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가리고 시를 읽는다. 입속 읊조리는 시어들이 모여 그대로 그림이 된다. 가렸던 제목을 들추며 시인의 마음에 다가선다.
박권수 시인(대전 유성·나라정신건강의학과의원)이 두 번째 시집 <적당하다는 말 그만큼의 거리>를 출간했다.
담을 수 없는 것 하나둘/타들어가는 소리/높다/낯설고 불편한 것일수록/단숨에 삼키는 버릇
적당하다는 말 그만큼의 거리로/공손하거나 비굴하지 않아/외로움도 삼키고/달구었던 멍 커지면/바닥에 내려 지친 것 기대게 하고
구석이나 낮은 곳에서/흔적의 무게마저 담보로 하지 않는 숨구멍/시간이 흘러도/오래/따스했다
- 아궁이 -
익숙치 않은 시가 낯설지 않게 그려지는 탓에 시가 멀지 않다. 왜 그럴까.
박성현 시인의 해설에서 답을 찾았다.
"문장을 향한 시인은 집중은 탁월하다. 놀랍도록 단호하고 견고하다. 그는 일상에서 벌어지는 아주 사소한 사건 하나도 놓치지 않으며, 그것에 촘촘한 의미를 부여한다."
아프지 마요/나 거기 있어요
-아픔은 배경을 물들인다-
몇 글자 안 되는 시어로 마음을 움직인다.
정신과 의사로서의 애환도 읽는다.
디아제팜 몇 알이면 돼요/그거면 돼요
말 아끼는 게 아니라/그게 편한 듯했다/술 취한 다음 날이면 뭉턱뭉턱 잘린 머리카락
날카로운 것 닿을 때마다/포장되는 울음/깊은 곳에서 튀어나온 질긴 흉터
애들이 그래요, 빗살무늬토기라고
팔목 드러날 때마다 아이는/팔장을 꼈다.
-빗살무늬토기-
시인에게 긍휼한 시선은 시의 자양분 아닐까.
시집에는 이렇게 모인 시 60편이 담겼다.
시인은 지난 2010년 계간 <시현실> 신인상으로 등단했으며, 2016년 대전문화재단 창작지원금을 받았다. 대전작가회의 회원, <큰시> 동인, 한국의사시인회 동인으로 활동중이다. 시집 <엉겅퀴마을>(2016)을 펴냈다(☎ 02-323-77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