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조선 선비조차 인정한 의사의 '운명'을 부정하는 사법부에 통탄하며
지난 14일 밤∼15일 새벽,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 등 의협 집행부는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1인 릴레이 시위'를 벌였다. 장 정결제 투약 뒤 환자 사망으로 법정 구속된 강남세브란스 정 모 교수의 석방 필요성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서였다. 1인 릴레이 시위에 참여한 김태호 특임이사(서울 성동구·성수한사랑의원)가 당시의 감상을 어느 카톡 단체방에 올렸다. 본지는 대한민국 의사들의 고민이 오롯이 녹은 글이라고 판단, 필자의 양해를 거쳐 게재한다. <편집자 주>
새벽, 바람이 차다.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 민원실 초입. 최대집 의협 회장이 어젯밤 9시에 1인 시위 스타트를 끊었다. 장인성 재무자문위원이 새벽 2시부터, 전선룡 법제이사는 3시부터, 나는 4시부터 각각 한 시간씩 하기로 돼 있었다. 그냥 셋이 함께 하기로 했다.
예상대로였다. 잠은 오지 않았다. 베개도 없이 한데에 있는 탓이기도 했지만, 솔직히 잠을 잘 생각도 애초 없었다. 최선을 다해 치료했지만 결국 수감된 의사, 아니 '어리디 어린 두 딸내미 엄마'의 석방을 외치러 온 놈들이 무슨 낯으로 잠을 잘 것인가. 구속된 정 교수는 13만 의사를 대신해 '의료 십자가'를 지고 있는데….
문득 요즘 읽고 있는 책 '청성잡기(靑城雜記)'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이 책은 영조와 정조의 사랑을 담뿍 받았지만 서얼(첩의 자식) 출신의 한을 평생 간직할 수밖에 없었던 문인 성대중(1732∼1809년)이 썼다. 책 제목의 '청성'은 그의 호다. '잡기'라 하였으니, '이것저것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 등도 마구 썼다'는 뜻이렷다.
요즘 들어 한을 안고 살아간 이들의 저작에 관심이 간다. 서얼도 고위 관직(청직)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하자던 '서얼통청(庶孼通淸) 운동'의 상징 인물이었지만, 청성은 끝내 고위직에는 오르지 못했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얼핏 대한민국 의사의 모습이 오버랩된 것은 왜일까? 나의 감정과잉일 것이다.
이 책 중 내 가슴에 살처럼 박힌 문장은 '귀천역설'(貴賤逆說)에 실린 것이다.
'屠必有食肉相 醫必有殺人命'(도필유식육상 의필유살인명). '백정은 고기 먹는 관상을 지녔고, 의사는 사람을 죽이는 운명을 타고 났다.'
그 구절을 다시 떠올리니 한숨부터 났다.
그랬구나. 18세기 조선의 문인조차도 알고 있었구나. 의사는 치료 과정 중에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그것이 의사의 운명이라는 것을….
그럼에도, 그로부터 300년 가까이 지난 21세기 대한민국의 사법부는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이로구나.
그렇다, 진료실에서 나는 "선생님"으로 불린다. 모르는 이를 만났을 때 '의사'가 직업이라고 하면 대개 "이야"하고 감탄사부터 내뱉는다. 의사들이 인정하든 말든, 의사는 만인이 부러워하는 직업이란다.
그럼에도 청성이 이미 근 300년 전에 지적했듯, 우리는 '사람을 죽일 수도 있음'을 운명적으로 타고 난 이들이다. 그렇기에, 최선을 다하고도 '사람을 죽였다'는 이유로 구치소에 수감되는 것이다. 의사이기 이전에 두 딸 아이의, 그것도 그 중 하나는 유치원에 다닐까 말까 한 딸내미의 엄마인 사람이 도대체 아이를 버리고 어디로 도주할 우려가 있기에 구속한 것일까?
생각 속을 뒤척이다가 옆을 보니 장인성 자문위원과 전선룡 법제이사 역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정찬우 기획이사도 어느새 함께 하고 있었고…김해영 법제이사 역시 새벽 5시 전에 합류했다. 새벽 바람은 차갑지만 삽상했다. 13만 의사들의 동지애(同志愛) 덕일 것이다. 이 삽상한 기운이, 13만 의사를 대신해 수인(囚人)이 되신 정 교수님에게 전해지기를 진심으로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