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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8 17:57 (목)
인지 조작 네이밍(naming) '공공의대'(상)
인지 조작 네이밍(naming) '공공의대'(상)
  • 이무상 연세대 명예교수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0.12.02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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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상 연세대 명예교수(전 한국의학교육평가원장·전 의협 중앙윤리위원장) ⓒ의협신문
이무상 연세대 명예교수(전 한국의학교육평가원장·전 의협 중앙윤리위원장) ⓒ의협신문

이무상 연세의대 명예교수는 1970년 연세의대를 졸업하고, 1979년 연세대 대학원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비뇨기과에서 전공의 과정을 마치고 1977년 전문의 자격을 받았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비뇨기과장과 연세의대 비뇨기과학교실 주임교수를 지냈으며, 연세의대 의학교육학과장을 맡기도 했다.
의협 학술이사·(재)한국의학원 이사·대한의학회 수련이사·부회장·감사를 거쳐 한국의학교육평가원장(2007∼2010년) 등을 맡아 의학교육과 의대 인정평가의 틀을 구축하는 데 앞장섰다. 
의학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외길을 걸어온 이무상 명예교수가 12월 7일 열린 의료윤리연구회 월례모임에서 '공공의대의 이상과 현실'을 주제로 온라인 연자로 나섰다. 의료윤리연구회는 매월 첫 째주 월요일 저녁마다 월례모임을 열어 의료윤리 전반을 학습하고 있다. <편집자 주>

1980년대 중반에 <J. of Medical Education>(Academic Medicine의 전신)에서 'non-profit medical school'이란 단어를 우연히 보았다. 한창 젊고 순진할 때라서 세상에 'for-profit medical school'이란 것도 있나 했다. 얼마 후 의료보험이 확장되면서 주요 대학병원들은 임상교수들에게 수익경쟁을 시킨다. 의료계 내에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시작된 것이다. 경쟁에 쫓기며 Endourology로 수익은 상위권이었지만 잦은 방사선 노출로 점점 'burnout' 되어 가며 'for-profit medical school'이란 말이 머리에 맴돌고 교수직에 회의가 들었다. 결국 사립의대 정체성에도 회의가 들며 의학교육학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이만큼 용어는 의식과 행동에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이다. 

'대학 운용'이 1980년대부터는 '대학 경영'이다. 그래서 1990년대 중반 의대 신설 저지 활동 중에 'for-profit medical school'이란 말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의료계는 속으로는 수긍을 하는 것 같은데 입에 담기를 꺼려했다. 현실을 외면하고 싶은 것이다. 필자만 이상한 사람이 되었다. 2000년대 중반 교육부의 어떤 조찬 회의에서 'for-profit medical school'이란 말을 또 했더니, 모 국립의대 학장이 화를 내기에 정식 교육용어라고 알려 드렸다. 지금도 미국의과대학협회(AAMC)와 AACU·AAU 같은 미국대학협회도 대학을 'for-profit' 혹은 'non-profit'으로 분류한다. 이런 분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 대학의 숙명이다. 특정 대학을 어찌 보느냐 하는 것이 사람마다 다르듯이, 용어도 듣는 이의 이해 수준에 따라서 해석이 다르다.

인지 조작 네이밍(naming) '공공의대'
아이의 이름 짓기는 참 어렵다. 마찬가지로 상품의 'naming(네이밍, 작명)'은 마케팅의 승패에 영향을 준다. 그리고 정치적 네이밍은 좌파가 더 잘한다. 'Political Correctiveness(PC)'가 대표적이다. 

의료에서의 최근 우수작은 바로 '공공의대'이다. 집권층은 역학조사관 양성. 지역의사 공급, 지역에 특정 전문과목 전문의 공급 등 '공공'이 목적이기 때문이란다. 주장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서, 공공의대라는 표현은 현 집권층이 식민지 시절 조선총독부처럼 한국 의사를 '의료업자'로만 본다는 속뜻이다. 현 집권층의 속마음이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의학은 기본적으로 'public'을 바탕으로 하고, 'Medical Professionalism'의 바탕도 영원히 'public'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오해일 수도 있으니, 다시 생각해 보자. 집권층은 폐교된 사립의대 자리에 국가 예산으로 의대를 설립하면서 왜 국립(national)이 아니고 굳이 '공공(public)'이라 했을까? <The Future of The Profession>(Suskind, 2015)이라는 책에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일반인이 전문직을 싫어하며, 경원시하는 정도가 심화하고, 여론에 민감한 정치권은 이를 이용하여 일반인과 전문직을 분리하게 된다고 하였다. 

