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회복' 중요…형사처벌보다 자발적 조정 참여 동기 부여해야
의료정책연구소 50차 정책포럼 '의사 면허체계와 의료행위' 주제
"의료분쟁 시 조정이 성립되면 형사소추를 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최근 의사의 의료행위에 대한 형사 처벌과 제재를 더욱 강화하는 입법안이 지속해서 발의되고 있는 가운데 이에 대한 문제점을 진단하고, 개선방안을 모색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는 4일 '의사면허체계와 의료행위'를 주제로 제50차 정책포럼을 열어 의료행위에 대한 형벌화 경향과 이원적 면허체계로 인한 문제점을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했다.
안덕선 의료정책연구소장은 "의사의 의료행위에 대한 형벌화 경향과 함께 입법안이 지속적으로 제출되고 있는 현실에서 의사에게 국내외 사례 및 법령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진료 시 주의사항을 제공하자는 취지에서 포럼을 열었다"면서 이번 포럼을 열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안덕선 소장은 "끊임없는 분쟁의 원인이 되고 있는 이원적 면허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점을 살펴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며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한의학의 존재 가치를 망각한 잘못된 주장을 바로잡고, 한의계의 현실과 괴리가 있는 모순된 의료법과 관련 법령에 대한 개선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의료정책포럼의 화두는 의료과실에 대한 형사처벌.
박경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의료과실 형사처벌의 비교법적 검토' 발제에서 우리나라와 영국·독일의 사례를 비교하면서 "의료분쟁 중재·조정이 성립한 경우 형사소추 가능성을 현재보다 제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부연구위원은 "의료과실로 환자가 사망한 경우 영국은 중과실인 경우에만 형사처벌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반해, 한국과 독일은 단순과실인 경우에도 형사처벌 대상"이라며 "그러나 세 국가에서 실제 형사처벌 대상이 되고 있는 구체적인 사례를 살펴보면 행위자의 주의의무 위반 정도는 거의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박 부연구위원은 "의료과오 사건에서 형사 입건되거나 재판까지 가는 사건의 수는 중과실 또는 경과실을 형사처벌 요건으로 하는지에 따라 각 나라마다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의료과오 사건을 형사 사건화 하지 않거나, 형사 입건하더라도 기소해서 재판까지 가는 사건은 많지 않다"며 "영국의 경우 2013∼2018년 입건된 151건의 중과실치사죄 가운데 4건만 유죄판결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박 부연구위원은 "피해자가 가해자 형사처벌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 소송외적 합의(중재·조정)로 종결되거나 소송을 하더라도 입증책임을 완화하고 있는 민사소송을 제기한다"며 "형사사건화 하는 경우는 대부분 가해자와 피해자 간에 감정적 갈등이 깊어지거나 피해자가 민사합의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형사사건을 함께 진행하는 경우"라고 지적했다.
의료행위에 대한 형벌화 경향을 줄이는 방안에 대해서도 조언했다.
박 부연구위원은 의료분쟁조정법상 조정제도를 민·형사를 통합적으로 조정하는 제도로 활성화 해야 한다고 밝혔다. 조정이 성립되면 형사소추를 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는 판단이다.
박 부연구위원은 "현재 의료분쟁조정법상 조정은 임의적 전치주의"라며 "고의범죄가 아닌한 기소유예를 할 만한 의료과실 사건인 경우에는 필요적으로 조정을 거치도록 하고, 기타 중과실을 포함한 의료과실 사건의 경우 임의적 전치주의로 하되, 피해자 측이 자발적으로 조정에 참여하고, 가해자 측이 조정결과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가 아니라면 형사소추를 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포럼에서는 의학과 한의학으로 이원화 되어 있는 면허체계의 문제점을 진단하는 자리도 마련했다. 참석자들은 이원적인 의료법·약사법 등 관련 법령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는 데 공감했다.
김형선 의협 의료정책연구소 법제도팀장은 '이원적 면허체계의 문제점과 법적 개선' 주제발표를 통해 "한의학은 과학적으로 근거가 불충분한 전통요법으로 의학과의 관계상 주체가 될 수 없다"면서 "한방의료행위의 확장은 결과적으로 국민의 자기 건강결정권과 직업의 자유를 침해하므로 한방의료행위와 국민 누구나 할 수 있는 민간의료행위의 구체적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의사에 대한 입법상의 문제점도 비판했다.
