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미국서 만든 맥브라이드 기준, 의학기술 발전 반영 못해
서울중앙지법 "노동능력 상실률 '의학회 평가기준'으로 통일해야"
환자의 신체장해에 대한 손해배상액을 산정할 때 미국식 '맥브라이드 평가기준' 대신 '대한의학회 장애평가기준(KAMS)'을 적용한 판결이 나왔다.
지금까지 법원은 1936년 미국 맥브라이드 교수가 만든 신체장해평가기준을 사용해 왔다. 1963년 맥브라이드 개정판이 나왔지만 외부에서 작업하는 노동자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는 점과 특히 변화하는 의학기술의 발전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서울중앙지방법원(2심)은 14일 환자 A씨가 D병원 의사들(B의사는 C의사를 고용)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피고들은 A씨에게 6864만 4288만원을 배상하라"고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맥브라이드 평가표는 맥브라이드 교수(미국 오클라호마의대 정형외과)가 1936년 만든 것으로 1963년 6번째 개정판을 끝으로 절판됐다. 현재 우리나라 신체 감정 실무에서 노동능력상실률 평가 기준으로 널리 사용하는 맥브라이드 평가표는 이 마지막 개정판을 인용하고 있다.
재판부는 "1960년대에 존재하지 않던 CT, MRI 등과 같은 영상진단기기의 보편화 등 현대 의학의 발전을 고려하면 맥브라이드 평가표가 작성됐던 시점과 현저한 차이가 있다"면서 "맥브라이드 평가표를 참조한 감정 결과가 나오더라도 유사한 상황에서 유리한 감정 결과가 있었던 다른 감정례를 제시하며 반론을 제시하는 당사자들이 많아 하급심의 혼란을 가중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대한의학회의 장애평가기준은 가장 과학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미국의학협회 기준을 기본 모형으로 삼아 맥브라이드 평가표의 장점을 취합하고, 단점을 보완해 장애율과 노동능력상실률을 산정하는 방식을 정립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법원은 맥브라이드 평가표를 원칙으로 하면서 간혹 맥브라이드 평가표에 없는 장애 항목의 경우에만 대한의학회 장애평가기준을 적용하는 등 소극적인 활용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라며 "낡은 맥브라이드 평가표를 계속 붙들고 있어야 할 아무런 필요도, 합리적인 이유도 찾을 수 없다"라고 대한의학회 장애평가기준을 채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재판부는 "대한의학회 장애평가기준은 맥브라이드 평가표의 장애율 산정에 관한 불균형과 누락을 시정하고, 현실적인 우리나라 직업분포에 맞는 노동능력 상실지수를 설정한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기준임이 분명하다"며 "이제부터라도 이를 통일적인 기준으로 삼아 노동능력상실률을 평가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밝혔다.
낡은 맥브라이드 평가기준을 개선하기 위해 대한의학회는 2011년 과학적이고, 한국의 현실을 반영한 한국형 신체장애 평가기준(KAMS)을 만들어 발표했다.
서울중앙지법 2심 재판부는 이번 재판에서 노동능력상실률 산정기준으로 사용하고 있는 맥브라이드 평가표를 대신해 '대한의학회 장애평가기준'을 채택했다.
1심은 기존 맥브라이드 기준을 토대로 노동능력 상실률 24%를 인정 7800여만원을 손해배상액으로 산정했다. 하지만 2심은 대한의학회 기준에 따라 노동능력 상실률 18%를 인정, 6800여만원의 손해배상액을 산정했다.
사건의 경과는 이렇다.
A씨는 2010년경 요통으로 인한 신경성형술을 받은 이후 수년간 요통과 방사통 등으로 여러 보존적 치료를 받아오다 2013년 11월 28일 D병원에 처음 내원해 L4/5(요추4-5번)와 L5/S1(요추5번-천추1번) 추간판 탈출증으로 진단받았다. 당일과 2013년 12월 18일 2회에 걸쳐 CT 유도 신경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다시 증상이 악화해 2015년 5월 28일 좌측 엉치 통증과 좌측 허벅지 뒤쪽으로 종아리 뒤 발뒤꿈치, 새끼발가락의 저린감과 당김, 우측 허리 통증 등 증상으로 피고 병원에 내원했고, 수술을 위해 2015년 6월 3일 입원했다.
C의사는 A씨에게 표준적 수술법인 감압술 및 수핵 제거술(OLD 혹은 OLM을 권고했으나 가족들이 반대한다는 이유로 A씨가 완강히 거부하는 바람에 2015년 6월 4일 경막외 내시경 하 신경감압술(SELD, 이 사건 1차 수술)을 시행했다.
그런데 신경감압술 직후 A씨가 좌측 엄지발가락과 좌측 발목에 힘을 줄 수 없는 증상을 보이자 C의사는 2015년 6월 5일 원고의 요추5번-천추1번 부위에 감압술 및 수핵 제거술(이 사건 2차 수술)을 시행해 남아 있던 디스크를 더 제거했다.
A씨는 2차 수술 후 통증이 감소하고 물리치료를 통해 좌측 발목과 엄지발가락 부위 등의 근력이 다소 호전됐으나, 현재 족관절 신전근의 근약증으로 인한 족하수(신경손상 등으로 근육이 약화해 발목을 들지 못하고 발등을 몸쪽으로 당기지 못하며 발이 아래로 떨어지는 증상)의 후유장애가 남았다.
또 좌측 발목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발이 끌리고 잘 넘어지며, 넘어지지 않기 위해 좌측 발목에 단족 보조기를 착용하고 있다.
이에 A씨는 후유증이 발생했다며 수술을 집도한 C의사와 C의사를 고용한 B의사를 상대로 재산상·정신상 손해를 배상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에서 피고들은 "신경감압술(SELD) 직후 촬영한 MRI 영상이나 2차 수술 과정에서 신경근 및 경막 손상이 관찰되지 않았으므로 수술로 인한 직접적인 신경손상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의료과실이 없다는 피고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신경감압술(SELD)의 방법과 목적, 그리고 특별한 부작용이 없는 안전한 시술이지만, 드물게 신경계 손상(1% 이내) 등의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음을 설명한 사실을 인정, 원고의 설명의무 위반 주장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신경근을 둘러싼 경막 손상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신경근 손상이 없다고 단정할 수 없고, 더욱이 MRI 영상만으로는 신경 손상 여부를 정확히 알 수 없고, 2차 수술 과정에서 C의사가 A씨의 신경 손상을 미처 발견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피고 C의사가 신경감압술(SELD)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요추5번 신경근을 과도하게 견인 또는 압박하거나 레이저를 잘못 조사해 요추5번 신경근을 손상시킴으로써 A씨에게 족하수라는 후유장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C의사는 직접 불법행위자로서, B의사는 C의사의 사용자로서 공동해 A씨에게 후유장해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라며 1심 재판부와 같은 판결을 했다.
재판부는 대한의학회 장애평가기준을 적용해 A씨의 노동능력상실률을 18%로 재산정하고, 기왕증인 추간판 탈출증이 후유장애 발생에 기여한 정도를 50%로 평가해 재산상 손해를 5364만 4288만원[(소극적 손해 6288만 355원+적극적 손해 417만 5005원)×80%], 정신상 손해 1500만원을 합해 피고들은 공동해 A씨에게 6864만 4288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병원 의료진이 표준적 수술법을 권유했음에도 A씨가 이를 거절하고 이 사건 수술법을 택한 점을 고려해 피고들의 손해배상책임을 80%로 제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