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낙태죄 소멸시효까지 대체입법 마련 실패...고민·부담은 의사 몫
낙태시술 가능기간은 임신10주? 14주? 22주?...산부인과계 "10주 미만만"
지난 1일 0시부로 낙태죄가 폐지됐지만 대체입법이 늦어지면서 의료계가 혼란에 빠졌다.
대체입법이 완료될 때까지는 사실상 의사 개인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은 상황이나, 의료계 내에서는 낙태시술 가능 임신 기간, 의사의 낙태 거부권 인정 등 쟁점을 둘러싸고 의견이 갈리고 있다.
지난 2019년 4월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올해부터 낙태죄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국회는 낙태죄 폐지에 따른 대체입법안을 지난해 12월 31일까지 마련했어야 하지만, 여야는 정쟁과 코로나19 등 상황에 매몰돼 대체입법 마련을 뒷전으로 미뤘다.
정부는 임신 14주 이내 낙태 행위를 처벌 대상에서 제외하면서도 낙태 여성에 대한 처벌 규정을 일정 부분 남겨둔 형법 개정안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임신 15부부터 24주까지는 기존 모자보건법상 임신중지 사유에 해당하거나 사회·경제적 사유가 있을 시 조건부 낙태를 허용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하지만, 여성계와 시민사회계는 국무회의 의결 안에 강하게 반발했다. 임신 15∼24주 조건부 낙태 단서 조항에 대해서도 전부 비처벌 및 비범죄로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면서 청와대 국민청원, 국회 입법청원 등으로 맞서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정부의 형법 개정안 재검토 의견을 내 제동을 걸었다. 낙태죄는 위헌이라는 원칙론을 강조했다.
낙태죄를 둘러싼 입법공백 사태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자 의료현장이 혼란에 빠졌다.
일단 개별 의사의 신념에 따라 낙태시술을 할 수도 있고 거부할 수도 있도 있지만, 낙태시술 가능 임신 주 수에 따른 의학적 견해와 임산부의 생명·안전 위해 등에 대한 견해가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낙태죄가 폐지됐다는 소식에 원하지 않은 임신을 했거나 이전 관련 법률에서 허용하지 않는 상황에서 낙태를 원하는 임신부가 의료기관을 찾아 낙태를 요구할 경우 의사-환자 간 갈등의 소지도 크다.
이런 상황에서 정의당을 필두로 여성·시민사회계는 낙태죄의 완전한 폐지, 즉 임신 주 수에 관계없이(임산부의 생명과 건강에 위해가 가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한 해) 낙태를 허용하고, 낙태시술을 받은 임산부와 시술한 의사를 처벌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대체입법이 완료되기 까지 논란이 예상된다.
이런 모든 상황에 대해 대한산부인과학회·대한모체태아의학회·대한산부인과의사회·(직선제)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지난해 12월 28일 '낙태법 폐지에 대한 대국민 호소문'을 통해 입장을 밝혔다.
먼저 대체입법 시한을 넘겨 혼란을 야기한 정부와 입법부의 직무유기에 대해 강력한 유감을 표함과 동시에, '선별적 낙태 거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아울러 임신 22주 이후 생존 가능한 태아 낙태는 살인이라며 의사의 낙태 거부권을 담은 대체입법을 강력히 촉구했다.
이들 단체는 "태아의 생존 가능성이 있는 임신 22주 이후에 잘 자라고 있는 태아의 생명을 빼앗는 행위에 단호하게 반대한다"면서 의사의 '선별적 낙태 거부'에 대한 국민의 이해와 협조를 당부했다.
아울러 기본적으로 ▲낙태법 폐지 반대 ▲임신 10+0주(70일:초음파 검사 상 태아 크기로 측정한 임신 일수 기준) 미만 아무 조건 없이 낙태 허용 ▲임신 10+0주∼22+0주 미만 낙태 시 상담과 일정 기간의 숙려 절차 마련 ▲임신 22+0주 이후 낙태 허용 반대 ▲의사의 낙태 거부권 보장 등을 주장하고 있다.
"태아가 생존 가능성이 있는 시기에 의사가 의사가 낙태를 해 태어난 아기를 죽게 하면 현행 법과 판례상 살인죄로 처벌받을 수 있으므로 임신 22+0주부터는 낙태의 요구에 응하지 응하지 않을 것"이라며 "임신 22+0주 이후에 의학적 사유로 인해 임신 중단이 필요한 경우에는 태아의 생명을 무조건 빼앗는 낙태가 아닌 조산으로 간주해, 임신부와 태아에 대해 그에 적합한 의학적 처치를 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의료법 제15조에 의사는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 요청을 거부하지 못하도록 돼 있으나,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 태아를 사회·경제적인 이유로 낙태해 달라는 요청을 의사가 양심과 직업윤리에 따라 거부하는 것은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며, 낙태 거부권 법적 보장을 요구했다.
정부, 인공임심중절수술 외 약물 투여 허용...의사 거부권 인정
현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는 정부 발의안을 포함해 총 6개의 모자보건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정부 개정안의 주요내용은 ▲인공임신중절(낙태) 수술 외 약물 투여 추가 ▲의료기관과 보건소 등에 임신·출산 등에 대한 정보 제공, 임신의 유지·종결에 대한 상담 등의 업무를 수행할 종합상담기관의 설치 ▲임신·출산 지원기관의 설치·운영 ▲생식건강 증진 사업의 실시 ▲의사 거부권 인정 등이다.
정부 발의 모자보건법 개정안 외에 지난해 10월 12일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교육위원회), 11월 5일 정의당 이은주 의원(행정안전위원회), 11월 13일 국민의힘 조해진 의원(기획재정위원회), 더불어민주당 11월 27일 박주민 의원(법제사법위원회), 12월 1일 국민의힘 서정숙 의원(보건복지위원회) 등이 개정안을 발의했다.
임신 주 수 제한없이 임산부 결정으로 낙태 허용
권 의원과 이 의원의 모자보건법 개정안 골자는 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 한계 규정을 삭제해 허용 주 수나 사유에 제한 없이 충분한 정보 제공과 지원을 통해 임산부의 판단과 결정으로 의사에 의한 인공임신중단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임신 10주 미만, 지정 의료기관에서만 낙태 허용...의사 거부권도
조 의원 개정안의 골자는 의학적으로 인정되는 기준인 임신 10주를 한도로, 예외적으로 임신의 지속이 태아와 여성의 건강에 중대한 위험이 되는 경우 임신 20주의 범위 내에서 인공임신중절시술을 인정하는 내용이다.
특히 한편 임신중절 시술기관으로 지정된 의료기관 내에서 의사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도록 하고, 양심과 종교의 자유 등에 따라 인공임신중절시술을 원치 않는 의사의 거부권을 명시적으로 규정했다.
이외에도 박 의원 개정안의 핵심은 '인공임신중절수술'을 '인공임신중단'으로 하고, 수술뿐만 아니라 약물·수술 등의 의학적 방법으로 임신을 종결하는 것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다만 인공임신중단을 허용할 수 있는 범위를 따로 규정하도록 했다.
서 의원 안은 낙태에 필요한 필요적 사전상담 절차를 세밀하게 규정함으로써 낙태가 최소화 될 수 있도록 하고, 인공임신중절시술은 지정 의료기관에서만 하도록 하며, 위반 시 벌칙을 부과하도록 하는 것이다. 의사의 시술 거부권 허용도 규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