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환경 개선·권리보호 무시…합법적 의료인력 동원 의도
바른의료연구소 "현실 외면…수련기간 인정 안돼 불이익"
전공의가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이 인정한 기관에서 근무를 할 수 있도록 겸직을 허용하는 '전문의의 수련 및 자격 인정에 관한 규정 일부개정(안)' 입법예고에 대해 의료계의 비판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이나 전공의 권리보호를 무시하고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의료인력을 합법적으로 동원·이용하기 위한 의도라는 지적이다.
바른의료연구소는 4일 입장문을 통해 개정안은 상위법인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전공의법)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적시하고, 전공의에게 타 의료기관 근무가 허용되면 전공의법에서 정상적인 수련을 위해 보장한 교육·근무시간·휴게시간 등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수련 질 저하와 전공의 권익 침해로 이어지게 된다고 비판했다.
전공의 겸직금지 규정은 정상적인 수련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 장치로서 이 규정에 예외 조항을 두게 되면 악용돼 전공의의 권익과 수련 환경이 침해될 우려가 높다는 판단이다.
비수련기관 근무로 전공의가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비수련기관에서의 근무는 수련 기간으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추가 수련의 불이익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바른의료연구소는 "코로나19 생활치료센터나 전담병원에 대한 의료인력 수급을 위해 지자체 등에서 수련병원들과 업무 협약을 맺는 방식으로 의료인력을 파견 형태로 지원하는 사례가 있었고, 이 때 전공의 인력도 다수 포함됐다"며 "전공의는 피교육자이면서 근로자 신분이므로 현실적으로 수련병원장의 업무 지시를 무시하거나 거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아직 법 개정이 되지 않아 불법인 상황에서도 전공의를 비수련기관으로 파견근무시키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이번 개정안이 통과되면 전공의들은 수련병원장의 지시에 따라 타 의료기관이나 협약 기관으로 파견 근무를 수행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수련병원 현실을 무시한 보건복지부의 몰이해도 질타했다.
보건복지부는 2일 홈페이지를 통해 "전공의 겸직은 본인 의사와 수련병원장 허가가 전제돼야 이뤄질 수 있다"고 해명했지만, 개정안이 통과되면 보건복지부 지시든 수련병원장의 파견 명령이든 겸직이 가능해진다는 인식이다.
바른의료연구소는 "설사 개정 법령에 전공의 본인의 동의를 전제로 한다는 문구가 명시되더라도, 실제로는 수련병원장 및 교수들의 요구에 반해 동의를 거부하기 힘든 현실"이라며, "본인 동의 규정 조차도 없는 개정안 통과는 손 쉬운 전공의 강제 동원을 위한 사전 조치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의료인력 투입 우선 순위에 대한 잘못된 생각도 바로잡았다.
바른의료연구소는 "국가 재난상황에서 투입돼야 하는 1순위 의료인력은 공무원 및 공공의료기관 전문 의료인력이고, 공공의료인력으로도 부족하면 민간의료기관 의료인력의 자발적인 도움을 받아야 한다"며 "전공의는 전문의가 되기 위해서 수련 및 근로를 병행하는 과정에 있는 의사이기 때문에 전공의 수련 기간 동안에는 해당 지위가 유지돼야 하고 가장 마지막에 투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개정안은 법안 취지인 전공의 수련을 보장하고 그 지위를 보호하고자 하는 본래 목적과는 반대로 정상적인 수련을 방해하고 전공의의 권익을 침해할 수 있다"며 "정부가 입법예고한 개정안을 전면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