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체인저' 백신, 확보한다고 능사 아냐

'게임 체인저' 백신, 확보한다고 능사 아냐

  • 박홍준 의협 재난의료지원팀 단장(의협 부회장·서울특별시의사회장)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1.01.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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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접종 위해 매일 의사 4000명 필요...예산 확보도 문제
정부·의협 의료 전문가 머리 맞대고 구체적 로드맵 만들어야

박홍준 의협 재난의료지원팀 단장(의협 부회장·서울특별시의사회장) ⓒ의협신문
박홍준 의협 재난의료지원팀 단장(의협 부회장·서울특별시의사회장) ⓒ의협신문

1월 20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19(COVID-19)가 국내에 상륙한 지 꼬박 1년이 되었다. 우리 눈에 보이지도 않고 일반인들에게는 이름조차 생소한 이 바이러스는 우리의 일상을 단숨에 집어삼켜 버렸다. 

지난해 초 대구·경북에서의 1차 대유행을 시작으로 최근 수도권 대유행에 이르기까지, 당분간 COVID-19 사태는 방역의 고삐를 얼마나 죄느냐에 따라 확산과 소강을 반복할 것이다. 장기간 지지부진하게 이어가는 이 COVID-19와의 전쟁을 끝내기 위해선 백신 접종을 통해 집단면역을 형성하는 것밖에 없다.

다행히 백신 확보에 소극적이던 정부도 이제는 백신이 '게임체인저(game changer)'임을 인정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사를 통해 전 국민 백신 무료접종 계획을 밝혔고,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에게 백신 접종과 관련해 "전권을 갖고 지휘하라"고 지시했다. 이르면 2월부터 접종을 시작해 11월쯤엔 집단면역을 형성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백신 5600만 명분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애초 도입키로 한 4400만 명분보다 늘어나 집단면역을 형성하기에 충분하다고 한다.

하지만 백신 계획을 세우면서 (늦장 논란을 잠재우기에 바빠) 물량확보에 집중한 나머지 간과한 부분이 있다. 백신만 확보했다고 저절로 집단면역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백신을 직접 놓아줘야 한다. 집단면역 형성을 위해선 전체인구의 70%인 약 3600만 명에게 접종이 이뤄져야 한다. 특히 COVID-19 백신은 얀센(600만 명분)을 제외하면 모두 2회씩 접종해야 하므로 10월 말까지 2차 접종을 완료하기 위해선 매달 800만 명, 매일 40만 명(월 20일 접종 기준) 이상 접종을 마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독감 백신의 경우에는 안전을 고려해 의사 1명이 하루에 접종하는 인원을 100명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 이보다 위험성이 큰 COVID-19 백신이지만, 역시 하루 100명씩 접종한다 해도 매일 4000명 이상의 의사가 필요하다. 특히 영하 70도 이하에서 보관해야 하는 화이자 백신이나 20도 이하에서 유통해야 하는 모더나 등은 별도의 초저온 냉동고가 필요한 까닭에 권역별로 접종센터를 지정할 계획이다. 

감염을 우려해 거리 두기를 하는 상황에서 역설적으로 백신 접종을 위해 수백, 수천 명의 사람이 한 자리에 밀집해야 한다. 더구나 COVID-19 백신은 부작용 우려 때문에 접종 후 30분 이상 대기관찰이 필수적이다. 여름철 폭염이나 폭우 등이 겹치면 자칫 접종센터 자체가 감염병의 온상이 될 수도 있다. 

COVID-19 백신은 얀센(600만 명분)을 제외하면 모두 2회씩 접종해야 하므로 10월 말까지 2차 접종을 완료하기 위해선 매달 800만 명, 매일 40만 명(월 20일 접종 기준) 이상 접종을 마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의협신문
COVID-19 백신은 얀센(600만 명분)을 제외하면 모두 2회씩 접종해야 하므로 10월 말까지 2차 접종을 완료하기 위해선 매달 800만 명, 매일 40만 명(월 20일 접종 기준) 이상 접종을 마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의협신문

그간 정부의 COVID-19 대응 방식은 효율성보다는 형식적인 숫자 맞추기에 치중한 모습을 보였다. COVID-19 병상 확보 방식도 의료인력과 적정진료에 대한 고려 없이 병상 숫자만 나열해 온  결과, 3차 대유행에서 환자들은 제대로 치료받지 못했으며, 사망자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전 국민 백신 접종을 무난하게 수행하기 위해선 고도의 행정력뿐 아니라, 엄청난 재정과 인력의 투입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정부는 백신 '물량 확보'를 위한 예산만 편성했을 뿐, 백신 '접종'을 위한 예산에 대해서는 명확한 언급이 없다.

일각에서는 건강보험 재정을 전용하자는 얘기마저 나온다. 가뜩이나 보장성 강화를 앞세운 현 정부의 소위 '문재인 케어' 정책으로 인해 건보 재정 적자 확대가 불 보듯 뻔한 상황이다. 적자인 건보 재정을 끌어다 쓰겠다는 것은 중장기적인 국민건강이야 어찌 되든 상관없다는 무책임한 주장이다.

'무료'로 눈길을 끌어놓고 구체적인 예산 확보 계획도 없이 건보재정을 끌어다 뒷감당하겠다는 것은 사기 아닌가? 건보 재정은 국민의 보험료로 이루어진다. 건보 재정으로 충당한다면 무료는 아니지 않나?

이러한 임기응변식 정책은 안정적으로 백신 접종사업을 수행하기 어렵게 하며, 자칫 집단면역 형성이란 유효성이 위협받을 수 있다. 

이제라도 대한의사협회와 같은 의료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대고 예산부터 사업수행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인 로드맵을 만들어나가길 바란다.

국민의 건강을 지켜야 하는 공동의 목표를 앞에 두고, 더 이상 현장과 헛도는 정책은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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