지리산 자락의 서남의대는 지역적으로 25년 전에 아예 없어야 마땅했기에 의료계는 대체용 의대 설립을 반대했다. 그래서 집권층으로서는 국민과 의료계를 분리할 필요가 생겼다. 집권층의 정치적 꼼수, 보건복지부의 부처 이기주의, 사립의대 유치가 어려워 국가 예산을 쓰려는 지역이기주의가 서로 맞아떨어진 '인지 조작(perception management)' 네이밍이 바로 '공공(公共)'이다. 

북한의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처럼 '우리'를 말머리에 붙이기 좋아하는 민족 속성에 '공공'은 '우리'와 맥이 통한다는 것을 간파한 것이다. 그래서 국가 예산을 쓰면 당연히 '국립'임에도 '공공'이 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역설과 자기모순이 생긴다. 

국회의사당 ⓒ의협신문
국회의사당 ⓒ의협신문

국립 공공의대의 역설
영자신문은 공공의대를 'public medical school'로 했다. 마땅한 다른 단어도 없었을 것이다. 모든 한글매체들도 '공공의대'라고 했다. 그러다 보니 일반인들은 "public medical school 설립 문제로 의사들이 파업을 하다니…"라며 참 나쁜 의사, 참 나쁜 의협이라는 인상을 심었다. 우리나라 국립대학들은 일본과 달리 명칭에 '국립(national)'을 붙이기 좋아한다. 그래서 새 대학은 '국립 공공의대(National Public Medical School)'가 될 것이다. 그러면 "국립의대는 공공의대가 아니다!"가 되고, "모든 의대는 'for-profit'이다!"가 될 것이다. 

한국은 OECD 50-30그룹 나라에서 사립의대 비율이 가장 높다. 세계 최빈국 시절에 의대 인가를 남발하여 지금도 영세의대 비율이 OECD에서 가장 높다. 전체 52개 의대·한의대에서 사립이 41개(79%)이다. 

서유럽 주요 국가에는 사립의대가 아예 없다. AAMC는 172개 회원 대학(미국 155개교, 캐나다 17개교; 2020)중 사립이 63개(37%)이고, 2021학년도 신입생 모집안내서에 회원대학을 public/private로 나눠 소개한다. 미국은 주립대학(state university)과 연방정부(federal)가 특수목적으로 세운 대학이 'public'이다. 미합중국 연방정부가 세운 The Community College of the Air Force, The Naval Postgraduate School, The Air Force Institute of Technology, The military war colleges and staff colleges, The Haskell Indian Nations University 등은 모두가 특수 목적의 국립(national)대학이다. Washington DC에는 사립대학임에도 연방정부가 공인하는 수개의 특수목적대학이 있다. 

우리식으로는 국립(national)이다. 일본은 1979년 이후 40년간 80개 의대이다가 최근 2개 사립의대를 인가하여 82개인데, 국공립(國公立) 51개교(국립 national 43개, 공립 public 8개; 현립·시립·부립), 사립(私立) 31개교(38%)라고 발표했다. 대학은 졸업생이 나와야 'Full Accreditation(완전 인정)'이 된다. 그전까지는 아무리 훌륭해도 'Preliminary Accreditation(잠정 인정)' 기관이다. 그래서 일본은 아직도 80개 의대가 정답이다.

우리나라도 공립(public)은 지방자치단체가 설립주체이다.

그러나 public과 private를 막론하고 몇 개 의과대학을 미국은 'specific purpose medical school', 일본은 '목적별 의과대학(目的別 醫科大學)'으로 대학의 임무(任務, mission)로 대학의 성격을 규정한다. 우리식으로는 '특목-의과대학'이다. 

세계 어느 나라도 의과대학 교육의 목적·목표로 대학의 성격을 규정하면서 '공공의대'라고 하지는 않는다. 보건복지부 내에 이런 정도의 상식을 가진 공무원이 없을 리 없다. 처음부터 '국립 특목의대'라고 해야 옳았다. '공공의대' 네이밍은 집권층의 정치적 선전선동 전술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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