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종 원장(경기 의정부·김연종내과의원)
우여곡절 끝에 2020 한국의사시인회 정기총회가 개최됐다.
진통에 진통을 거듭한 끝에 내린 결정이라 더는 연기할 수 없었다. 어렵사리 날짜를 정했지만 시국은 한 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운 사태로 빠져들었다. 참석 불가를 통보한 회원 수도 점점 늘어났다. 무조건 총회의 결정에 따르겠다는 위임장이 쌓여 갔다.
정기총회 일정은 또다시 안개정국으로 흘러갔다. 몇 번의 연기를 거듭한 터라 회장단의 고민도 더욱 깊어졌으리라.
2.5단계 거리두기.
마침내 수도권은 잠시 멈춤을 선택했다. 결국 총회의 형식을 바꾸기로 했다. 시간은 그대로 진행하되 만남의 방법과 진행 방식을 조금 수정했다. 이른바 온택트 정기총회. 그 동안 활발하게 논의가 이뤄졌던 한국의사시인회 단톡방에서 총회를 개최하기로 한 것이다.
먼저 회장의 개회사와 인사말로 총회의 시작을 알린다.
한국의사시인회 회원 여러분,
코로나19의 전국적인 확산으로 지난 11월 21일 시행하려던 한국의사시인회 총회를 연기한바 있습니다. 운영위원들과 전임 회장님들과 상의해 아래와 같이 비대면 총회로 대신하여 결산하고 회장단을 인수인계하기로 하였습니다. 많은 양해를 부탁드리고 통과시켜주기를 부탁드립니다.
추이를 보니 12월에도 코로나 감염이 쉽사리 수그러지지 않을 기세입니다. 현실적으로 대면 총회를 하는 것 자체가 가능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올해 총회에서는 차기 회장단 선출이 가장 중요한 사안이었고 다른 것들은 관례적으로 해오던 것입니다. 지난해 총회에서 이미 내부적으로 홍지헌 원장님이 차기 회장을 맡기로 하셨습니다.
따라서 비대면 으로 정기총회를 대신하고자 합니다. 총무는 김기준 연세의대 교수가 맡아 수고하기로 했습니다. 준비한 총회자료는 곧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흔쾌히 동의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하는 일 없이 제가 맡은 임기가 다되었습니다. 그동안 총무로 봉사하신 홍지헌 원장님과 운영위원 모든 회원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코로나19 상황이 좋아지면 좋은 날을 잡아 함께 모여 얼굴 뵐 수 있기를, 늘 건강 건필을 소망합니다.
김완 한국의사시인회장 올림
인사말에 이어 회무보고와 재무보고가 올라온다. 그리고 회원들의 문학관련 근황이 소개된다. 올해 시집을 발간한 회원들에게 축하의 메시지까지. 허준 시인의 <이번 생의 누추를 돌려 드릴께요> <내가 잃어버린 낙원이 당신에게 있다>, 김세영 시인의 디카시 <눈과 심장>, 한현수 시인의 <눈물만큼의 이름>, 박권수 시인의 <적당하다는 말 그만큼의 거리>.
어려운 시기에도 참으로 열심히 시를 쓴 회원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시집 소개에는 빠졌지만 한국의사시인회도 <코로나19 블루> 사화집을 상재했다. 그때도 비대면으로 출간을 자축했다. 우편으로 배달된 시집을 보며 만나지 못한 아쉬움을 달랬던 기억이 난다.
"밥 한 번 같이 먹자는 말이 /밥만 같이 먹자는 말도 /한 번만 먹자는 말도 아닌 것을 알겠다 /빈말이 아니라고 힘주어 말했을 때/ 친구는 이미 알고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물어왔던 것은 아닐까"
- 홍지헌, 「밥 한 번 같이 먹자」
그런데 아직까지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회한이 가슴 속에 남아서일까. 비슷한 제목의 시가 또 눈길을 끈다.
머리맡에 두고 자면 몇 달이 되는
그 한마디
-박권수, 「밥 한번 먹자」 <적당하다는 말 그만큼의 거리>
밥 한번 같이 할 수 있는 날, 그날을 기약할 순 없지만 그 아련한 기대까지 버리진 못할 것 같다. 이미 지난 시간을 되돌릴 순 없지만 지난 계절이 그립기는 한현수 시인도 마찬가지다.
심장이 아프도록 계절은 그리운 것을 감추고 있으려니
꽤 늦었다 싶어도 나는
숨을 밀어 넣듯
돌아오라, 말하기만 한다
-한현수, 「계절의 CPR」 부분 <눈물만큼의 이름>
회의는 오랜 시간 지속됐다. 뒤늦게 합류한 회원들의 찬성과 동의가 이어졌다. 전임 회장에 대한 노고와 신임회장에 대한 축하 인사가 뒤를 이었다. 비대면 이지만 회원들의 의사표시는 분명하고 회장의 마지막 멘트는 확고하다.
한국의사시인회 회원 여러분, 차기 회장에 대한 승인과 결산 등 비대면 온라인 총회의 안건에 대해 특별한 반대가 없으시면 모두 동의 하신 걸로 간주하고 통과시키겠습니다. 저는 이제 물러나고 새로운 회장이 모든 회무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한참 후 신임회장의 수락 메시지가 전해졌다.
일부 회원들께서 동의해 주시고, 대다수의 회원들께서 반대하시지 않으셔서 비대면 총회 승인을 받은 것으로 하여 차기 회장을 맡겠습니다.
만날 수 있는 여건이 되면 전임 회장님들을 모시고 운영위원들이 모여 2021년 할 일들을 논의 하겠습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총무직을 맡아주신 김기준 교수님을 비롯해 모든 회원들께 감사드립니다.
홍지헌 한국의사시인회 신임회장 올림.
그렇게 총회는 끝났다. 이제 온택트는 시대적 사명이다. 2020년 비대면이 미덕인 시대, 아무도 절차를 문제 삼거나 회의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진 않았다. 지혜로운 대처에 오히려 감사의 마음을 표할 뿐. 그런데 신임 회장의 바람대로 만날 수 있는 여건은 언제쯤일까? 빈말이 아니라 진짜 밥 한번 먹으려면 또 얼마를 기다려야 할까?
이번 주 부터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 중이다. 그것이 2단계가 될지 3단계가 될지 아슬아슬한 한 주가 또 지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