김 팀장은 "전통의학이 국가 의료체계에서 제도권의학으로 자리잡고 있는 한 한의사의 업무 범위는 국가 면허시험과 면허범위 내로 한정된다"며 "한의사 국가시험에 실기시험이 없는 것은 입법의 불비이며, 한방행위 기술이 과학적으로 증명하거나 표준화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한방의료행위가 환자에게 유효한 치료, 건강 보존 등에 도움이 된다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증명, 진찰 등의 표준화, 신의료기술 평가 등을 통한 안전성·유효성 입증을 전제로 실기시험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제 의학계에서도 한방은 인정받지 못하다 있고 밝혔다.
김 팀장은 "한의과대학은 세계의과대학명부(WDMS)에서 퇴출됐으며, 한국의 고유 전통의학 지위만 있을 뿐"이라며 "코로나19로 인해 동물성재료(약재 등)에 대한 국제적 규제도 논의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의학의 불분명한 개념과 입법상의 미비점도 짚었다.
김 팀장은 "관계 법령에 한약재·한약·한약제제·한방행위 등의 개념과 의약품과의 구분 및 한의사의 조제행위와 제조행위를 명확히 정립해야 한다"며 "한의사의 업무 범위와 주의의무 관련 환자 안전과 직결되는 의약품 사용 여부 확인 의무를 명시할 필요가 있고, 탕전실 신고 및 제조 허가 요건도 명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은 면허범위를 벗어난 행위로서 위해를 초래할 수 있으므로 엄격히 제한돼야 한다"며 "한의사가 수술하는 상황을 상정할 수 없으므로 의료법 제24조의 2 설명의무의 주체로 삽입돼 있는 한의사는 삭제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패널 토의는 신은주 한동대 법학부 교수(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이사)가 좌장을 맡은 가운데 박형욱 단국의대 교수(대한의학회 법제이사)·박호균 변호사(법무법인 히포크라테스 대표)·이락원 변호사(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조정감정1팀장)·이유경 변호사(Danziger, Danziger & Muro, LLP) 등이 참여했다.
박형욱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로 기소되는 건수는 2015년 2187건(업무상과실치사 1296건·업무상과실치상 891건)에서 2019년 2543건(업무상과실치사 1417건·업무상과실치상 1126건)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며 "무죄 판결을 받더라도 1심, 2심을 거쳐 대법원까지 재판을 받는 것은 의사에게 매우 큰 충격을 줄 수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의료사고에 대해 의사에게 형사처벌을 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좋은 결과보다 오히려 문제를 야기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때"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원적 면허체계에 대해 박 교수는 "의사나 한의사 모두 환자를 치료한다면 공통적으로 준수해야 하는 원칙이 무엇인지를 규명하고, 이를 의사와 한의사에게 일관되게 적용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근본적으로 일관된 원칙, 과학적 원칙을 한의사에게 적용하려는 보건복지부의 의지가 희박하다"고 비판했다.
행정벌적 관점에서 의사면허제도는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박호균 변호사는 "행정벌적인 관점에서 면허제도에는 문제점이 있다는 생각이다. 의사는 형사상 범죄형(금고 이상)을 받더라도 다른 전문직과 다르게 면허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다"며 "의료배상책임보험이 확대되면서 민사책임은 보험을 통해 해결하고 형사책임은 거의 문제되지 않거나 문제가 되더라도 면허에는 지장이 없다는 인식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의료분쟁조정원 절차를 통해 형사상 면책을 확대하는 것은 현재도 가능하다"고 밝힌 박 변호사는 "다만 인신상 사상 결과에 대해 모든 경우를 형사책임에서 면제하는 것은 더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락원 변호사는 "의료분쟁과 관련 조정 전치주의 도입은 사회적 비용을 고려하면 논의가 필요하다"며 "현재 방식인 옵트인(양자가 동의했을 경우만 조정 개시)에서 옵트아웃(일방이 조정절차를 개시할 수 있고, 상대방이 반대했을때만 조정개시가 되지 않는 방식)으로 단계적으로 개선된다면 분쟁조정이 활성화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형사특례범위를 확대해 당사자 간 분쟁해결을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힌 이 변호사는 "조정성립 이후 조정결과가 이행되지 않는 상황에 대한 조치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유경 변호사는 "기소유예 대상이 될 수 있는 사건의 경우 필요적 전치주의를 도입하고 중과실을 포함한 기타 과실의 경우 임의적 전치주의로 하되, 현재와 같이 반의사불벌죄로 두는 것이 아니라 형사소추를 할 수 없도록 하는 의견에 동의한다"며 "고의에 의한 사상이 아니기 때문에 의료과실 사건은 피해 회복에 주안점을 둬야 한다. 조정제도를 적극 활용하면 피해 회복을 실현할 수 있으며, 의료인이 처벌에 대한 불안감 없이 보다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조정에 참여할 동기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