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 "중장염전증 의심 소견 있음에도 장중첩증 잘못 진단" 주장
법원 "의료진 지속 관찰로 중장염전증 발견…의료과실 없다" 판단
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 의료진이 장중첩증으로 응급실을 내원한 환아의 상태 변화를 지속해서 확인하며 필요한 검사를 시행하다가 중장염전증을 추가로 진단해 개복술을 시행한 것에 대해 의료과실을 물을 수 없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환아 측은 소아청소년과 의료진이 내원 당시부터 중장염전증(midgut volvulus)을 의심할 수 있는 소견이 있었음에도 장중첩증(intussusceptions)으로 잘못 진단한 과실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응급실 내원 당시 증상이나 검사소견 등으로 볼 때 장중첩증 진단 및 이에 따른 공기정복술 시행이 잘못됐다고 볼 수 없다며 피고 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 의료진의 의료상 과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은 지난 20일 생후 2개월 남짓 된 환아 측이 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 의료진을 대상으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의료진의 의료과실을 인정할 수 없다"며 환아 측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대학병원 응급실 찾은 생후 2개월 남짓 된 환아에게 무슨일이?
A환아는 2017년 6월 28일 새벽 4시 9분경 B대학병원에 내원했는데, 문진 결과 A환아는 내원 10일 전 중이염, 코감기로 항생제를 처방받아 복용했다.
내원 전날 폐구균 등 3가지에 대한 예방접종을 시행한 후 저녁 8시부터 사출성 구토를 5∼6회 하고 보채고 울다가 쳐지는 모습이 반복적으로 나타났으며, 내원 직전 점액 섞인 혈변 증상을 보인 상태였다.
B대학병원 의료진은 6월 28일 새벽 4시 39분경 A환아에 대해 복부 엑스레이 검사를 했고, 그 결과 상복부에 가스 팽대가 있고, 좌측 하복부와 우측 하단에 약간의 가스가 있는 양상으로 장 폐색 상태가 확인됐다.
의료진은 같은 날 새벽 5시 9분경 A환자에 대해 복부 초음파 검사를 했다. 그 결과, A환아는 대장에 협착과 장벽이 두꺼워진 소견이 관찰되고, 소장은 전반적으로 늘어나 있었으며, 우측 하복부의 회맹부 장벽에 부종이 확인돼 장중첩증 또는 전장염이 의심되는 상태였다.
의료진은 A환자에 대해 혈액검사 후 오전 6시 30분경 장중첩증 진단 및 치료를 위한 공기정복술(air enema)을 시행했다.
그 결과, 의료진은 회맹부에 장중첩증으로 의심되는 부위를 관찰했고, 당초 공기가 장 우측 상복부에 정체돼 있었으나 수회 시도 후 대장에서 소장으로 공기 유입이 이뤄져 장중첩증이 정복(reduction)되는 것을 확인했다.
의료진, 장중첩증 진단 후 지속 관찰…장회전이상증 의심 개복술 시행
의료진은 오전 7시 50분경 경과 관찰을 위해 A환자에 대한 입원을 결정했다.
A환자는 입원 이후 혈변을 보았고, 복부 팽만, 저혈압 상태, 맥박 증가 등 증상이 나타났고, 의료진은 장중첩증의 합병증인 저혈량성 쇼크, 폐혈증을 의심해 복부 엑스레이 검사, 심전도 검사, 심장 초음파 검사, 산소포화도 확인, 동맥혈 가스 검사, 혈액검사 등을 시행했으며, A환아를 중환자실로 옮겼다.
의료진은 오전 11시경 A환아에 대해 복부 초음파 검사를 재차 했고, 그 결과, 장벽이 두꺼워져 있고 대장이 협착되고 소장이 늘어져 있는 상태를 확인했다.
또 A환아의 상태를 저혈량성 쇼크에 의한 것으로 진단하고, 수액 요법, 승압제, 신선냉동혈장 및 농축 적혈구 수혈, 고칼륨증 치료를 위한 칼슘제 및 인슐린 투여, 대사성 산증 교정을 위한 탄산수소나트륨 투여, 항생제 투여 등 치료를 시행하면서 상태를 관찰했다.
