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로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불명예를 저지르는 어리석음
약 30년 전 일이다. 필자가 모 자원봉사단체의 대표를 맡았을 때 필자의 은사께서 그 단체의 명예직을 맡았으면 하셨다. 그분께서 그 단체를 만들다시피 하셨고, 또 필자를 그 단체에서 활동하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교육계의 최고위직까지 역임하신 터라 그 자리를 맡는 데에 아무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자리는 그 단체에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는 분이 맡던 자리라 그 자리를 맡으려면 역할을 하셔야 한다는 말씀을 드렸는데 그렇게 하시겠다고 하여 추대하였다.
그런데 임기가 끝나도록 단 한 푼도 도움을 주시지 않자 많은 일반 임원들이나 후원자들께서 불만을 토로하였다. 일반 임원들이 1년에 대략 100만 원(당시 금 한 돈이 4∼5만 원 정도였으니 꽤 큰 돈이었다) 정도 부담하고 있었는데, 정작 경제적 여유도 있으시고 도움을 주시기로 한 분께서 전혀 도움을 주지 않자 불만이 쌓인 것이다.
그래서 임기가 끝난 후 연임하고자 하셨으나 단연코 거절하였다. 명예직을 맡으면서 불명예스러워지는 것은 어리석다는 생각에서다.
우리가 살다 보면 명예직에 해당하는 직책을 맡을 사람을 뽑는데 시끄러운 일이 벌어지는 것을 가끔 본다. 그럴 경우 설령 당선된다고 해도 명예가 땅에 떨어지는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이처럼 명예를 얻기 위한 행동이 불명예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라 여긴다.
의사회장이라는 자리는 권력이 있는 자리도 아니고, 돈이 되는 자리는 더더욱 아니다. 그저 많지는 않지만 명예로운 자리다. 많은 사람이 부러워하는 의사들 모임의 장이니 명예직이라 하여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요즘 의사회장을 뽑는 시기가 되면서 불협화음이 들린다. 모 지방 의사회에서 회장을 뽑는데 상대방이 선거에 나오지 못하도록 하여 많은 회원의 공분을 사고 있다고 한다. 필자가 그 의사회의 소속이 아니어서 정확한 사유를 알 수는 없지만 다른 의사회 소속의 의사들 사이에 많은 얘기가 나오는 것을 보면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라는 속담도 있듯이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떤 분들은 좀 말썽이 있더라도 능력이 있는 분이 맡는 것이 좋지 않으냐고 하시는 분들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의견이 엇갈리거나 판단이 어려운 경우에는 사태의 본질을 따지는 것이 올바른 판단이나 선택에 도움이 된다.
그러면 의사회장이 하는 일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필자는 회원들의 화합을 도모하고 권익을 증진하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런데 선거로 말미암아 회원들의 단합을 이룰 수 없다면 회장직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까? 더구나 지금은 코로나19 사태로 모든 국민이 어려움을 겪고 있고, 이 사태가 지나면 작년에 정부에서 추진하다가 중단된 공공의대 신설이나 의대 정원을 늘리는 문제로 투쟁이 불가피해서 의료계가 힘을 모아야 할 때이다. 작은 이익에 연연하여 큰일을 그르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우리들은 '기회는 균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그리고 결과는 정의롭게'라는 말에 환호하였다. 우리가 먼저 이렇게 하지 않고서 상대방에게 요구하는 것은 그리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다. 신뢰가 땅에 떨어진 우리 사회에서 그나마 사회적 존경을 받는 의료계가 솔선수범하여 우리나라가 좀 더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