을 통해 환자의 장폐색 여부를 구체적으로 확인한 후 장폐색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는 경우 외과적인 진단 방법 등 대장내시경이 아닌 대안을 강구하도록 하고 있다.
일정 시일이 흐른 시점에 환자의 장폐색 상태를 재차 점검해 장폐색 소실을 확인한 후 장 정결제를 투여하는 등으로 환자에게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환자에게 장폐색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해 환자에게 장 정결제를 투여하기로 한 경우에도 환자에게 장 정결제 투여에 따른 장천공 등의 부작용 위험성을 충분히 설명해 환자가 그 위험성을 충분히 인식한 상태에서 장 정결제를 투여받을 것인지 여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할 업무상 주의의무가 있다.
검찰은 "피고인들이 업무상 주의의무를 게을리한 채 피해자에게 복부팽만이나 압통이 없고, 피해자가 대변을 보고 있다는 등의 임상 판단만을 이유로, 피해자에게 장폐색에 의한 소장 확장이 관찰된다는 내용의 영상의학과 판독 소견을 무시하면서 피해자가 장폐색 상태가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에 따라 피해자에게 장폐색 소견과 장 정결제 투여 위험성에 대한 설명을 생략한 채 6월 26일 오후 8시 30분경 병원 간호사들이 피해자에게 장 정결제를 투여하도록 한 공동의 과실로, 6월 27일 오후 9시 37분경 피해자를 장 정결제 투여로 인한 부작용인 장천공 등에 따른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사망에 이르게 했다.
전공의·교수, "장 정결제 투여와 장천공·다발성 장기부전 인과관계 없다" 주장
재판 과정에서 K전공의와 J교수는 장 정결제 투여와 관련 과실이 없고, 장 정결제 투여와 장천공 및 다발성 장기부전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먼저 장 정결제 투여와 관련한 과실 여부에 대해 K전공의와 J교수는 6월 25일 기준으로 피해자의 복부는 부드러웠고, 압통(배를 눌러서 아픈 통증), 반발통(배를 눌었다가 빠르게 땔 때 통증)이 없었으며, 복부 청진상 정상 장음이 들렸고, 전신 상태는 비교적 양호했고, 복통·변비 등의 증상도 없었다며 장폐색이 없었거나 부분적 장폐색 상태였던 점을 강조했다.
또 피해자에게 영상검사결과 대장암이 의심됐고, 부분 폐색 또는 불완전 폐색의 경우일지라도 원인 규명을 위해 대장내시경 검사를 해야 했고, 우측 부위(상행결장)에 폐색이 있었기 때문에 장 정결제 투여가 필요했다고 주장했다.
장 정결제를 3시간 동안 비위관(L-tube)을 통해 주사기를 이용해 30∼50cc씩 조심스럽게 투여했고, 그 과정에서 복통이나 구토 등 이상 증상이 없었으며, 1리터를 투여한 후에도 별다른 이상이 없어서 나머지 1리터를 투여했고, 투여된 이후 정상적으로 배변한 점, 장 정결제를 투여한 후에 대변을 문제없이 보았고 복통·복부팽만 등 이상 증상을 호소하지 않은 점 등에 비춰 장 정결제 투약을 결정하고 실시하면서 과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다음으로 사망에 이르게 된 이유와 관련, 피해자는 고령의 남자환자이고 뇌경색 등 혈관질환이 있었으며, 대장암 의심 소견이 있는 등 장천공이 발생할 수 있는 요인이나 위험인자가 있었던 점을 들었다.
또 장천공이 진단되기 전에 혈압 저하·산소포화도 등 허혈성 변화에 의한 임상증상이 있었던 점, 장 정결제 투여 후 상당 시간이 지난 후 대장 천공이 진단된 점, 사망의 원인이 된 다발성 장기부전은 장천공 및 그로 인한 패혈증뿐만 아니라 흡인성 폐렴에 의해서도 발생할 수 있는 점 등에 비춰 장 정결제 투여와 장천공 및 다발성 장기부전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 밖에 설명의무 위반과 사망과의 인과관계에 대해서도 피고인들은 피해자에게 장 정결제의 부작용을 설명하지는 않았으나, 대장암이 의심됐고, 부분폐색으로서 정확한 진단을 위해 대장내시경이 필요했고, 정확한 진단을 위해 장 정결이 필요했던 점, 장 정결제의 부작용으로 장천공이 발생하는 빈도는 낮은 점 등을 고려하면 설명의무 위반과 사망의 결과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고 항변했다.