의료진은 같은 날 오후 3시 1분경 재차 복부팽만 증상이 확인되지, A환아에 대한 복부 초음파 검사를 재시행했고, 좌측 상복부에 이상소견을 확인했다. 오후 4시 15분경 A환아 부모의 동의를 얻어 복부 CT 검사 후 장회전이상증(Intestinal malrotation)을 의심해 개복술 시행을 결정했다.
오후 5시 15분경 이뤄진 개복술에서 A환자의 장회전이상증으로 인한 중장염전증이 확인됐고, 의료진은 소장의 20㎝를 제외한 나머지 괴사한 부분을 제거한 후 남아 있는 소장의 양쪽 끝에 각각 공장루 회장루를 시행하는 수술을 마쳤다.
A환아는 2017년 7월 3일 부모의 요청에 따라 서울의 큰 대형병원으로 전원조치됐다.
A환아의 부모는 B대학병원 의료진이 진료상 과실이 있다며 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환아 측 "왜 처음부터 중장염전증 몰랐나"며 의료진 의료과실 주장
A환아의 부모는 "B대학병원 응급실에 내원했을 당시부터 장회전이상증에 따른 중장염전증을 의심할만한 소견이 있었음에도 병원 의료진은 A환자의 병증을 장중첩증으로 잘못 진단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B대학병원 의료진은 전문의 관여 없이 주사라인을 잡는 등 의료적 필수 조치조차 하지 않고 공기정복술을 한 후, 의료상 과실을 감추기 위해 진료기록부를 변조했고, 이로 인해 A환아는 소장 대부분이 괴사한 이후 뒤늦게 개복술을 받았다"며 4800만원의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원고들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B대학병원 의료진에게 A환자에 대한 진단 및 치료 과정에 의료상 과실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B대학병원 의료진은 응급실 내원 당시 '태어났을 당시 초록색 구토를 한 적이 있으나, 응급실 내원 무렵에는 노란색·우유색의 구토를 했고, 점액 섞인 혈변을 보았다'는 문진 결과에 따라 우선 장중첩증을 의심해 정확한 진단을 위해 혈액검사, 복부 엑스레이 검사를 순차로 시행했다"고 봤다.
그러면서 "환아 측은 이런 문진 결과만으로 중장염전증을 의심하고 조처를 했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A환아가 응급실을 내원한 직후인 새벽 4시 39분경 이뤄진 복부 엑스레이 검사결과 중장염전증의 전형적인 증상(gasless) 소견을 보이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장중첩증 진단 및 치료를 위한 공기정복술 후 장내에 공기가 유입되는 것도 확인했고, 그 무렵 이뤄진 혈액검사 결과 일부 수치가 정상치를 벗어나기는 했으나 소아에 대한 통상적 혈액검사 수치를 고려하면 중장염전증 등 중증이 발생했다고 의심할만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다"고 봤다.
또 "원고 및 피고 측 감정의들 모두 B대학병원 의료진이 한 공기정복술은 2개월 된 환아가 구토와 혈변 등을 보이고 복부 초음파 검사로 장중첩증으로 진단된 경우 통상적으로 하는 의료행위로서 시행한 시간도 적적했다는 의견을 밝혔고, 의료진의 공기정복술 결정이나 시행에 의료상 과실이 있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 "의료진 세심한 진료로 신속히 수술…의료과실 없다" 판단
재판부는 "중장염전증의 경우 진단과 처치가 시의적절하게 이뤄졌어도 장의 괴사나 절제, 사망과 같은 결과가 발생할 수 있어 결과적으로 장의 괴사·절제가 이뤄졌다는 사정만으로 B대학병원 의료진의 진단이나 치료 과정에 과실이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원고들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기각 판결했다.
조진석 변호사(법무법인 세승)는 "환아 측의 주장과는 달리 오히려 피고 대학병원 의료진의 주의 깊고 세심한 진료로 인해 일반적인 중장염전증 환자의 사례와 비교해 환아가 신속하게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료진의 진료를 비난은커녕 칭찬함이 마땅한 사건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검사 소견이나 증상으로 특정 질환이 확진됐더라도 다른 질환이 추가로 병발할 수 있으므로 의료진으로서는 항상 주의를 기울여 세심하게 경과를 관찰하면서 추가적인 검사 등을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