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 광고와 전문의약품 광고

한약 광고와 전문의약품 광고

  • 강석하 과학중심의학연구원장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0.10.18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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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약 광고, 전문의약품 '금지'…한약 '자유'
국민 건강 보호 위한 한의사 광고 규제 필요해

지난 8월 대법원은 자신이 운영하는 의원의 홈페이지와 블로그에 게시한 비만치료제 삭센다 홍보가 약사법 위반이라는 유죄 판결을 확정했다. 약사법에서는 허위나 과장된 내용이 없더라도 일반인을 상대로 한 전문의약품 광고를 금지하고 있다. 

전문의약품 광고 규제가 필요하다는 가장 큰 이유는 의약품 오남용 우려다. 의사가 진찰을 하고 최선의 처방을 해야 환자에게 가장 유익한데, 환자가 광고에서 본 전문의약품이 자신에게 가장 필요하다고 스스로 판단하고 의사에게 처방을 요구하면 환자에게 득보다 실이 클 수 있다.

반면에 한의사들은 스스로 개발했다는 한약을 홈페이지·블로그·기사·각종 광고 등 여러 형식으로 홍보한다. 객관적 근거나 성분, 원산지 등 아무런 정보도 요구받지 않는다. 한의사들의 한약 조제에는 동의보감 같은 고서를 근거로 필요로 하지도 않으며 마음대로 해석할 수 있는 '한방 원리'에 따르기만 하면 충분하다. 

참고로 한의학에서는 약재의 모양, 한열온량(寒熱溫凉)의 4가지 성질(四氣), 산고감신함(酸苦甘辛鹹)의 5가지 맛(五味) 등 원시적 믿음과 음양오행 같은 비과학적 원리를 조합해 효과를 추론해낸다. 2020년 개정판 본초학 교과서에 나와 있다.삭센다의 성분명은 리라글루티드(liraglutide)로 수많은 연구를 통해 비만과 당뇨병에 효과를 입증했다. 펍메드(Pubmed)에서 제목이나 초록에 'liraglutide'를 포함한 논문을 검색하면 2003년부터 현재까지 총 2785편의 논문이 검색된다. 연구에 기여한 의사와 과학자가 1만 명은 족히 넘을 것이다.

체중 감량에 대한 임상시험으로는 최고 권위의 의학저널에 여러 건의 논문이 발표됐는데 2009년 <Lancet>에 564명, 2015년 <NEJM>에 3731명, 2015년 <JAMA>에 1361명의 2형 당뇨병 환자, 2017년 <Lancet>에 2형 당뇨병 환자 2254명을 대상으로 3년간, 2020년 <NEJM>에 251명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 등이 대표적이다. 비만 및 체중감량에 대한 임상시험들에서는 안전성과 유효성을 지지하는 결과가 일관됐고, 다른 효과들에 대한 임상시험들 중에서는 효과가 없다는 결과의 논문들도 있다. 

반면에 그 어떤 한약도 위에 언급한 임상시험 논문 중 하나에 미치는 수준의 근거가 없다. 미국에서 신약허가를 위한 임상 3상에 진입해 가장 큰 기대를 모았던 중국의 한약제제 T89(국내에서는 '심적환'이라는 이름으로 수입해 일반의약품으로 판매 중)는 효능을 입증하지 못하고 탈락했다. 노벨상을 탄 한약재 개똥쑥을 주장하고 싶은 한의사도 있을지 모르겠는데 개똥쑥에서 발견된 아르테미시닌이라는 물질이 말라리아 치료제로 인정받는 것이지, 개똥쑥을 달여 만든 한약으로 말라리아 치료제가 되지 못한다. WHO는 2012년과 2019년에 개똥쑥을 말라리아 예방이나 치료 목적으로 사용하면 안 된다고 발표했다. 

그래픽/윤세호기자 seho3@kma.orgⓒ의협신문
그래픽/윤세호기자 seho3@kma.orgⓒ의협신문

광고가 눈에 많이 띄는 한약 중 하나는 다이어트 한약인 X한의원의 B한약이다. 할아버지부터 3대 90년 전통으로 10만 여건의 임상 케이스를 노하우로 가지고 있다고 홍보한다. 한 버스광고에는 체중이 감량됐다는 여성들 3명의 전후 사진이 실렸다. 홈페이지를 뒤져봐도 근거라고 인정될 만한 것은 전혀 없다. 

다이어트 한약의 주재료는 마황이다. 마황은 수입 한약재 중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는데 2018년에 952톤이 수입됐다. 

미국 국립보완의학통합센터(NCCIH) 홈페이지에서는 마황이 단기적 체중 감소 효과가 있지만 심장마비·뇌졸중 등 여러 부작용 위험성이 크다고 경고한다. 미국에서는 마황의 주성분인 에페드린 알칼로이드를 건강보조식품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금지시켰다. 

한의사들 2만 명 정도가 가입된 비밀 카페에서 한 한의사가 다이어트 한약 비법을 공유해 환호를 받은 적이 있다. 마황을 권장량만큼만 사용하면 식욕억제가 전혀 안 된다며 자신의 사용량을 밝혔는데 대한한방비만학회 권장량의 3배 정도 되는 양이다. 위험성을 지적하는 댓글은 하나도 없었다.일반적으로 대규모 임상시험을 통과해야만 의약품 허가가 되며 시판 뒤에도 전세계의 의사와 과학자들이 연구를 계속해 논문이 발표되는 반면에 한약은 제대로 된 검증이나 연구가 없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국민들은 모른다.

전문의약품은 광고가 금지되고 다이어트 한약은 자유롭게 광고를 하니까 의사들이 처방하는 비만치료제의 압도적인 근거를 모르는 사람들이 '화학물질인 양약보다는 천연물질인 한약이 몸에 좋겠지'라는 착각과 한의사들의 선전을 믿고 한약을 선택하게 된다.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한의사들의 광고에 규제가 필요하다. 국민들이 배경지식을 갖추고 현명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교육과 홍보도 필요하다. 공립기관에서 세금을 써서라도 해야할텐데 실상은 반대로 가고 있다. 

한의약진흥원은 보건복지부장관상을 걸고 '제 1회 한의약 홍보 콘텐츠 공모전'을 개최해 10월 27일까지 응모 받고 있는데 아무래도 국민들이 진실과 점점 더 멀어지게 만들 것 같아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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