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 있는 의사 원하는 것, 누구나 마찬가지 시골 사는 노인도 마찬가지"
"이번에 검진 받은 결과에서 OOO이 나와서 수술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조금 불친절하더라도 수술 잘하시는 선생님께 보내드릴까요? 아니면, 수술을 조금 못하더라도 친절한 의사에게 보내드릴까요?"
예전에 한 선배의사께서 환자들에게 제시했던 선택권이다. 그 병원에 OO외과 선생님이 환자들에게 친절한 분이 아니셔서, 가끔 "저를 왜 그런 의사에게 보냈냐"고 하는 불만을 몇 번 들으셨다고 한다. 그 이후 위와 같이 선택권을 드렸더니, 이후에는 "덕분에 수술 잘 받았다"는 감사 인사로 바뀌었다고 한다.
작년에 '시도지사 추천' 논란 등으로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으나, 코로나 19상황에서 일단락되었던 '공공의대' 설립에 대한 논의가 다시 시작되고 있다. 2021년 4월 20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이용자 중심 의료혁신협의체 단체에서 '공공의대 설립 및 의대 정원 확대 공청회'를 열면서이다. 사실 말이 공청회이지 같은 입장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서 발제와 토론을 한 것은 일단 넘어가도록 하자.
이날 발제에서 한 교수는 "교수는 실력이 있어도 지역에 없으면 의미가 없다"고 했고, 다른 교수는 "지역 공공의대는 성적이 좋은 학생보다 지역에 헌신할 수 있는 학생을 우선 선발해야 한다"고 했다. 해묵은 OECD 평균 의사수 타령도 계속되었으나, 이에 대해서는 작년에 다루었으니 넘어가도록 하자.
만일 공공의대가 설립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공공의대 학생들은 졸업 후 10년간 지역에서 의무복무를 해야 한다. 그런 조건이면 우수한 학생들이 공공의대에 지원할까?
'지역에 헌신할 수 있는', '시도 지사 추천'같은 모호한 기준이 아닌, 단지 성적으로만 뽑는다고 해도, 현재 의대에 지원하는 학생들보다 평균적으로 성적이 많이 떨어지는 학생들이 지원할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의사의 실력이 떨어지는 것은 토론회에 나오신 분들에겐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지만, 환자들도 그럴까? 과연 환자들은 그 의사들에게 진료를 받으려 할까?
환자들의 대형병원 쏠림은 사회적으로도 문제가 되고 있다. 사실 상급종합병원에 근무하는 필자 입장에서도, 이런 가벼운 문제로 왜 여기까지 오는지 이해가 안 될 때가 많다.
그러나,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내 하나뿐인 몸에 대한 중요한 결정'이기 때문에, 수술 같은 큰 일은 물론이거니와, 일상적으로 무슨 약을 먹거나 먹지 말아야 할지 등을 판단하기 위해 소위 그들의 '인식' 속에서 '가장 실력 있(다고 믿)는' 의사를 찾아오는 것이다.
실제로 위 공청회에도 토론자로 참석했고, 의료 정책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한 교수님께서는 몇 년 전에 "우리 부모님이 아프다고 하시면 아주 경증 질환이 아닌 이상 대학병원으로 보낼 것"이라며 "이를 강제하는 것은 환자들의 자율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이미 최상위권 학생들만 의대를 갈 수 있고, 지역 의사들이 그런 분들로만 채워져 있는 우리나라에서 말이다.
각 지역에서는 자기 지역에 공공의대 설립이 꼭 필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만일 공공의대 설립 조건으로, 해당 지역 주민들은 (희귀난치성 질환이 아닌 이상) 공공의대 출신 지역 의사들에게만 진료받도록 제한하면 어떨까? 과연 지역 주민들이 자기 지역에 공공의대 설립하는 것을 찬성할까? 모두에 이야기한 수술 의사 선택 사례에 답이 있다고 본다.
공산권 국가들에서는 의사들의 사회 경제적 지위가 낮았다. 러시아·동구권 국가들·중국 등이 대표적이다. 그런 나라들에서는 가장 우수한 학생들은 의사가 되지 않는다. 의사가 꼭 천재적일 필요는 없겠지만, 의학 지식과 경험, 그리고 환자마다 다른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의학적 결정을 내리는 것은 실제 고도의 지적 능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갑작스럽게 의식이 소실된 환자의 원인을 응급상황에서 감별하는 것, 수술 중 예기치 않은 문제가 생겼을 때 해부학적·생리학적 지식을 동원해 위기를 모면하는 능력 등은 최상위권의 지적 능력을 가진 사람들 조차도 혹독한 수련과 끊임없는 배움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지금 위의 국가의 의료 수준이 어떤지, 그 나라의 돈 있는 환자들은 어디에 가서 치료받는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반면, 소위 '공부잘하는 학생'들이 의사가 되는 것을 선호하게 해주는 미국·호주·유럽 등 구미 국가들은 대개 높은 의료 수준을 갖고 있다.
필자는 이전에 '일차의료인 양성'에 관련한 국제 협력 프로젝트차 베트남에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베트남의 가정의학 교수님으로부터 들은 내용은, 베트남은 의대 졸업 후 각 마을에 의사들이 공무원으로 배치되기는 하지만, 이들은 실력이 매우 떨어져서, 시골에 있는 환자들이 모두 도시에 있는 큰 병원으로 간다고 한다. 실제로 마을의 작은 진료소에는 환자가 거의 오지 않았고, 대형병원에는 우리나라보다도 더 붐비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안심하고 진료받을 수 있는 실력 있는 의사를 원하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다. 시골에 사는 노인들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논의되는 방식처럼 공공의대를 설립하고, 학생을 선발한다면 공공의대는 이류의대가 될 수 밖에 없다. 이미 유사한 제도를 실행하던 일본의 자치의대는, 장학금을 주지만 학생들에게 인기가 없어 학생들의 수준이 떨어지고, 국민들 사이에서도 '이류대학'이라는 이미지가 있다고 한다.
좋은 제도는 사람들의 본성을 잘 활용하는 제도이다. 의료 취약지에도 실력있는 의사가 근무하게 하려면, 방법은 단 한가지이다. 그들이 의료 취약지에서 근무할 수 있는 유인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것이 경제적인 것이든, 직업 안정성이든, 일과 삶의 균형이든, 직무활동에서 오는 보람이든 간에.
의료 취약지 문제 해소, 의료 공공성. 참 듣기에는 좋은 말들이다. 그러나, 그런 모토를 갖고 시행했던 여러 국가의 실패 사례를 보면 생각나는 격언이 하나 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善意)로 포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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