재판부, 장 정결제 부작용 설명 않고 급작스레 투약한 과실 인정
그러나 재판부는 피고인들에게 장 정결제 투약과 관련한 업무상 과실, 그러한 업무상 과실 및 설명의무 위반과 장천공 등에 따른 다발성 장기 부전과의 인과관계가 모두 인정된다며, 피고인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2016년 6월 24일 촬영한 복부 엑스레이 및 CT 소견에 의하면, 우측 대장(근위부 대장)의 종괴에 의한 고도 소장 폐쇄가 의심됐고, 신경과 의사의 경과기록지에도 결장 주변 종양으로 인한 장폐색이 의심된다고 기재돼 있었으며, 피고인들도 6월 25일 피해자가 내과로 전과될 당시 영상검사결과 이를 인지하고 있었다고 진술한 점 ▲장 정결제의 약품설명에도 장폐색이거나 의심되는 환자에게는 투여하지 않게 되어 있고, 또한 고령자·쇠약자에게는 신중히 투여하게 되어 있는 점 ▲대장내시경을 시간 여유를 두고 실시하고자 하는 이유가 됐던 피해자 건강 상태의 변화가 있었다고 볼 증거가 없는 점 ▲영상검사결과 고도 소장 폐쇄 등이라고 기록돼 있는데, 피고인들은 환자를 관찰하면서 의무기록지에 증상을 기재하지 않은 점 ▲피해자 측은 갑작스러운 결정에 주치의 결정이 맞는지 확인을 요구했는데, 피고인들은 휴일이어서 부재중이었고, 당직 의사에게 장폐색 증상을 확인하라고 지시하지 않은 점 ▲피해자의 건강 상태와 관련한 장 정결제 투여의 위험성·부작용을 고려했다거나, 고도 장폐색 소견의 영상검사결과에도 장폐색이 없거나 해소됐다고 판단하기 위한 절차를 거쳤다고 볼 수 없는 점 ▲외과적 수술 등을 통한 대체 진단 방법이 가능한지에 대한 고려가 이뤄지지 않은 점 ▲장 정결제 투약에 관해 의사지시기록지에 '금기사항 없음'이라고 기재했고, 실제로 장 정결제를 투약한 간호사나 당직 의사 등 의료진에게 장폐색과 관련한 주의사항을 알리지도 않은 점 ▲검사 전날 저녁과 검사 당일 아침에 분할해 복용하도록 처방하고도 그 양은 분할하지 않고 2리터를 한꺼번에 투약하도록 한 점 ▲장 정결제를 일부 투약하고 중단한 후 시간적 여유를 두고 장폐색에 의한 부작용이 일어나는지를 본 다음 추가 투약할 것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고 계속해 투약한 점에 비춰 피고인들의 주장은 이유가 없다고 봤다.
이 밖에 ▲영상검사결과 대장암이 의심되고 고령이나 혈관질환 등에 비춰 장천공이 발생할 수 있는 요인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장 정결제가 투약되기 전에는 별다른 이상 증상이 없었던 점 ▲위의 요인들은 장의 조직을 약화할 수는 있으나 짧은 시간 내 악화하여 장천공에 이르게 하는 독립적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없는 점 ▲다발성 장기부전은 흡인성 폐렴에 의해서도 발생할 수 있으나, CT 결과 흡인성 폐렴의 소견은 보이지 않은 점 ▲피고인들은 장 정결제 부작용으로 장천공이 발생하는 빈도는 낮다고 하더라도 장천공이 발생할 경우 사망에 이를 정도로 중대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고, 그 사망률도 낮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점 ▲대장내시경을 해야 할 정도로 급박한 사정이 없었던 점 ▲장 정결제를 투여하지 않는 방법의 검사방법도 존재하는 상황에서 피해자나 가족들에게 장폐색 소견과 장 정결제 투여의 부작용이나 위험성을 설명했다면, 이에 동의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는 점 등 피고인들의 주의의무 및 과실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에게 전과가 없는 점은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했다. 그러나 "피고인들의 과실이 가볍지 않고, 그로 인해 피해자가 사망한 것으로 그 결과도 중하다"고 판단했다.
특히 "피고인들은 피해변제를 위한 노력을 다했으나 피해자 유족들의 거부로 인해 합의가 진행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이 사건 소송 경과 등에 비춰 피해변제를 한 것에 준한다거나 참작할 만한 사정으로 볼 수 없다"며 금고형과 법정구속을 하게 된 양형 이유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