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봉사하는 삶 '보람'...의사이자 독립운동가 부친 보며 나눔의 기쁨 알아
매그너스요양병원서 임종 "힘내라. 가을이다. 사랑해" 남기고 아쉬운 이별
구순이 넘도록 청진기를 놓지 않은 한원주 회원(매그너스요양병원 내과)이 지난 9월 30일 영원한 안식을 찾았다. 향년 94세.
고 한원주 회원은 1926년 일제 강점기에 의사이자 독립운동가인 부친 한규상과 대한애국부인회원으로 독립운동자금을 모으며 항일 투쟁을 도운 모친 박덕실의 여섯 자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서양문화를 받아들인 부모님이 의사가 되고 교사가 되어 우리들을 교육시키시고 봉사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교육만이 이 나라가 다시 일어나 살 길이라고 우리를 격려해 주셨고, 의술을 통하여 모두에게 봉사해야 함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그렇기에 지금 나 자신도 의료봉사의 기쁨을 누리면서 살아왔습니다."('백세 현역이 어찌 꿈이랴-94세 닥터 한의 일과 삶' 본문 중에서, 2019년 라온누리 재간).
부친의 영향을 받은 한 회원은 1949년 고려의대 전신인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를 졸업, 의사의 길을 걸었다. 1959년 산부인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뒤에는 물리학자이자 국비 연수생으로 발탁된 남편을 따라 미국 유학 길에 올랐다. 시카고병원에서 인턴을, 메릴랜드병원에서 내과 레지던트를 마치고 원호병원에 취직했다. 1968년 10년 동안의 미국생활도 청산했다. 가난한 조국의 부국강병을 위해 먼저 귀국한 남편을 따랐다.
10년 동안의 서울 개원의 생활은 탄탄대로였다. 하지만 1978년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은 지난 생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배움이 없던 때 저에게 의학을 공부하게 한 것은 이웃을 위해 살라는 뜻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부터 아버지와 같은 삶을 살기로 했습니다."
한 회원은 1979년 한국기독교의료선교협회 부설 의료선교의원에 터를 잡고 의료봉사에 나섰다. 1982년부터는 환자의 정서나 환경까지도 치료의 영역으로 포괄하는 당시로서는 선진 개념인 '전인 치유진료소'를 열었다. 가난한 환자들의 생활비는 물론 장학금까지 지원하며 온전한 자립을 도왔다.
부와 명예를 내려놓고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삶을 살다보니 마음이 행복했다. 30년 가까이 의료선교의원에서 봉사의 길을 걸었다. 팔순을 훌쩍 넘긴 2008년,은퇴를 결심했다.
치매·중풍·파킨슨병 등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돌보고 있는 매그너스요양병원이 한 회원을 초청했다.
매그너스요양병원은 "생의 마지막까지 환자들과 더불어 하늘나라로 가고 싶은 게 작은 소망"이라는 한 회원을 위해 원하는 그 날까지 진료하며 환자를 돌볼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했다.
평일에는 병원에서 숙식하며 환자들 곁에서 눈 높이를 맞췄다. 손수 노래도 가르쳤다. 작은 배려와 관심은 환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한 회원은 요양병원에서 받는 월급의 대부분을 사회단체에 기부했다. 지금껏 기부하고 있는 단체가 10곳이 넘는다. 2017년 JW그룹 공익재단인 중외학술복지재단이 수여한 제5회 성천상 상금 1억원도 기꺼이 내놨다.
성천상 시상식에서 한 회원은 "남은 생도 노인환자가 희망을 잃지 않도록 현역 의사로 그들 곁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사랑만 가지고도 병이 나을 수 있습니다. 큰 의사는 역시 정신적인 부분까지도, 말하자면 토털 힐링을 하는 그 상태가 큰 의사의 직분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 길이 비록 힘들고 수입이 적을지 몰라도 역시 우리 의사가 가야할 길은 그 길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 회원은 9월 7일까지도 환자를 진료했다. 노환으로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했지만 "평소 있던 곳으로 돌아가겠다"는 뜻에 따라 9월 23일 매그너스요양병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9월 30일, 추석을 하루 앞두고 영면했다.
매그너스요양병원 관계자는 "임종을 지키는 가족과 동료들에게 '힘내라. 가을이다. 사랑해'라는 말을 남겼다"면서 한 회원과의 이별을 못내 아쉬워했다.
한 회원의 일과 삶은 2018년 10월 22~26일 KBS 인간극장(다시보기 클릭)을 통해 방영, 시청자들의 눈길을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